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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밖엔 난 몰라 Feb 10. 2024

'냉정과 열정 사이' - 나의 피렌체

심쿵한 열정의 영화 속 도시 피렌체가 10년 만에 나를 뜨겁게 안아주다

(사진 : 피렌체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일명 '피렌체 두오모 성당')'과 주변 도심 /언스플래쉬)




새벽 기온이 영하로 급격히 떨어진 공원길을 습관으로 걷는 초겨울의 산책길은 스산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늦가을 오랑캐 같은 북서풍 칼바람에 단풍잎과 은행잎은 그야말로 살아남으려 안간힘으로 추풍낙엽을 떨구어 버리는 마지막 승부수를 던집니다. 생존을 위해 나뭇잎을 버리는 냉정한 몸부림을 알면서도 길거리에 버려진 나뭇잎을 바라본 내 의식의 흐름은 멜랑콜리 쓸쓸한 감정에서 빠져나가지 못합니다.

가을 낙엽이 지고 나면 어김없이 연말이 오고, 연말이 지나가면 쏜 화살처럼 나이 한 살 더 먹어 가는 고독이 만만치 않음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감정의 신호가 감지될 때면, 본능적으로 신경전달 물질 세로토닌(Serotonin)을 찾아내어 면역의 체온을 좀 더 올려 주려는 의지력이 작동합니다. 일상의 틀을 벗어나서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으로 기쁨을 충전하기 위한 오감과 통찰력의 레이다를 켜 놓고 까르페-디엠(Carpe-Diem)을 낚아챌 호시탐탐 사냥꾼이 됩니다. 기쁨이 없는 일상은 절망으로 가는 길이니까요.


마침 20년 전 마음 심쿵하게 보았던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를 영화관에서 재개봉 상영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유튜브 OTT 영화관에 들어가 <냉정과 열정사이> 다시 보기를 눌러  20년 전에 본 기억 속 선명한 장면들과 이야기를 다시 꺼내 보았지요.  



2003년 이 영화를 처음 본 후 10년이 지나간 2013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으로 거슬러 간 그해 봄 이탈리아 밀라노(Milano) 출장길 주말에 <냉정과 열정사이>의 배경이 된 도시 피렌체(Firenze)행 기차를 설레는 마음으로 타고 가 하루 종일 영화 속 장면들을 찾아 더듬어 가며 보낸 기억이 생생합니다.


14~15세기 사이에 융성하고 축조된 회화와 조각 그리고 건축물로 가득한 피렌체는 도심이 르네상스의 보물이자 UN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지요. 피렌체의 주요 도심에는 법에 구속되어 새로운 건축물을 조성할 수 없기에, 500년 전이든 10년 전이든 그리고 앞으로 100년이 지나도 전쟁과 지진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지금과 똑같은 모습을 간직할 수밖에 없도록 약속한, 지구촌 모든 사람의 영원한 르네상스 (Renaissance) 발원지이자 꽃처럼 환하게 피어난 인류의 도시이기도 합니다.  


인본주의 역사와 낭만을 간직한 피렌체를 배경으로 <냉정과 열정사이> 영화는 갓 스무 살 풋풋하게 만나 사랑한 캠퍼스 첫사랑 커플 청춘남녀 주인공이 서툴게 사랑하다 냉정하게 헤어진 채, 각자 다른 누군가의 연인으로 살다가 10년이 흘러 다시 만나는, 남녀 사이에 얼마든지 있을법한 상투적인 첫사랑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다만 스토리의 배경이 인간성의 부활을 인류에 펼친 도시 피렌체이기 때문에 특별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피렌체를 상징하는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Santa Maria del Fiore Cathedral)' 지붕 꼭대기 전망대에서 여주인공 '아오이'의 서른 살 생일을 기억하며 가슴에 품은 십 년의 열정을 확인하며 서로의 사랑이 이루어진, 아름답다고 하기엔 설명이 부족할 만큼 우아하고 유서 깊은 낭만의 도시 피렌체를 더 많이 그리고 깊이 알고 싶어 찾아 들어갔지요.



피렌체(Firenze)를 번역하면 인본주의 르네상스를 이끈 '꽃의 도시'라는 뜻인데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 지방에 핀 문명의 꽃처럼 새로운 생각과 아름다움을 꽃피우며 새로운 인간다움을 발현한 인문학의 고향이며 발원지라는 사실을 일에 빠져 살 즈음의 십 년 전 그땐 잘 몰랐음을 고백합니다.


