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걸 어떻게 아세요?
서른 중반부터 내 머리카락은 반백이었다. 뭘 써 보겠다고 낑낑대면서 머리카락이 하얗게 세 벼렸다. 첨에는 셀프로 염색을 하며 예쁘게 되지 않는 것도 감수했었다. 젊을 때는 몰랐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머리카락이 센티미터별로 색갈이 약간씩 다른 것을 보는 것이 그렇게 추레해 보일 수가 없어 미용실에 다니기 시작했다. 원래 어려서부터 긴 생머리를 오래 했어서 그냥 질끈 묶고 다녔는데 나이를 먹고 살이 찌면서 긴 생머리가 어울리지 않았다.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고 미용실에서 염색을 한지 몇 년 되었다.
나는 염색을 하러 아무 미용실이나 간다. 3주만 지나도 머리가 지저분해지기 시작하는데 더 이상 못 참겠을 때 눈에 보이는 미용실에 간다. 일률적인 색깔을 위해 한 군데를 가려고 노력은 하는데 종횡무진 돌아다니다 보니 시간이 날 때 가까운 미용실에 간다. 그러다 보니 즐겨 가는 미용실이 서너 개나 된다.
그러다 작년에 회사를 그만두고 미용실을 정해놓고 다녔었는데 담당 미용사가 그만두게 되었다. 새로 정해진 미용사가 맘에 들지 않아 다른 미용실에 가게 되었는데 마트건물 내에 있는 미용실이다. 기억에 한 이 년 전에 갔었던 것 같았다. 미용실에 들어서자 헤어디자이너가 반갑게 나를 맞았다.
뒷 번호가 어떻게 되느냐며 회원등록을 했는지 찾아보겠단다. 아마 등록되지 않았을 번호를 불러주며 염색을 하러 왔다고 하고 자리에 앉았다. 디자이너는 머리칼을 뒤적이며
"동생분은 독일에 잘 가셨어요?'
하고 말했다. 순간 얼음이 되었다. 동생이 한국에서 한 달 동안의 여름휴가를 마치고 독일로 돌아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는데 그걸 어떻게 알아서 내 동생의 안부를 묻는 거지 하며 대답도 못하고 어벙벙하고 있었다.
"아직 직장은 00동이시죠?"
얼떨떨해하며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했더니 고객카드에 메모가 되어 있었단다. <동생 독일, 직장 000> 이렇게 말이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니 다 기억할 수는 없고, 중요한 사항만 적어 놓는다고 했다. 동생이 독일에 간지 2년이 되었으니 아마도 동생이 떠나기 전에 그곳에서 염색을 하며 정보를 흘렸었나 보다. 나는 평소에 말이 없는 편이다. 말을 많이 시키면 옷을 사러 갔다가도 그냥 나온다. 미용실에서도 너무 말을 많이 시키면 다음에는 가지 않는다. 그런 내가 이렇게 중요한 나의 정보를 떠들어 댔다니, 믿을 수가 없다.
어쩌면 이러저러한 질문에 대답을 하며 근황토크를 즐겼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생각지도 못한 나의 정보를 여기저기 질질 흘리고 다니고 있었나 보다. 언젠가 길을 가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다가와서는 성심당 가는 길을 물었다. 대충 길을 알려주고 나니 나보고 근심이 있어 보인다며 혹시 5월생이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2월생이라고 대답했다. 이사할 것 같다고 하길래 내가 아니라 딸이 이사해야 하는데 그게 고민이라고 뜬금없이 길거리에서 내 정보는 냅다 던져주고 있었다. 그 사람은 나에게 신수를 봐줬으니 커피값이라도 달라고 했다. 내 생일, 내 정보를 내가 떠들어대고 나는 그 사람에게 돈도 줬다.
나는 냉장한 편이고 말이 없는 편이고 의심이 많은 편이다.라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나는 어쩌면 수다쟁이에 의심도 없고 아무나 믿고 떠드는 그런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