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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밖엔 난 몰라 May 26. 2024

'장밋빛 스카프' 클럽 회원으로 모십니다.

아혼번쨰의 파도를 이기는 붉은 스카프

양철지붕을 후다닥~ 때리는 서귀포의 새벽 빗소리에 세월 속으로 깊어가는 고독한 평화의 잠에서 깨어났지요. 창문을 열어 '휘잉~휘잉' 연속으로 불어대는 바람소리는 내 지난 추억의 기억세포들을 하나둘씩 불러 깨웁니다. 생각의 스위치가 채 켜지기도 전에 먼저 벌떡 일어난 내 몸은 주섬주섬 비옷을 걸치고 묵언수행자처럼 홀연히 천천히 바깥세상의 올레길로 나섭니다.


어둠의 먹물이 채 가시지 않는 새벽의 비바람에 반투명으로 가려진 범섬을 바라보는  바닷길은 현무암 무심한 바위들이 검은 잡초처럼 무성하고, 초여름 빗줄기는 내 지난 추억의 세포들을 불러 깨웁니다. 다시 못 볼 것 같던 추억 속 하얀 얼굴들이 범섬과 나 사이 스크린 같은 안개를 타고 풍선처럼 날아올랐다가 해녀가 숨질 하는 바다 하얀 포말 속으로 안개처럼 사라집니다.  



어느 나라 어느 곳을 가든 나는 늘 바다를 찾아다녔고, 내가 만난 파도는 내 가슴속 적막을 깨트리고 새로운 곳을 찾아가라며 밀어붙이듯 영감을 주었지요. 바다는 나에게 푸른 숨소리 씩씩거리는 해녀의 숨비소리와 같이 살아남으라고 가르쳐 주었지요. 고인 물처럼 살지 말라고, 하얀 포말의 그 무서운 기운을 내 소심함에 아낌없이 밀어 보내며, 파도 속 헤엄치는 법을 가르쳐 준 태양의 선물을 받은 덕에 여전히 건강히 살아 있지요.


바다는 반복된 일상에 지쳐 찾아가는 나에게 집 나간 내 인생의 소명을 불러일으켜 "정신 차려 이 녀석아~" 하며 영혼의 귀싸대기를 갈겨 주고 보듬어 준 우주의 정령이었지요.  ‘바다는 집을 나서면 내가 돌아갈 지상 최후의 보루’ 라며 스무 살 젊은 날의 일기장에 적어둔 기억이 납니다.


 

Ivan Aivazovsky, The Ninth Wave, 1850, Russia Gallery



5월도 겨우 며칠 남지 않은 날 제주를 벗어나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바다를 주제로 한 러시아의 그림들을 소개하는 강연장에서 그림 한 점에 그만 울컥하는 감동을 찾아냈지요. 미술평론가 경지에 이른 지인이자 기자 (연합뉴스 도광환 국장님)의 안내로 러시아 사실주의 화가들과 주요 그림들을 소개하는 강연에 참석했지요.


운 좋게도 평생 바다를 주제로 6,000점의 그림을 남긴 러시아 낭만주의 바다의 화가 <이반 아이바죱스키> (Ivan Ivazovsky, 1817~1900)의 작품을 만난 흥분과 환호의 기쁨은 새로운 인연을 만난 그 자체였고, 녹슬어 갈 줄 알았던 내 심장의 박동을 다시 스무 살로 되돌려준 그림 한 점을 만난 진실의 순간이었으니까요.

드라마도, 소설도 시도 아닌 그림 달랑 한 점을 보고, 세로토닌(Serotonin) 아니라 도파민(Dopamin) 호르몬이 뿜어져 나온다는 건 분명 과장일 거라 미리 생각한 저에게 울컥함과 목 뻣뻣한 감동을 준,  믿지 못할 사건이 벌어졌으니 이 얼마나 큰 충격일까요?  


