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혈병 진단 후 항암 치료 중입니다. 제 눈으로 바라본 삶에 대한 짧은 이야기를 담아가고 있습니다.
6. <울지 못하는 슬픔>
비가 메말라 땅이 갈라지고
바람이 메말라 산불이 나는데
눈물이 메말라 슬피 울지도 못한다
메마른 눈에 눈물 한 방울씩
똑똑 떨어뜨려
눈물바다에 배를 띄운다
이제는
갈라지지도 말고
불나지도 말고
슬피 울 수만 있게 해 달라고.
울 수 있는 것도 행복이다. 울음을 참는데 너무 익숙한 삶을 살았다. 아프면 아파하고 슬프면 슬퍼하고 눈물 나면 울면 되는데, 그게 뭐라고 울지 못하고 꼭꼭 누르며 살았다.
7. 모처럼 책을 집어 들었다. 눈길은 가는데 마음길은 열리지 않는다. 단어는 알겠는데 의미는 모르겠고, 읽기는 읽는데 머릿속에 남진 않는다. '내가 왜 이 책을 붙들고 있어야 하나?' 한 숨 한가득 내뿜고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려놓았다. 네가 있을 곳은 여기야. 책을 소유했다고 책의 주인은 아니다. 내 것이 아니면 본래의 자리로 돌려놓으며 살아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그래서 인생이 꼬이나 보다.
책이 임자를 만나면, "책임자!"... 그냥 아재 개그다.^^
8. 또 밥때가 되었다. 지겨운 밥 먹는 시간. 똑같은 밥인데 유별나게 먹는 게 힘들다. 가끔은 냄새도 맡기 거북해 보자기(혈액수치가 떨어지면 멸균 식사를 해야 해서 일반 음식에다 고열로 한번 더 찐다)를 풀지도 않고 덮어 버린다. 살기 위해서 들어왔는데 죽기보다 싫은 게 밥 먹는 것일 줄이야. 삶이 지겹다면 병원밥을 한 달 먹어봐라. 새로운 삶의 활력소가 생길 테니...
밥이 그립다. 아내가 그립다.
9. 두려움엔 실체가 없다. 단지 모퉁이를 지나는 그림자만 볼뿐. 형체가 없는 그림자에 두려움을 느끼는 나약한 존재, 그게 인간 본연의 모습이다. 황무지에 혼자 떨궈 놓으면 어찌할지 몰라 방황하는데, 막대기 하나 중간에 꽂아 놓으면 그것을 구심점으로 살 방향을 찾아간다고 한다. 부분적인 것, 보지 못한 뒷면에 두려움을 느끼며 완전한 것을 찾으려 노력하지만 완전한 존재는 없다. 창조주 밖에는...
나 떨고 있니? 떨지 마라. 그분이 계시니!
10.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이 멋있다. 낡은 안경테가 고풍스러운 멋을 더한다. 늙지만 낡지는 말라고 했던가. 민머리의 헤어스타일이 어느새 정겨워졌다. 자주 보면 정겨워지는 것, 그게 '정'이라는 단어이다. 내 자신을 매일 바라보며 민머리에 정이 들었다. 항암제 투여 후, 보통 2주 정도 지나면 머리카락이 빠진다. 점차 빠짐의 세기는 더해져 한 움큼씩 빠질 때면 머리 감기가 무섭다.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도 실제로 내 손에, 거울에 비치면 당황스럽다. 그래서 가장 그리운 물건이 '바리깡'이다. 화~악 밀고 싶은 간절함이, 나에게는...
그냥 민머리로 살까? 너무 편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