대학교 갓 입학한 신입생 시절 입대를 앞두고 어영부영 교양 시간에 학점을 채우려 겨우 들었던 서양사의 한구석을 차지했던 르네상스의 도시 피렌체 정도에 불과했으니까요. 그러다 청춘멜로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 속 남자 주인공이 자전거를 타고 헤매던 피렌체의 골목들을 가보고 싶기도 했고, 출장길의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 최고의 티-본 스테이크(T-bone Steak)와 와인 맛집들이 피렌체에 즐비하다는 정보를 듣고 주말의 하루를 보내기로 하고 찾아갔지요.


10년 전 영화를 보고 피렌체로 찾아갔던 나를 복기하고 그 기간 나의 성장을 뒤돌아보고 확인할 겸, 그리고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의 재개봉 소식을 듣고, 올해 2023년 내 인생의 고독이 깊어 가는 늦은 가을날 새롭고 찬란한 인본주의의 세상을 시작하고 꽃 피운 피렌체를 10년 전과 다르게 좀 더 깊이, 많이, 직접, 그리고 확실히 각인하고 싶은 결심으로 피렌체행 비행기에 탑승했지요.  




이탈리아에 도착하여 시차에 적응할 겸 토스카나 지역의 와인 맛을 보러 이곳저곳 며칠을 떠돌다가 드디어 내가 그리워하던 <냉정과 열정사이>의 도시 피렌체(Firenze)로 가는 열차 안에서는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온 이방인 여행자의 피로를 쓰윽 풀어주려는 것인 양 운 좋게도 아코디언 연주자 아저씨가 기차간에 나타나 제 앞에서 즉흥곡 연주를 멋들어지게 들려주셨지요.


나도 즉흥적으로 “Gracie 땡큐“ 동전 한 잎 드리고, 최고로 좋아하는 이탈리아 출신 미국 배우 ‘알 파치노 Al Facino’ 형님이 출연한 OST 음악 아는 대로 들려 달라 요청하니 한국말로 ‘캄솨합니다’ 인사하며 영화 <대부(God Father)>의 주제곡과 '여인의 향기' 주제곡을 연주해 주십니다.


은퇴 전 유럽에서 꽤 유명한 피아노 연주자였다고 자랑하길래 웃으며 나도 한때 잘 나가던 나름 스타 CEO로 불렸는데 지금은 피렌체 여행 가는 초로의 아저씨가 되어 당신을 만나러 왔으니 우리는 친구라고 농담을 건네니 연주자는 환하게 웃으며 보너스로 프랭크 시내트라의 명곡 '마이 웨이(My Way)'를 연주해 줬고, 저도 질세라 목청껏 원곡으로 한 곡 쭈욱 불렀고, 같은 칸에 탄 탑승객들은 우리 둘에게 박수와 앙코르 요청을 했지요.


다행스럽게도 기차는 피렌체 중앙역에 도착하는 바람에 연주회는 자동으로 끝이 나 버렸고, 나의 낭만 도시 피렌체 여행은 멋진 음악으로 시작이 되었답니다. 만일 기차가 피렌체에 도착하지 않았다면 비록 음치이지만 흥이 많은 필자는 분명 앙코르 노래 한두 곡조 더 뽑아 올리며 아코디언 연주자 아저씨를 좀 더 괴롭혔을 것이 분명합니다.


피렌체 중앙역사를 빠져나와 역사 앞 숙소에 짐을 맡기고 마치 전생의 고향을 찾아온 듯 가뿐하고 가벼운 흥분감을 진정할 겸 생수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고 심호흡하며 천천히, 또 천천히, <냉정과 열정사이>의 OST를 아이팟으로 들으며 아다지오(천천히) 리듬에 맞춰 걸어갔지요.


피렌체 주민들과 여행자들이 배고픔을 해결하는 중앙시장 앞 거리를 거쳐, 시내를 탁 트이게 가로지른 역사적 아무르강으로 피렌체의 늦가을 온화한 햇빛을 받으며 걸어서 걸어서 스며들어 갔지요.


지난 10년간 잊지 않고 기억한 피렌체를 다시 찾은 열정으로 서서히 서서히 14~15세기 미켈란젤로와 단테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함께 숨 쉬며 그림 그리고 글 쓰고 조각하며 건축하던 피렌체 속으로 빨려 들어갔지요.




(To be continued for the next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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