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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상희 Jan 18. 2023

결혼은 했나?

외할아부지

외삼촌에게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기도 전에 가슴이 벌렁거린다. 외할아버지의 소식일까 싶어서다.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야, 너 왜 우리 집에 안 와. 담주에 한번 와. 삼춘 이제 퇴직해서 시간 많어. 와."

하신다. 우선 비보가 아니라 벌렁거린 가슴을 쓸어내리며 한번 들리겠다 했다. 그리고 어제 외갓집에 갔다.


원래 시골 농가에서 사시던 분들이 도시개발로 아파트에 살았었는데 상가주택을 지어 이사를 하셨다. 1층에 예쁜 카페가 있어서 건물이 깔끔하니 좋았다. 나도 참 너무했다. 먼 곳도 아닌데 이사를 하신 줄도 모르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93세 이시다. 내가 쉰둘인데 할아버지가 93세 시라니! 젊으시다. 엄마도 첫째, 나도 첫째여서 나는 외삼촌, 이모들과 함께 컸다. 그나마 엄마가 돌아가시고 새엄마가 들어오고 난 다음부터는 발길을 끊어서인지 나는 사촌동생들과는 서먹하다. 사촌동생들도 나를 이모나 고모 보듯이 대한다. 


할아버지께 옆에 앉아서 안부를 여쭙고 용돈도 드리고 쫑알쫑알 현재의 생활에 대해 보고를 드렸다. 경상도 사나이 할아버지는 다짜고짜 물으셨다. 


결혼은 했나?


앗 할아버지, 그런 질문은 우선 저에게 30만 원 주시고 물으셔야 해요. 크게 웃고 할아버지께 말씀드린다. 


저, 큰애가 이번에 스물여덟 됐어요.


맞나. 그런데 니가 박사제?


이번엔 외숙모가 나선다.


얘 동생, 영희가 박사 했지, 아부지! 영희는 지금 독일산댜!


할아버지는 어리둥절해하시다가


아, 니보다 위에 하나 있제?


하신다. 예 했다. 내가 큰애지만 뭐 굳이 할아버지께 시시비비를 가릴 필요는 없으니까 말이다. 93세 치고는 그래도 몸이 멀쩡 하시고, 드시는 것에 구애받지 않으시고 가고 싶으신 데를 맘껏 다니신다고 했다. 누가 보면 80세라고 해도 믿을 것이다. 이 정도 헷갈림은 내가 자주 가지 않아서 생긴 오해일 것이다.


삶에서 첫째 자식은 얼마나 귀한 존재인가. 그런 딸이 일지감치 세상을 뜨고 셋이나 되는 손자손녀를 떠올리시며 아마도 결혼은 했는지 어쩐 지가 걱정이셨던 거다. 할아부지, 엄마는 셋 떨구고 가셨고 우리는 열둘이 되었어요. 다들 결혼해서 애가 둘씩.  3X4=12 라니까요. 엄마, 성공하셨어.


그래도 엄마 돌아가신지 40년이 되니 울지 않고 외갓집 식구들을 볼 수가 있다. 가끔 외갓집에 가면 나를 보고 다들 자꾸 울었다. 내가 엄마랑 똑같이 생겨서이다. 이모도 나를 보면 꼭 언니를 보는 것 같아서 조심스러워진다니 말해 무엇하겠는가. 무뚝뚝한 큰외삼촌은 나를 보면 술만 마셨는데 외삼촌을 보면 내가 울었다. 엄마의 새무덤 앞에 앉아서 '누나, 누나'하며 울던 모습이 자꾸 떠올라서다.


가족은 그런 건가보다. 오랜만에 만나도 좋기만 하다. 어색하지 않다. 밥 잘 얻어먹고 할아버지가 사 주신 자몽차도 한잔 마시고 집에 가려고 나서니 외숙모가 참깨와 함께 들기름을 한병 내민다. 줄 것이 없다며 미안해하신다. 이모가 한과도 한 보따리 주신다. 만드셨단다. 두손과 마음이 두둑해진다.


어쩌면 잊고 살아도 되었을 조카를 위해... 늘 걱정해 주시는 외갓집 식구들. 모두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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