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둬서 미안해~ㅜㅜ
쓸데없이 어릴 적 기억을 모두 가지고 끙끙대며 살던 나는 코로나 시기 결국 터졌고 친정 부모님을 멀리 했었다. 공평하지 못하게 친정보단 시댁을 챙기던 나는 올해 초 모든 건 부질없는 짓이었음을 새삼 깨닫고 안 해본 짓(?)을 하기 시작했다.
그 첫 시작이 한 달 정도 발리여행을 간 것이었고 첫날밤부터 고양이와 동침을 하게 되면서 멘붕이 오긴 했지만 그것이 길냥이를 입양하는데 영향을 주긴 했다.
그렇게 난 마흔 넘어 살면서 안 해본 짓 두 번째로 길냥이를 입양했다. 가끔은 냥이의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나도 모르게 졸거나 어려워하는 경우도 많지만 아직까진 무서워하던 고양이에 대한 인식을 버리고 잘 살고 있다.
올해 초 한 달 정도 여행을 하면서 내 기준으로는 많은 돈을 지출했다 생각했기에 올해는 더 이상의 여행은 없다 생각하고 주말 알바를 시작했었다. 예전에 제과제빵 자격증을 딴 후 샌드위치 만드는 법을 배웠고 창업도 생각했지만 아이가 어려 다른 일을 했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항상 샌드위치를 만들어 팔아보고 싶단 생각을 했다. 때마침 유명한 빵집에서 샌드위치 만드는 사람을 구했고 주말에 일하는 것이었지만 해보기로 한 것이다. 내 생일은 챙기지 못하면서 양가 어르신들 생신이고 뭐고 신경 쓴다고 주말을 활용했었던 것들을 올해부터라도 온전히 나에게 신경 쓰고 싶었다.
주말 아침 일찍 준비하고 카카오자전거를 타고 미친 듯이 달려 알바하는 곳에 10분 컷으로 도착해서 신나게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주말이라 버스 운행이 늦고 직원들은 주차조차 되지 않아 고민한 것이 카카오 자전거 타고 가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다른 직원분들이 각양각색의 손님들을 상대하는 것을 지켜보며 똑같은 사람인데 참 여러모로 어렵단 생각이 많이 들었다.
5월은 어린이날, 어버이날, 엄마생신, 막냇동생 생일까지 기념일이 주르륵 많지만 친정 일은 하루에 모아 했었다. 친정부모님과 멀리하며 한동안은 그나마 그 기념일도 챙기지 않았다. 그런데 주말에 샌드위치 알바를 하면서 부모님을 모시고 오는 경우, 부모님 또래 분들이 오시는 경우 등등 어르신들을 보면서 그동안 소홀했던 부모님 생각이 문뜩 나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동생들과 일정을 맞췄고 아르바이트하는 곳에는 일요일 하루 쉰다고 조율한 후 토요일에 일 마치고 친정 가서 1박 하기로 결정을 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그건 바로 망고!
예전에 유기견 입양을 고민했을 때 우리가 외출할 시에 개가 무척 외로워하고 힘들어한다는 걸 알기에 입양하지 못했다. 그나마 고양이는 대소변도 가리고 먹이도 챙겨놓고 가면 먹는다 하지만 아직 어린 내 자식 같은 새끼를 두고 1박을 해야 한다는 것이 여러모로 마음에 걸렸고 당연히 남편과 아이도 망고 때문에 1박은 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동안 물을 아침, 저녁으로 새로 바꿔줬는데 일단 1박을 하면 평소보다 긴 시간 동안 같은 물이 있어서 망고가 안 먹을 것 같았다. 그런데 코스트코 온라인몰을 훑어보다가 신규 제품으로 올라온 자동급수기?를 발견했다!! 물론 검색하면 여기저기 많겠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물건을 사면 종종 문제 있는 물건을 받았고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도 구구절절 업체에 설명해야 하는 것이 너무 어려워서 나는 되도록이면 코스트코 물건을 사려고 한다.
아무튼!
나는 자동급수기와 자동배식기를 함께 주문했다. 사실 아이 매트리스가 너무 오래되고 싱글사이즈보다도 더 작은 거라 그거부터 사야 하는데...ㅠㅠ 망고 것을 질러버렸다... 아들아 미안~
아무것도 모르는 망고는 박스를 보고 좋아라 했고 신문물에 적응도 어렵지 않게 했다. 남편과 아이도 한결 마음을 놓는 것 같았지만 어린 녀석을 떨궈 놓고 가는 것이 여러모로 찜찜했다.
