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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벗이 떠났다...

단상 (21 ~ 25)

by 글 쓰는 나그네

* 백혈병 진단 후 항암 치료 중입니다. 제 눈으로 바라본 삶에 대한 짧은 이야기를 담아가고 있습니다.



21. "구름 위를 걷는 거야. 불확실한 삶을 살아간다는 건~ 우리가 걸어 나갈 한 걸음 한 걸음 날 잡고 있는 그 손을 놓지 않을 거야" 박효신의 Home의 일부분이다. 노래를 많이 듣는 편은 아닌데, 우연히 복면가왕에서 소향 부른 노래를 듣고 감동받아 여러 번 재생해서 들었었다. 구름 타고 날아가는 것 같지만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게 인생이다. 어제까지는 지극히 평범한 샐러리맨이었고 어엿한 가장이었는데, 지금은 좁은 병실에서 삶의 바닥을 기고 있다. 그래도 삶은 그렇게 비극적이지만은 않다. 경제는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시장을 주도하지만, 우리의 삶에는 놓지 않고 꼭 붙드는 손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독수리 날개 쳐 올라가듯, 다시 그분 손 잡고 비상하게 되기를 꿈꾼다.

손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어여쁜 역할은 누군가를 어루만지는 것이다. -김소연의 <마음사전>-




22. 카톡으로 부고장이 날아왔다. 두렵다. 또 누굴까? 카톡 부고장은 여전히 생경하다. 보통은 친구나 직장동료 그리고 지인들의 부모님에 대한 부고인데, 형식이 갖춰진 카톡의 부고장은 나와 교류가 있는 사람이라는 증거다. 그래서 두렵다. 누굴까? 살짝 터치해서 들어가니, 2주 전 병실 맞은편에서 함께 지내시던 분이다. 재발해서 다시 조혈모세포 이식을 한 후였는데, 처음 볼 때보다 더 안 좋은 상태로 퇴원하셨다. 마주 보며 이야기는 많이 했지만, 퇴원하면서 못다 한 말이 많다며 전화번호를 원했고 나도 흔쾌히 전했다. 퇴원 당일에 문자가 왔다. 가족도 종교도 나이도 비슷해서 더 친해지기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퇴원하면 전화하겠다는 마음을 품고 있었는데, 병원에서 부고장을 받게 되었다. 혹시나 해서, 수간호사께 물어보니 그렇다는 답변을 듣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죽고 사는 게 이런 건가?' 희망을 품고 나갔는데, 절망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장례식장도 내 침대에서 바로 보이는 곳이라 도저히 잠들기가 어려웠다. 며칠간 커튼을 닫고 지냈다. 어쩌면 이곳에 누웠다 저곳으로 옮겼을 뿐인데.,. 밀려오는 슬픔은 주체하기 힘들다. 그의 침대는 여전히 빈 자리로 남아 있다.


주인 잃은 그의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냈다.

"저는 아직 옆자리에서 퇴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퇴원하면 바로 연락드리려고 했었는데... 오늘 먼저 주님께로 가셨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네요. 퇴원 후 회복하며 잘 지내셨기를 바랐는데, 힘겨워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남아 있어 마음이 아픕니다. 그곳에서는 고통 없이 밝은 길을 걷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길벗과도 같은 짧은 만남이었지만,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겠습니다. 나중에 천국에서 봬요."


잠깐 만난 길벗이 떠났다.




23. 요즘 주식 광풍이다. 주식 창을 바라보면 볼수록 허무해진다. 전광판의 숫자에 목매고 쳐다보는 것만큼 한심한 것도 없다. 알면서도, 그 한심한 짓을 끊임없이 한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는 말처럼 코스피가 3100을 돌파했다. 소외되지 않으려고, 배 아프지 않으려고 물들어오는 곳으로 너도나도 향한다. 노를 제대로 저을 수 있을진 모르지만. 괜히 난파선에 올라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세상은 숫자가 중심으로 돌아간다. 어떤 숫자를 쟁취하느냐에 따라 부와 성공이 함께 따라온다. 그 숫자를 붙잡으려고 피 터지게 공부하고 싸우고 있다. 그러고 보면 행운의 숫자는 7이 아니라, 숫자와 멀어지는 것이리라. 그래야 행복해진다.

광풍 속에서는 잠잠히 기다리는 게 능사다




24. 3일 연속 밤잠을 설쳤다. 잠들기도 힘들지만 짧은 잠결에 깨어나면 답답함에 누워 있을 수 없다.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하다 길지도 않은 복도를 거닐며 한 숨 짓다 돌아온다. 다시 드러눕고 먼 천장만 바라본다. 천장이 모니터가 되어 타다닥 글자가 박힌다. '너, 지금 여기서 뭐하니?' 질문 아닌 질문만 하다 글자는 사라진다. 쉬이 잠들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그냥 '집에 가고 싶다!'는 짧은 한마디만 입 안에서 맴돈다.

나, 다시 돌아갈래!



25. 너무나 고요하다. 주말이라 회진도 없고 간호사의 들락 거림도 덜하다. 깊은 산속에 갇힌 적막함이랄까. 모두 힘겨운 날인 듯 잠에 취해 있다. 이들도 하루 종일 누워 있게 될 줄 알았을까? 누워 있는 삶이 얼마나 되었겠냐마는 이런 생활은 무척 힘들고 지치게 한다. 병실 생활이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침대와 한 몸이 되어간다. 코로나의 영향도 있지만, 커튼이 쳐진 침대를 벗어나지 않는다. 력셔리한 우리에 가둬 놓고 사육하는 것과 뭐가 다를까?


사람은 움직여야 사는데, 움직임이 동반될 때 사람이 사람이 되는 것일진대...사람 인(人)자를 보더라도, 혼자 서 있지 못하고 둘이 기대어 서 있다. 혼자가 아니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의미다. 그렇게 기대어 서 있다 보면 마찰이 생기고 그 마찰에서 에너지가 발생한다. 죽어가는 에너지가 아니라 생동감 넘치는 에너지, 그게 삶의 또 다른 이름이다. 삶은 부딪히며 에너지를 만드는 지속적인 과정임을 기억하자. 에너지는 어디에도 있다.

침대와 한 몸이 되어도, 이렇게 글을 쓰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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