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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saying CEO Nov 15. 2022

나의 길, 실존으로 가는 길

올레길에서 시작한 인생 2막, 나침반을 리셋하다

  

내 실존의 빈 배는 가을 올레길을 걸으며 새롭게 채워지기 시작합니다.

제주 시흥리 올레 1코스에서 시작한 청년과의 동행은 1코스의 종점이자 2코스의 시작점인 성산읍 광치기 해변을 거쳐 2코스의 종점 온평포구에서 석별의 생맥주 한 잔으로 따스한 포옹과 작별 인사를 고했지요.


노랑 낙엽을 밝으며, 스물셋 청년이 수십 년 일기장에 꽂아 둔 단풍잎을 발견하고 해후한 것처럼, 또다시 먼 미래에, 여전히 살아 있다면, 그와 나는 틀림없이 재회할 겁니다.





여기까지 동행해 준 스물셋 청년인 나에게 "수고하고 애썼네" 포옹하고 격려했다면, 석별을 나눈 2022년 가을의 오늘 새로운 올레길을 나 홀로 걸으며 10년이 지난 미래의 나로부터 어떤 평가와 피드백을 받을지 상상하며 '놀멍 쉬멍 걸으멍' ('놀며 쉬며 걸으며'의 제주 방언) 바람과 포말이 쉼 없이 속삭이는 해안길을 시나브로 걸어갑니다. 한 발 한 발 그리고 뚜벅뚜벅.


헤어진 청년에게 20세기 바다는 억누를 길 없는 청년의 슬픔과 분노를 말없이 들어주었고, 치유할 수 없었던 유년의 상처들을 하얀 소금의 몰약으로 치료해 주었지요. 청년의 성취를 그 누구도 축복해 주지 못할 때 바다는 찬란한 태양빛을 파도에 부어 축배를 쏟아부어 주었고 그 힘으로 청년과의 이별은 표선 가는 길목 신산리의 붉고 따스한 추억으로 남겨 주었지요.  




인생 2막 다시 찾아온 바다는 방금 헤어진 청년의 바다와 다른 성숙한 바다임을 발견합니다. 수평선 끝 바다와 하늘이 닿은 곳을 바라보며, 수평선 너머 보이지 않는 '내 청춘의 끝은 어디일까?' 질문하던 불안한 바다는 이젠 없으니까요.


바다 너머 또 다른 수평선의 바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음을 우리는 이미 압니다. 저 바닷속 한 발짝 더 노를 저어 가면 태평양을 지나 인도양과 지중해가 나타날 것도 우리는 압니다. 같은 맥락으로 21세기 새 가치를 발견하여 다음 세대에게 제공한다면 어김없이 미래의 시간은 저 석양처럼 찬란한 오늘이 되어 다시 기쁜 포옹을 하겠지요.



과거와 오늘의 생활에 모든 것을 걸면서도 여전히 가슴 설레는 것을 이루었을 때 비로소 우리의 삶은 더욱 온전해지지 않을까요? 저 먼 바다로 나가 볼수록 새로운 섬과 여정의 항구가 나타날 것이고, 나보다 가난하고 나보다 영혼이 아름다운 사람들과 교류하고 나누며 내 허기진 실존의 빈 배를 채워 나간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배려와 나눔의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하여 벗어나야 할 '내 삶의 경계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봅니다. 새로운 세상은 새로운 단어로 만들어진 도전적인 질문으로 시작하니까요.


청년과 석별하고 다시 걷기 시작한 오늘 새로운 출발은 앞으로 다가올 십 년 후 나의 관점에서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나를 만들어 갈 사명(MIssion)과 버킷리스트(Bucket List)를 조망하고 곰곰이 생각합니다.  놀멍 쉬멍 걸으멍 오늘도 종일 올레길 3코스 14.6km를 하염없이 걷고 걷고··· 또 걸었습니다.




미국 소설『노인과 바다』의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가 거대한 청새치 낚시를 위하여 충분히 견고하고 단단한 창살, 밧줄 그리고 체력을 준비하여 반드시 잡고 말겠다는 포부로 항해를 준비했듯 내 남은 생애 후반전의 설계도를 꼼꼼히 준비하고 싶어 제주 올레길 완주에 도전장을 내밀었지요.  


 "그래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거야~ 나는 그래야 행복하니까"


먹고사는 일의 계산과 불안감에도 불구하고, 생활의 루틴(Routine)과 그 경계선을 넘어가서 여행과 나눔 그리고 배려의 10년을 보낼 시간의 설계를 올레길 바다를 바라보며 절치부심 걸으며 준비합니다.


"그래~ 지금까지 수고했지만 더 넓은 세상을 만나는 거야~ 나를 사랑하는 만큼 타인을 위로하고 나누는 시간을 만드는 거야."


내 역사의 현재와 실존의 빈 배는 가을 올레길을 걸어가며 새롭게 채워지기 시작함을 깨닫습니다. 2022년의 가을 올레길 위에서 제 인생의 나침반을 재정비합니다.


『에밀』의 저자이자 사상가 장 자크 루소(Jean Jacques Rousseau, 1712~1778)는 '모든 사람은 세상에 두 번 태어난다. 한 번은 어머니의 몸으로부터 하나의 생명으로 탄생하고, 또 한 번은 하나의 인격을 가진 능동적 의지를 가진 사회적 인간으로 태어난다' 했지요.


올레길 3코스 종점에 도착하여 격한 감동의 바다를 바라봅니다. 저 바다보다 더 푸르고, 제주의 석양보다 더 붉고, 한라산 감귤보다 더 진했던 여기까지의 나날들을 제주의 먹구름 하늘 투명한 파노라마에 비추어 바라봅니다. 내 청춘의 시간은 피동적으로 잉태된 하나의 생명이었고 그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정신적인 나를 찾아가는 감사와 수행의 소중한 유산입니다.



첫 번째 생물학적 탄생부터 사회적 성장의 시간을 보낸 나의 청춘과 뜨겁게 포옹하며 석별하고 내 생애 두 번째 탄생을 위하여 표선해변 모래 위를 맨발로 걸어갑니다.

저 아름다운 석양과 진노랑 감귤나무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다음 10년의 인생 그림을 어떻게 그려갈지 설계도를 표선의 해변길을 걸으며 나침반과 함께 조망합니다.  


내일은 올레길 제4코스를 걸어갈 겁니다. 놀멍 쉬멍 걸으멍···. 그러나 목적지는 정해서 찬란하게 걸어갈 겁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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