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골 콘크리트집
나는 사계절을 사랑한다.
소중한 것을 정말 소중하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까닭은, 그것이 소중하다고 느낄만한 경험들이 내 안에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골짜기에 봄이 찾아오면, 나는 이 계절이 올 때마다 냉이와 쑥을 캐는 엄마 뒤를 졸졸졸 따라다녔다. 쑥은 곧잘 찾아냈지만 냉이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풀 중에서 냉이와 잎사귀 모양이며 크기며 자잘 자잘한 뿌리까지 생김새가 아주 비슷한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냉이와 이 크게 달랐던 점이 있었다면, 냉이 특유의 향이 그 풀에서는 나지 않는다는 것 이었는데, 그런 사실을 쉽게 터득하지 못해 가짜 냉이를 얼마나 많이 캤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엄마와 내가 직접 캔 냉이가 들어있는 엄마표 냉이 된장찌개는 향긋하면서도 구수해서 봄마다 생각나는 음식이 되어 버렸다.
한 여름에는 동네 언니 오빠들과 함께 계곡물에 돌을 쌓아 작은 둑을 만들어 물을 가두고, 우리들만의 작은 풀장을 만들었다. 수영을 할 만큼 깊지가 않아서, 방아개비처럼 물장구를 쳤다. 물은 정말 맑고 깨끗했다. 상류 쪽으로 올라가면 가끔씩 가재도 잡을 수 있을 정도로. 언젠가 하루는 아빠가 페트병 주둥이 부분을 잘라 그 안에 올챙이 알을 한가득 담아 오신 적도 있었는데, 그 생김새가 꼭 만들어 먹는 재미가 좋았던 '불량식품 개구리알'이랑 너무 닮아서 적잖게 놀랐던 기억도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내가 가장 좋아했던 계절은 가을이었는데, 추수의 계절답게 가장 많은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마을 입구에는 '양지골'이라고 큼지막하게 쓰여 있는 바위 같기도 하고 비석 같기도 한 것이 투박하게 세워져 있었다. 그 앞 쪽으로 넓은 공터 같은 공간이 있었고. 그곳은 어떤날에는 주차장이 되기도 했다가, 놀이터가 되기도 했다가. 양지골 아버지들이 돼지라도 잡은 날이면 온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여 바비큐를 해 먹던 복합 공간 이였다. 나는 사실 그 복합 공간에서 들깨 나무 더미를 태울 때가 가장 즐겁고 행복했다. 들깨 나무를 태울 때 나는 특유의 향은 시커먼 연기마저 용서될 만큼 향긋하고 고소해서 사람의 기분을 좋아지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는데, 그 향보다도 더 재주가 뛰어났던 건 들깨 나무 더미 안에 넣어두었던 감자나 고구마 같은 것들 이였다. 어른들은 꼭 들깨 나무 더미를 태울 때마다 감자와 고구마를 함께 태웠다. 가까운 동네 슈퍼까지도 사십여분이 걸리는 동네에 아이들이 살게 되면, 자연스레 과자나 초콜릿 같은 군것질 거리와는 거리가 멀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면 당연스럽게도 들깨 나무 더미 속 감자와 고구마가 진귀하게 느껴지는데, 잔불 앞에 모여 앉아 호호 뜨거움을 식히며 잘 익은 김치와 함께 한 입 꿀꺽했던 따듯한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면 쉽게 상상할 수 없는 맛이었다. 우리에게는 정말 최고의 군것질거리였던 셈이다.
그리고 대망의 겨울.
유난히 길고 추웠던 골짜기의 겨울은 가뜩이나 고립된 마을을 더욱더 외롭게 만드는 계절이었다. 자동차 바퀴에 체인을 다는 것은 필수였고, 안전운전은 당연한 일이었다. 조금이라도 눈이 많이 내린 날에는 양지골의 어른들은 제설작업에 온 힘을 다했는데, 나를 포함한 양지골의 어린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눈이 소복이 쌓이기만 하면, 한 손에 사료포대를 들고 비탈길 위에 모였다. 돈사가 있는 동네에서 사료포대를 구하는 일은 식은 죽 먹기다. 마을에는 놀이터가 없었지만, 겨울만큼은 미끄럼틀이 생각나지 않는 계절이었고, 그 재미는 미끄럼틀 그 이상이었다. 그때는 추위도 몰랐다. 그저 하얗게 변한 세상이 좋아서, 그 속에서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나뒹굴며 웃기만 했다.
소중했던 나의 사계절.
나에게 소중한 크고 작은 경험들은 셀 수 없이 많지만, 골짜기에서의 사계절은 유난히 더 특별한 경험이였다.
양지골의 사계절은 변화무쌍했고, 우리에게 많은 추억과 기쁨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