그림에는 밤새 모든 것을 다 삼킨 칠흑 바다의 수평선너머 새 날이 힘차게 밝아 오도록 태양이 구름의 장막을 걷어 붉게 나타날 기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간밤 난파선의 돛대를 가까스로 부여잡은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현실의 돛대를 놓치지 않으려는 의지로 똘똘 뭉쳐 현실을 타개하려 합니다.  죽음과 난파선만을 남긴 폭풍의 아홉번째 파도에 맞서 밤새 사투를 벌인 어부들은 기진맥진 포기하려는 마음과 살아남으려는 의지 그 찰나의 틈바구니에서 떠 오른 붉은 태양빛을 바라보며 살 수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 하나로 사투하며 돛대를 붙잡고 있습니다.  



그림은 움직이는 동영상이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그림 속 성난 파도와 어부들은 교향곡의 웅장하고 세찬 음표처럼 거칠고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움직이지 않는 그림 한 점이 움직이는 모습들을 하나의 음악처럼 캔버스에 표현한 내공이 아찔하고 놀랍기만 합니다. 그중 파도를 응시하며 붉은 장밋빛 스카프를  흔드는 사내를 보니 뜨거운 울컥함이 목젖을 따라 오릅니다. 순간 아홉번째 파도 앞에 선 그 사내는 나 자신이 되어 장밋빛 스카프를 힘차게 흔들며 소리칩니다!


"그래~파도야 쳐라~ 바람아 불어라

오냐~파도야 때려라~바람아 오너라

죽는다 해도 우린 절대 포기 하지 않겠다~"


'누구나 인생을 살다 보면 아홉번째 파도처럼 내 삶을 집어삼킬 만큼 견딜 수 없는 시련과 아픔이 우리에게 찾아 오지만 우리는 붉은 스카프처럼 의지와 희망을 심장에 품은 존재야 말로 가장 인간다운 모습이 아닐까?' 질문과 서사를 던져 준 화가에게 경의를 표할 뿐입니다. '한 점의 그림이 포기하지 않는 의지와 희망을 가지라고 인류에게 남긴 서사 앞에서 우리가 감히 포기하고 우울하게 살아갈 이유가 있을까?' 스스로 묻습니다.


인플레이션으로 힘겹고 우울한, 전쟁이 벌어져 생존의 위협에 시달리는, 부모가 없어서 교육을 못 받는,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는, 자유를 잃고 독재자에 시달리는, 영양실조와 배고픔에 시달리는, 원하는 직업을 구하지 못한, 심지어 내 맘 알아줄 친구가 없는 이웃들의 고통에 장밋빛 스카프를 흔들어 보냅니다. 인생은 아홉번째 파도에 세게 맞아도 버틸 수 심장을 가져야 함을 뜨겁게 꺠닫습니다. 죽을 만큼 세게 맞아도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서 이웃에게 붉은 스카프 흔들어 주는 용기와  희망을 심어주는 행동이 필요한 시대이지요.


당신의 심장이 뛸 때마다 가슴속 [장밋빛 스카프]가 함께 뛰고 있음을. 그러니 설령 고통과 패배로 삶의 쓴 잔을 마신다 해도 절망하거나 죽어갈 이유가 없겠지요. 절망뒤에 남은 것은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다음 세대 그리고 새로운 하루가  오고 있으니까요.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분에게 마음의 이반 아이바죠프의 그림과 스카프 한 장 보내 드리니, 내면의 소리를 맘껏 지르며 인생의 목적지와 내 하루의 기쁨을 절망과 바꾸지 않겠다 소리치시길 바랍니다.

장밋빛 스카프를 흔드는 사람은 자주 웃고 나누는 사람입니다. 아홉번째 파도에 힘겨운 이웃들과 씩~ 웃음과 먹을 것을 나누는, 뜨겁고 붉은 심장을 가졌으니까요.


"장밋빛, 장밋빛,

스카프만 보면은

내 눈은 빛나네 걸음이 멈춰지네

힘겨운 세상살이 어떻게 살아갈까

포기하지 않는 마음으로 꿋꿋하게

한 발자국 또 한 발자국 모이고 쌓이면

우리는 장밋빛 스카프 클럽 회원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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