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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밖엔 난 몰라 Mar 31. 2024

마침내, 꽃이 되고 별이 된 사람들

품격과 환대가 강물처럼 흐르는 안나의 집


"우리 아빠 별난 사람인건 이미 알지만 허리통증 치료부터 하고 봉사든 뭐든 해야지!"

연차휴가 하루 신청하여 주섬 주섬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안나의 집으로 나서는 저에게 드디어 목소리 큰 딸의 따발총 잔소리가 터져 나왔다.


"알았어 걱정 마. 봉사 갔다 와서 저녁에 병원에 갈게 ㅎㅎ"


"봉사 마치면 병원 문 닫을 텐데 어떻게 가려고 그래?"  한 옥타브 높아진 딸의 잔소리.


"약속을 했으니 가야 해. 병원은 내일 아침에 꼭 갈게~"  


피하듯 얼른 문을 나선 나의 발걸음은 마치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 챔피언 무함마드 알리(Muhammad Ali)의 발놀림처럼 가볍고 유쾌합니다.  차 시동을 '부르릉~' 켰다.

 

내 청춘의 역전승을 계시한 영화 로키(Rocky)의 OST 음악을 힘차게 켜고 김하종 신부님과 동료 봉사자들이 있는, 내가 가 보지 않은 새로운 별나라 '안나의 집'으로 출발했지요.  Let's go~ go~      


안나의 집에는 인생학교 설립자 백만기 교장선생님과 오윤숙 봉사단장님 그리고 몇 분의 회원들이 뭘 할지 몰라 서툰 신입 봉사자인  저를 그림처럼 따뜻하게 환대해 주었고  안나의 집 설립자인 김하종 신부님께서 앞치마를 제공해 주시며 말씀하셨죠.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끼리 밥을 나누는 공동체에 와 주셔서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안나의 집은 누구나 오셔서 나눔 할 수 있는 곳입니다. 혼자 집에서 우울하신 분들도 밥 공동체에 찾아와 봉사를 하십니다. 왜냐하면 나 자신의 동굴 밖으로 빠져나와 다른 분들을 보살피다 보면 '나'라는 사람의 가치와 참된 보람을 얻어 가기 때문입니다. 타인에게 좋은 일을 하는 것은 결국 나에게 좋은 것으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누구든 각자 아름다운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재능을 나눌 때 당신에게 행복한 호르몬 세 가지가 찾아갑니다. 봉사를 마치고 집에 가실 때 엔도르핀, 세로토닌, 도파민 세 가지 종합선물상자가 당신에게 전달될 것입니다."




안나의 집에는 이미 몇 시간 전에 기부 받은 식자재를 가져와서 밥과 반찬을 정성껏 조리한 봉사자분들의 노고 덕분에, 보기만 해도 정갈한 반찬들이 가지런하게 배식 준비 되어 있습니다.

군침이 돌 만큼 예쁘고 맛깔스럽게 배식 준비를 깔끔하게 하고 나서 우리는 무료 식사를 기다리는 분들을 환대하도록 함께 기도를 하고 각자의 봉사 자리에 가서 손님들을 모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단 두 시간 동안 500~600명의 급식자 손님을 맞은 우리는 이 분들을 따뜻하게 환대하여 영양가 있는 충분한 양의 식사를 책임진다는 사명감으로  급식자 한 분 한 분에게 수저와 식판을 제공하기 시작합니다.




배식을 하고 빈 좌석을 청소하고 안내를 하고, 설거지 마무리까지  두 시간 동안 빈 틈 없고 정신없이 손과 발을 맞추었지요. 신입생인 저에겐 첫날이라 좌석 청소와 안내를 맡겨 주셨지요. 식사하러 오신 분들 중 지팡이를 짚거나 거동이 불편한 분들에겐 좌석에 편히 앉도록 버틀러 서비스 (Butler Service)를 하고, 식사 중간에 불편한 것이 무엇인지, 식사량은 충분한지, 더 필요한 밥과 반찬이 있을지 여쭈는 역할을 했지요.