출발 시간은 저녁 7시!
아무리 알바라고 해도 업장에 줄 피해를 최소화시키고 싶은 마음에 아침부터 샌드위치를 만들고 퇴근한 후 오후 3시부터 부모님께 드릴 앙금플라워 떡 케이크를 만들었다. 나이가 먹어서 그런지 관심도 없던 꽃이 요즘 너무 이뻐 보여서 그동안 평일에는 앙금플라워를 배우고 있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제대로 만들어 포장까지 해 보았다. 토요일이지만 역시나 근무를 한 남편이 퇴근하고 와서 씻고 출발하려고 하는데 망고 때문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혼자 남아 있을 망고가 편히 지낼 수 있도록 밤이면 항상 내려놓던 블라인드도 좀 올려놓고 안방 침대에서 잘 수도 있으니 이불도 잘 펴주고 소파에 담요도 올려놔주고 놀잇감도 적절하게 배치하고 화장실도 다시 체크하고 먹이와 물, 그리고 망고에게 위험한 물건이나 장소등을 확인한 후 집을 나섰다.
친정집에 도착하니 밤 9시가 가까웠고 서둘러 저녁을 먹고 만들어간 떡케이크로 기념일을 한 번에 챙긴 후 잠이 들었다. 그때 우리가 나가면 놀다가 주로 자던 안방 침대나 소파 위에서 자고 있을 줄 알았던 망고는... 블라인드를 올려놓고 가서 그런지 새벽 1 시인 시간에 창문 앞 임시로 만들어둔 캣타워에서 바깥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침 일찍 눈을 뜨고 cctv로 살펴보니 망고는 밤에 본 위치에서 자고 있었다.
"뭐야, 망고 계속 저기 있었던 건가??"
"저기서 현관문 잘 보이니까 거기서 우리 오는 거 기다리고 있었던 거 아냐??"
남편과 나는 당황했고 빨리 집으로 가고 싶었지만 3~4년 만에 친정집에서 모두 모여 한 기념일파티였기에 먼저 가겠다고 일어서기도 곤란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미 친정 가기 전에 우리 상황을 엄마에게 말씀드렸는데 너무 오래간만에 모이는 거라 다음 날 점심에 맛난 회를 사 줄 테니 그것까지만이라도 같이 먹기를 원하셨고 내가 상황 보고 결정하겠다 했었다. 하지만 용돈을 두둑이 받은 아이가 좀 더 있다 가기로 말한 터라 영락없이 점심 이후에 가야만 했다.
그래도 망고가 위치를 바꾸지 않고 한자리에 있는 것이 신경 쓰여 아침은 건너뛰고 아점으로 빠르게 먹고 집으로 가보려고 했으나 하필 그날은 어린이날!! 비가 쏟아지고 이래저래 차는 막히는 상황!! 밥을 배불리 먹었지만 디저트도 많이 먹어야 하는 성장기 아이는 카페에서 또 이것저것 먹다 보니 또 차가 막히고!! 바리바리 챙겨주시는 물건을 받아 가야 하니 다시 친정집에 들러 출발해서 집에 도착하니 늦은 오후...
망고는 그때까지도 창문 앞에 놓인 임시 캣타워에서 멍하니 있다가 먼저 들어온 아이와 나를 보더니 기지개를 켜고 슬금슬금 다가왔다. 뭐라 뭐라 말하면서 탐색하더니 아이 다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ㅠㅠ
저녁 7시에 출발해서 다음 날 오후 5시경에 집에 왔으니 대략 22시간 동안 혼자 집을 지켰던 망고...
cctv로 지켜본 망고는 현관문이 잘 보이는 곳인 창문 앞 임시 캣타워에 앉아 우리를 기다렸다. 평상시에는 자동급식기에서 저장해 둔 내 목소리가 나오면 잽싸게 달려가 사료를 먹었는데 집에 도착해 살펴보니 사료도 많이 먹지 않았다...
고양이는 개보단 혼자 잘 지낸다고 하지만 망고는 밤새 우리를 기다린 거라 생각이 든다. 반가우면 달려드는 개랑은 다르게 망고는 조심스레 다가왔지만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아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내가 볼 때 진심으로 망고는 우리에게 마음을 열어준 것 같았고 항상 있던 사람들이 안 오니 기다린 것이다.
혼자 둬서 미안해~ 망고야~~~ㅜㅜ 그리고 고마워... 조심스러운 너의 마음...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