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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가 되어 훨훨 날고 싶다...

단상 (11~15)

by 글 쓰는 나그네

* 백혈병 진단 후 항암 치료 중입니다. 제 눈으로 바라본 삶에 대한 짧은 이야기를 담아가고 있습니다.




11. 닥터헬기가 며칠에 한 번씩 이착륙하며 생명의 신호를 보낸다. 어떻게든 살려는 마음과 어떻게든 살려 보겠다는 마음이 합해져 고귀한 생명의 불꽃을 태운다. 누군가 그랬던가. 살고 죽음은 작은 콧구멍에서 바람이 나오냐, 나오지 않느냐의 단순한 문제라고. 그 바람을 멈추지 않고 일으키려고 아등바등 노력하는 모습들이 경이롭다. 잠깐 앉았다 다시 날아가는 닥터헬기를 보며 소백산에서 만난 고추잠자리가 연상된다. 잡으려면 날아가고 다시 잡으려면 날아가서 쳐다만 보며 미소 지었는데, 평생 붙잡고 소유하려는 이 마음을 내려놓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닥터헬기처럼 찰나의 순간만 느끼고 떠나보내면 될 터인데..

나비가 되어 훨훨 날고 싶다..




12. 준서가 원하던 운동을 하며 밝아졌다고 한다. 동적인 삶을 갈구하던 아들이 정적인 공간에 묶여 살려니 무척 답답했었겠다. 몸이 삶이 되는 아이다. 몸이 언어가 되어 말한다. 그런 아이를 몸으로 말하지 못하게 붙들어 뒀으니 미칠 만도 하겠다. 언어는 다양한 방식으로 대화의 도구가 된다. 몸으로 대화하는 사람이 있고, 책으로 대화하는 사람이 있고, 입으로 대화하는 사람이 있다. 각자의 방식이 다르지만 자신에게 맞는 것을 찾는다면 그 도구가 보물 지팡이가 될 것이다.

내 보물 지팡이는 뭘까?




13. 정처 없이 떠도는 나그네의 삶이 봉이 김선달 만한 이도 있으랴마는, 펜대를 들고 여기저기서 설쳐대는 나도 나그네다. '글 쓰는 나그네!' 이름은 거창하게 지었지만, 내 글의 생각의 범주는 모래사장을 벗어나지 못한다. 지우고 또 지우기를 반복하며 어렵게 빚어낸 글이, 밀물에 갇히고 썰물에 밀려가고야 만다. 공허한 백지로 남겨진 아쉬움은 어느새 그리움으로 변해 다시 펜을 집어 든다. 무엇이라도 남기고 싶은 간절한 욕망이 나그네의 삶을 지탱하는 구심점이다. 이제까지 검은색의 글만 썼다. 파란색, 빨간색도 있는데 내 안엔 검은색만 가득하다. 매일 검은색의 옷을 입던 내게 단색의 그늘에서 벗어나라 말한다. 색채의 아름다움은 단색에 치우치기보다, 다른 색과의 조화에서 찾으라 말한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더불어 살 때 더 아름다운 색채로 빛 날 수 있다고...

살짝만 쳐다봐도, 미소로 가득 채울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14. 사회와 격리되고 동떨어진 낙오자의 삶을 살고 있지 않은지 자괴감이 들 때가 많다. 바쁘게만 살아온 25년간의 직장생활이 그림처럼 스쳐 지나가지만 더 이상의 그림은 그려지지 않는다. 결과와 성취물을 만들어 내야 하는 삶이었는데, 그런 결과를 만들어낼 수단을 잃은 느낌이다. 손발이 잘려 나가고 몸만 덩그러니 남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자괴감...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할까?




15. 혈액 수치가 떨어져서 그런가 피곤해진다. 오전, 오후에 한 차례씩 졸음이 몰려온다. 쉬라는 신호다. 이럴 때는 쉬어야 한다. 원기회복을 위해서는 쉼 만큼 훌륭한 영양제는 없다. 하나님이 지치고 피곤한 영혼에게 쉼을 명하신 것처럼 잘 쉬고 다시 거뜬히 일어서야겠다.

글도 쉬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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