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혈병 진단 후 항암 치료 중입니다. 제 눈으로 바라본 삶에 대한 짧은 이야기를 담아가고 있습니다.
36. 혈색소가 7점대(정상 12.5~17.5)로 정상보다 많이 낮다. 5.9에서 적혈구 수혈을 2개 받고 오른 수치다. 골수에서 자체적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아직 골수가 힘이 없나 보다. 퇴원 후, 체중이 많이 불었다. 집에서 잘 먹고 움직임이 덜해서 당연하다 생각했었다. 하지만 며칠 전 아들이 안마를 해주며 놀란 표정으로 묻는다. "아빠! 종아리가 왜 이래요" 비정상으로 퉁퉁 부어 있었다. 한껏 성난 것처럼 단단해져 있다. 정상적으로 체중이 증가된 것이 아니라 몸이 부었다. 1차 항암 치료할 때 갑자기 체중이 불어 손에 반지가 빠지지 않아 고생했었다. 병원에서야 이뇨제 등 약물을 투여해서 강제로 감량했지만, 집에서는 난감하다. 아내와 아들은 병원에 가 보라고 재촉하는데, 그러고 싶진 않다. 아직 빈혈은 견딜만하다. 지난번 설 연휴기간에 침대에 거의 붙어서 살았었다. 움직이면 어지럽고 숨이 차서 호흡하기 힘들었다. 그때의 경험치가 쌓여 있기에 아직은 아니라는 판단이 섰다.
그래도 자고 일어나면 혈액순환이 되어 종아리 부기는 빠진다. 당분간은 이런 과정이 계속되겠지만, 스스로 이겨내 보련다. 매일 산책하며 만보 걷기에 도전하는데, 힘들지만 심장이 허락하는 한 계속 이어가고 싶다. 걷다 보면 알게 될 것이다. 누가 이기는지... 한 번 끝장 보고 싶다.
골수야! 이제 일 좀 하자!
37. '내 마음 별과 같이' 현철의 노래가 생각난다. 한때는 별처럼 빛나고 싶었다. 별처럼 다른 이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싶었다. 아픔을 겪고 있는 지금은 별을 바라보는 건강한 나그네가 되고 싶다. 내 것이 아닌 것에 빠져 헤매지 않고 그저 건강하게 바라보며 내 일을 묵묵히 해 나가는 삶이 그리울 뿐이다.
일상을 찾는다는 게 행복일 줄이야!
38. 샤워하다 팔꿈치에 멍 자국을 발견했다. 또 뜨끔하다. 멍 자국이 시발점이 되어 백혈병 진단과 치료까지 왔는데 또 멍이라니... ㅠㅠ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멍 때리는 삶이 부러웠다. 어디 멍 때리기 대회라도 나가고 싶었고 입상할 자신도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조용한 고택에서 하늘과 산과 바람과 공기를 친구 삼아 멍하니 바라만 보고 싶었다. 같은 멍인데 의미는 사뭇 다르다. 내가 멍을 너무 그리워했던 것일까? 작은 동전만 한 자국이지만 팔꿈치에 이어 무릎까지 이어졌다. 걱정이 된다. '혈소판이 많이 떨어졌나? 혹시, 재발한 것 아닐까?' 아침에 일어나면 아내와 함께 멍자국이 더 늘었는지 샅샅이 찾아보는 게 일상이 되었다. 사실, 두렵다. 삶이 있는 한 행복이 있다고 되뇌지만, 그 삶의 끝자락이 언제일까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꿈틀거린다. 삶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이라고 한다. 이기려 하지 말고 묵묵히 사랑하자. 친구처럼 연인처럼 함께 살다 보면 언젠가 내 마음 알아주지 않겠는가!
이 또한 지나가리라~
39. 창가를 휘몰아치는 바람에게는 질서가 없다. 여기저기 마음 내키는 대로 두드리고 부딪힌다. 그 소리엔거친 슬픔이 배어 있다. 쓸쓸하다고 해야 하나. 거침없이 거세게 몰아치지만 어느 누구도 호응해주지 않는다. 홀로 외로이 휘몰아치다 지친다. 오랫동안 함께 한 여친에게 차인 후의 방황하는 모습이랄까. 아직 젊은 바람인가 보다. 삶의 경험이 녹아 있다면 저렇지는 않을 텐데. 흥분을 삭이는 방법을 너도 알아야 될 터인데...
젊은 바람이 부럽다. 마음 내키는 대로 휘몰아치니...
40. 글자가 잘 안 보인다. 침침하다. 노안이 온 것이다. 이젠 작은 글자는 안경을 벗고 봐야 한다. 유튜브 영상도 안경을 벗고 보면 편안하다. 항상 내 것처럼 붙어서 살아온 세월이 얼마인데, 이 놈도 멀리해야 하나. '불가근불가원' 눈앞 가장 가까이 두고 지냈는데, 가끔은 멀리 떨어뜨려 놓아야 한다. 가까이 하기도 멀리 하기도 애매한 순간이 많아졌다. 아내가 몇 년 전부터 안경을 바꾸라며 누누이 얘기했는데(안경테가 마음에 안 든단다) 이제는 아내의 말을 들을 때가 되었다. 지난번 안경 구입할 때 아내와 함께 같었다. 아내의 취향과 내가 원하는 스타일이 달라서 고민하다 여자 안경사의 조언에 따라 선택했다. 그 이후, 지금까지 안경에 대한 불만이 몇 년째 이어져오고 있다. 이번에는 무조건 아내의 말을 듣으련다. 내 마음과 다르더라도 아내가 만족하면 무조건 OK. 아내 말 잘 듣는 남편이 되련다. 그게 행복의 척도라는 생각이 부쩍 든다. 점점 나이 들어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