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백혈병 환자입니다." 이 말을 글로 옮기는데 5개월의 시간이 흘렸다. 그 사이 입맛을 잃고 글맛도 잃고, 브런치와도 연을 끊었다. 이제는 고향 같은 이 곳으로 다시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다시 펜, 아니 키보드와 마주 앉았지만 이 고백을 하지 않고서는 글을 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제목에 고백의 의미를 담았다.
20년 7월 말,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급성 전골수성 백혈병" M3라고도 불린다. 그나마 백혈병 중에 치료 예후가 가장 좋은 쪽에 속하고 조혈모세포 이식을 하지 않아서 다행인 백혈병이다. 하지만 현실을 받아들이고 항암치료를 받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힘겨운 항암치료의 과정, 몸도 힘들지만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번뇌의 시간을 거쳐 이제 4차 마지막 단계까지 접어들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어느새 새로운 꿈이 되었다. 해 보지 못했던 것이 아니라 해 본 것들을 되찾는 과정이 버킷리스트가 되었다. 체력을 회복해서 산에 오르는 것, 맘껏 달려보는 것, 직장에 출근하는 것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여행하는 것들. 소소하지만 작은 것을 이룰 수 있다는 꿈을 꾸며 행복을 그려가고 싶다.
일상으로 돌아가고 픈, 그리움의 눈으로 작고 소소한 이야기를 써 보려 한다. 짧은 생각을 옮기는 글이지만 지금의 내게는 이렇게라도 품어내고 쏟아내는 짧은 이야기들이 힘이 된다.
2. 바람의 울림이 매섭다. 무언가에 북받친 감정을 과하게 표현하려는 듯 이리저리 부딪히며 시비를 걸고 있다. '걸리기만 해 봐라!' 사고뭉치 인간이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고 폭력으로 울분을 해소하려는 외침으로 들린다.
그래도, 바람처럼 휘휘 떠나고 싶다
3. 이 곳 병원 생활에도 가장 중요한 세 가지가 있다. 잘 삼 형제라 부르는데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는 것이다.' 이 세 가지만 잘 이루어지면 병원 생활도 견딜만하다. 다른 부작용도 많지만 항암 이후엔 매일 오심, 구토와의 싸움이다. 식사 때만 되면 부담스럽다. 음식 냄새만 맡아도 만나기 싫은 울렁울렁 친구가 찾아온다. 헛구역질을 하거나 음식 먹기를 포기할 때도 많다. 아내의 입덧 고통을 20년이 지나 이제야 느끼게 된다. 그땐 잘 몰라서 누구나 겪는 당연한 것이니 참으라고만 했었는데, 역시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내가 아파 봐야 알게 된다. 고통은 마음만으로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이제는 이 생활도 선배라고 이제 들어오는 신입(?) 환우들에게 조언을 한다고 설치고 있으니...
손맛 나는 아내의 집밥이 그립다!
4. 병실에서 바라본 형형색색의 아파트가 품어내는 불빛이 다채롭다. 벽으로 둘러싸인 콘크리트 더미 속을 뚫고 불빛이 말한다. '우리 아직 밝은 세상을 꿈꿀 수 있어.' 밝음과 어둠, 빛과 그늘. 너희는 한 몸으로 태어난 존재들인데 왜 그렇게 극과 극을 치닫고 있을까? 빛이 없으면 그늘의 존재 의미가 있을까? 무엇이든지 극단으로 치닫는 것에는 두려움의 형체가 숨어 있다. 그 두려움을 감추려고 더 극단으로 치닫는다.
더불어 함께 살아가야 할 존재들임을 기억하자.
5. 모처럼 잠깐 만난 청명한 하늘과 생선 뼈다귀 모양의 구름 사이로 지나가는 항공기. 뭔 조화일까? 서로 맞지 않을 것 같은 조합에서 어우러짐을 찾는 것이 인생이 아닐는지? 삶은 똑같이 정해진 조각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전혀 다른 조각의 모서리가 닳아가며 맞추는 과정일 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