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기쁨의 탐험에 모험을 걸기로 했다
시월의 마지막 주말이야기 입니다. 어반 스케칭 (Urban Sketching) 선생님의 일사불란 엄명에 따라, 선생님의 문하생들은 드디어 마을 그림 전시회를 준비하고 열었지요.
인생 2막 내 버켓 리스트 (Bucket List)에 그림 그리기가 이미 준비되어 있기는 했지만 그림을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초고속 승진하여, 그림을 작품으로 전시한다는 계획은 전혀 없었기에, 전시회 날짜가 다가올수록 놀라고 두근거리며 불안정하지만 설레는 마음을 겨우 다독이며 화실의 동료 회원들과 함께 전시회 준비를 했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문예반의 가을 시화전을 준비할 때 그 설렘을 다시 만난 기쁨도 컸고요.
가족과 주변 이해관계자들을 배불리 먹여 살리고 기쁨을 주기에 안간힘을 쓰며 자본주의 혈투장을 떠돌던, 경쟁형 인간인 내가 어쩜 이렇게 변화할 수 있을까? 그림 그리기는 시시각각 변하는 내 감정의 한 순간에 몰입하여 나를 찾도록, 예술하는 인간으로 나를 바라 보는 새로운 관점을 체감한, 참으로 신비스러운 경험이지 않은가..?
이 지구별의 깜깜한 밤하늘 아래 노고단에서 대청봉으로 이어진 눈길을 힘겹게 힘겹게 발가락에 아픈 물집들이 생겨도 입술 지긋이 깨물고 밟고 또 밟아 다져가며.. 한 발 또 한 발 야간산행을 하던 중 맑고 푸른 새벽빛이 서서히 어둠을 몰아내고 붉은 해를 타고 '새로운 내가 여기 왔노라!' 소리치며 환호한 기억이 다시 떠오르지 말입니다.
계획과 일정에 맞추어 우리 그림 동아리 친구들은 직접 액자를 준비하고 그림을 끼워 넣고 야외 전시장도 세우고 지역사회 주민분들을 초대해 재잘거리며 각자의 그림 이야기를 관람객들과 나누며 만추의 야외에서 예술하는 인간의 특별한 기쁨도 누려 보았습니다.
전시 관람객 한 분은 저에게 "화가 선생님, 이 그림 가격이 얼마죠?" 라며 물었죠. 그림값을 논하기 전에 내 생에 처음 들어 보는 '화가'라는 말에 심장의 박동은 제가 미치도록 좋아하는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크의 웅장하고 리드미컬한 엔진이 뿜어 내는 소리처럼 "쿵쿵 쿵쿵~ 쿵쿵~.." 하늘로 튀어 오르듯 흥분하며 뛰었죠.
난생처음 '화가'라는 말을 들은 순간 제 마음은 새로운 대륙을 찾아 탐험한 인간이 지금껏 나와는 상관없는 남의 땅이라고 생각했던 곳에 첫발을 들여놓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세상에.. 내가 화가라니? 내가??.. 오오 신이시여 (Oh My God)! 이건 비현실적이야" 속으로 소리치며, 허벌레 웃음을 참지 못하고 친절하게 대답했죠.
"아~ 아~ 그러니 아~.. 이 그림 값은 좀 비싼데요.." 그분은 진지하게 다시 내게 물었죠. "그럼 얼마에 파실 수 있나요? 노란색 가득한 은행나무와 낙엽 그림을 보니 기분이 좋아지고 힐링이 돼서요.." 나는 대답했다. "아~ 네~.. 실은 미술학원 등록비랑 미술용품 사려고 제 딸에게 빌린 돈이 십만 원인데 저희 회사 임원분이 직원휴게실에 걸어 둘겸 십만원에 사겠다 해서요. 그런데 제가 그냥 기증하기로 했어요 죄송합니다~" 그렇게 저는 그림 한 점에 십만 원짜리를 기증한 마을화가가 되었다고 미술 선생님께 칭찬을 받았지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빈센트 반 고흐 화가 형님도 살아생전 그림을 제 값에 팔아 보지도 못했는데 저야 말로 첫 그림을 십만 원에 팔 수 있었으니 '어쩌다 나도 화가' 치고는 엄청난 행운이 아닐까요?
이 글을 쓰면서 나의 내면 깊숙한 곳 숨어 있던 상처의 파편들도 하나 둘 만나게 됩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든 한 두 가지 특이하고 어두운 상처가 있듯이, 그림을 그리면서 유난히 노란색을 꺼려하고 부담스러워하는 의식의 흐름을 만났지요.
노란색 물감이 든 튜브를 만져 보니 한참 잊었던 기억의 저장고에서 "싹수가 노란 녀석"이라는 말이 불쑥불쑥 튀어나왔으니까요. 고등학교를 졸업하여 곧바로 가정경제를 위해 취직할 생각은커녕 대학교에 진학하여 유학까지 가겠다는 내 결심에 혀를 끌끌 차던 가족과 주변 친지분들은 농담반 진담반 '저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녀석'이라 놀리곤 했으니까요.
제 주변에 일절 두지 않고, 상처로 남아 지금까지 피해 다니던 그 노란색 물감을 마구 풀어 가을 풍경을 온통 노랗게 그릴줄 누가 알았을까요? 이번 가을 문득 새벽잠을 깨어 산책길 진하도록 황홀한 황금빛 은행잎 낙엽들을 보며 아픔의 노란색을 치유하고 용서하는 노란색으로 받아 들이자 결심이 생겼지요. 나에게 상처를 안겨준 노란색이 화해와 창작의 색으로, 그렇게 색감정이 변화하는 카타르시스를 깨달았지요.
노란색 가득한 가을꽃과 은행잎 물든 가을을 그리면서 저에게 노란색은 아픈 상처를 극복하고 새로운 인생 2막의 서막을 축복하는 해바라기의 기쁨으로 다가왔지요.
그러나 세상은 처음부터 우리에게 만만하게 미소를 절대로 보내진 않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꾸로 내가 노란색 물감을 먼저 꺼내어 그린 것처럼 나를 실망시킨 것들과 삶의 기억들에게 거꾸로 용서의 미소 한 바가지 부어 주기로 결심 했지요. 이것이야 말로 과거와 헤어질 결심, 상처를 치유할 결심, 내 삶을 사랑할 결심 아닐까요? 한 때는 남 보기에 그럴듯한 계급장을 달고 다닌 과거지향적 익숙한 외투를 벗어던지고 새로운 초보 예술가의 길을 들어가는 어쩌다 화가는 용서하고 치유하는 기쁨을 얻었습니다.
전시회를 마친 날 저녁의 일기장에 다음과 같이 적었지요..
'오늘도 초보화가 도전자로 새로운 세계에 이미 발을 들여놓았다. 과거의 나름 성공한 타짜 CEO가 초짜 화가가 될 결심으로 전시회의 기쁨을 누렸으니 내가 나를 축하해! 언젠가 다시 건반을 꺼내어 쇼팽의 녹턴 한 곡 완주하고 생맥주 한 컵 쭈욱 들이키는 멋쟁이 피아니스트가 될 거야. 하루하루 한 발 한 발 이 깨물고 도전 하다 보면 난 어느새 이 지구별을 맘껏 누린 여행자가 될 테니까. 나마스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