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골 시멘트 집
양지골. 볕이 바로 드는 골짜기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곳.
실제로도 정말 볕이 잘 드는 곳이었는지는 정확히 잘 모르겠지만, 우리 엄마의 애증이 담긴 표현. 골짜기도 아주 그런 고오오오오올짜기가 없지! 산구석도 아주 그런 사아아아아아안 구석이 없다!!!!! 를 들으면 대강 짐작할 수 있다. 우리집이 얼마나 산속 깊숙이 짱 박혀 있었는지를.
실제로 살아보니 정말 그랬다. 양지골은 강원도 명성답게 등빨이 하나같이 좋았던 산과 산과 산들에게 깊숙이 파묻혀 있었다. 집 앞까지 가는 대중교통도 당연히 없었다. 구불구불 굴곡진 비포장 도로를 따라 가파른 고개를 여러 번 넘어야지만 간신히 닿을 수 있던 곳. 바로 이런 곳에 우리 집이 있었다.
우리집은 시멘트 집이었다. 회색 빛깔뿐만 아니라, 벽을 만졌을 때 특유의 서늘함과 거칠고 까슬까슬한 촉감이 선명하게 느껴지곤 했기 때문이었다. 도색 없이 잿빛 그대로. 하지만, 나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때는 우리집 뿐만 아니라 모든 집들이 잿빛이었고, 나에게 더 중요했던 사실은 옆집이 어떻고 윗집이 어떻다 보다는 그냥 그 집에 내 친구가 사느냐 안 사느냐 하는 것이었다.
깊은 산속 옹기종기 모여있는 시멘트 집. 그 집에 사는 아이들의 아버지는 모두 직업이 같았다. 축산업 종사자.
이건 살짝 여담이지만, 사람들에게 내가 성장기에 이사를 많이 다녔다고 말하면, 그들 대부분은 우리 아버지의 직업을 '군인'이라고 추측하는 경우가 많았다. 왜 그럴까 살펴보니, 군인 가족들도 부대이동에 따라 여기저기 이사를 많이 다닌다고 하던데. 그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주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 아버지는 위에서도 살짝 언급했다시피 군인이 아니었다. 잘못 추측한 그들에게 우리 아빠는 군인이 아니다. 축산업에 종사하고 계신다고 넌지시 말을 해 주면, 그들 중 열에 아홉은 희한하게 가장 먼저 소를 떠올렸다. 그다음엔 닭, 그다음엔 돼지...?! 순이었는데, 한동안은 돼지 뒤에 붙은 점 세 개와 물음표 때문에 몹시 주눅이 들었다. 아빠가 기르는 게 소가 아니고 돼지여서. 사람들의 돼지 뒤에 붙은 그 점 세 개와 물음표 덕분에 우리집이 이렇게 후미진 곳에 있어야 되는 건가 싶어서.
이런 나의 생각은 어느 정도 현실에 근거를 둔 생각이긴 했다. 사람들은 돼지를 먹기는 좋아하면서 그 돼지들이 자신들의 주거공간 범위 내에는 들어오지 않길 바랬다. 하지만, 실제로 돼지는 아주 깨끗한 동물이다. 많은 사람들이 돼지가 얼마나 깨끗한 동물인지 모르고 냄새나는 동물이라며 인상을 쓰곤 하는데, 오히려 냄새는 인간의 이기적인 사육 방식 때문에 생기는 경우가 많았다.
축산업은 단어 본래 의미 그대로 가축을 통해 이윤을 창출해야 하는 '산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돈사'라고 부르는 돼지들의 집에, 내 마음에 드는 귀엽고 깜찍한 돼지 한 두 마리만 선별해서 자유롭고 여유롭게 키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상품으로 취급되는 돼지들로 돈을 벌어야만 했다. 그 결과 돼지들은 좁디좁은 공간에 빽빽이 살아야만 하는 집단 사육 환경에 처하게 되었다. 지금이야 '동물 복지'라는 개념이 낯설지 않고 건강한 먹거리를 원하는 소비자들이 예전보다 많아진 덕분에 동물 복지 인증 농장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하지만, 적어도 내가 양지골에 살 때만 해도 돼지들의 복지보다 중요한 건 이윤창출이었다.
빽빽한 환경 속에 갇힌 돼지들. 그 꿀꿀이들이 뱉어내는 수많은 배설물들을 농가에서 원활히 처리하기 위해서는 정화조가 꼭 필요한 시설이었다. 돈사와 함께 농가운영에 있어서 반드시 갖춰야 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중요한 시설이었는데, 사실 정화조는 악취가 날 수밖에 없는 시설물이었다. 인간의 배설물도 한 곳에 섞이면 구토를 유발할 정도로 역겨운 냄새가 나는데. 돼지라고 다를 리가. 나도 어린 나이였지만, 농장 근처의 산이며 논밭이며 여기저기를 정신없이 뛰놀고 다녔어도, 정화조 근처만큼은 절대 가까이 가지 않았다. 코 끝을 쏘아대는 악취는 너무나도 강력했고 유지력 또한 길어서, 특유의 꼬릿한 냄새가 오랫동안 옷에 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독 시설물에서 나는 냄새 역시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수 있을 만큼 독하고 비위가 상했다. 나는 특히 이 소독약 냄새에 취약했다. 정화조 냄새는 맡을 때 좀 곤혹스럽긴 해도 머리가 아프진 않았는데, 소독약 냄새는 한 번 맡으면 그 날 하루 종일 두통에 시달려야 했다. 가끔 정화조에서 오수가 흘러나와 소독약과 만날 때가 있었는데, 그 냄새는 정말, 정말. 사람이 감당하기 힘든 냄새였다. 머릿속으로 잠깐 상상하기도 싫을 정도로. 하지만, 요즘처럼 전국을 비상사태로 만든 아프리카 돼지 열병이나 구제역 같은 병들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소독 시설물은 농장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시설물이다.
여기서 끝나면 좋으련만, '톱밥'으로 인한 문제도 적지 않았다. 집단 사육 환경에 처해있는 돼지들에게도 조금이나마 안락함을 주기 위해 돈사 내에 톱밥을 깔아주곤 했는데, 습도 조절이라는 긍정적인 효과도 분명히 있긴 했지만, 잘못 관리하면 바람에 여기저기 휘날리며 누런 먼지 덩어리들을 충분히 몰고 올 수 있는 존재들이었다. 결국, 이리 생각해 보고 저리 생각해 봐도 양지골의 후미짐은 사람들의 혐오와 비난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기 위함이었던 것 같다.
양지골뿐만이 아니다. 내가 부모님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을 때 다녔던 이사의 대부분은 아버지의 직장과 관련된 문제들 때문이었다. 우리 가족이 한 곳에 온전히 정착하기 전까지는, 대부분의 집들이 모두 깊숙하거나, 단절되거나, 후미진 곳에 있었던 것 같은데. 이게 과연 우연이였을까?
나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사람들 때문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