무료급식을 제공받는다고 고마운 마음을 따뜻한 눈빛으로 표현하시는 분들과 행여나 봉사활동 중에 본인의 말투와 행동 하나라도 상처 주지 않도록 정중하게 배려하는 봉사자들의 마음이 한 데 어우러진 에너지가 퍼져 마치 하나의 오케스트라 연주가 바쁘고 장중하게 흐르는 강물처럼 진행되는 듯했지요.


급식 시간 중 클래식과 팝 송 100선이 스테레오로 흘러나왔고, 놀랍게도 내가 애정하는 영국가수 스팅 (Sting)의 'English Man in New York'과  'Shape My Heart'을 봉사자들과 함께 들으며 식사하러 온 분들을 살피고 돌보는 기쁨이 오래오래 기억될 테니까요.


(사진= 안나의집 무료급식 현장)


내가 선택하지 않은 이 세상에 나와 살다가 인간의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은 내 자존감에  필요한 기초적 인권이란 생각이 스며들었습니다. 누가 어떤 인생항로를 어떻게 거쳐 왔든 굶주림은 자존감에 깊은 상처를 주는 '방치'임을 깨닫습니다. 어떤 이에겐 배고픔이 치욕이며, 어떤 사람에겐 서러움으로, 또 어떤 이에겐 실존의 서글픈 흉터가 되니까 말입니다. 

하루에 정성이 들어간 따뜻한 밥 한 끼만큼은 국가와 공동체와 이웃이 책임져야 할 최소한의 인권 이니까요. 봉사와 기부야 말로 나와 내 이웃의 자존감을 지키는 마중물 아닐까요?


두 시간의 급식이 거의 마무리되고 급식소의 빈 좌석들이 늘어날 즈음 저를 포함한 봉사자들의 긴장된 표정들이 안도감과 여유로움으로 풀리면서 약간의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할 때 김하종 신부님의 푸근한 미소가 봉사자들의 마음을 녹여 주십니다.




배식을 마치고, 김하종 신부님은 봉사자들을 위해 기도 하시면서 말씀하십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각자 작고 연약하고 고독한 배 한 척처럼 느껴집니다. 작은 배는 평화롭고 안전한 항구에 머물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이 배는 폭풍과 풍랑이 있는 고해의 바다로 나아가야 합니다. 넓은 바다로 나아가야만 물고기를 구하고 경이롭고 신비한 새벽과 일몰이 아름다음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배는 넓은 바다에 나아가야 수천 종류의 물고기들과 함께 지친 마음을 부드럽게 감싸 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넓디넓은 인생의 바다가 두렵습니다. 그러나 나아가야 합니다. 바다는 우리가 살아가야 할 곳이니까요!  예기치 못한 폭풍과 풍랑을 만나 배고픔을 겪는 형제자매들에게 우리가 먼저 힘이 되고 위안이 되어 줍시다"

  


(사진 : 급식 봉사를 마치고 김하종 신부님과 함께)


귀갓길에 내 인생의 서사를 예언해 주신 할머님이 생각납니다. 대여섯 살 어릴 적 잔병치레 많고 배앓이를 자주 하던 손자의 배를 약손으로 쓰다듬던 할머님은 기도 하듯 노랫말처럼 이렇게 읊어 주셨지요..     

눈에 넣어도 어여쁜 내 손주야~


꽃이 되고, 나무가 되고, 해가 되고, 별이 되거라
배 아프고 배 고픈 세상
꽃이 되고, 나무가 되고, 해가 되고, 별이 되거라..


할머님의 노랫말처럼 병약한 손주가 건강하게 꽃처럼 나무처럼 무럭무럭 자라 이 세상에 나눔 하고 아름다운 별이 되라는 당신의 노래는 내 인생의 서사가 되었습니다. 아~ 아픈 손주를 등에 업고 십리길 마다 않고 매일 병원으로 데려 가시던 나의 할머님, 배고픈 이웃을 환대하는  김하종 신부님, 그리고 동료 봉사자분들과 저, 이 글을 읽고 공감하는 독자님은 힘겨운 세상의 미래를 밝혀가는 애틋한 이웃이자 별이니까요!



누군가를 위로하고 위로받고 싶을 때 인간의 품격과 환대가 깃든 안나의 집으로 오세요.

                        

                               *환영합니다*




(위 게재된 그림은 인생학교 봉사단장 오윤숙 작가님의 허락을 받고 게재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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