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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죽음

by 윤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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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남은 육신이 홀로 남은 숨을 들이켤 때

옅은 소리 못 듣는 내 낡은 귀는 힘껏 벌려지고

저 멀리 검은 방에서부터 쳐들어오는 회색의 욕지거리

노인의 비망(非望)과 비명(碑銘)이 허물어지는 소리


들숨이 서글프고 날숨이 하얘져갈 때

경계를 잃은 벽 사이로 헤엄쳐오는 절망은

차라리 나를 데려다 목매달고

퍼렇게 물들어가는 머리통은 눈물이 없다


묵직한 것들 따위가 눈두덩이를 짓누르고

유년의 썩은 핏물은 혈관을 역류하고

어디서 묻혀온 초겨울의 냄새는 뺨에 스미고

결국 나의 스무 해 밤은 깨어나지 않는다



쉬운 죽음. 윤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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