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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a솨 Sep 28. 2019

얼굴 없는 아이들

충북 외딴집



 아빠의 몇 번째 사표였을까. 내가 숫자를 배우게 된 시기부터 나는 아빠의 사표들에 번호를 매기기 시작했다. 처음엔 호기심 때문이었다. 일 번 사표, 이번 사표, 삼 번 사표... 사표가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으면서도 나는 사표를 셌고, 몇 번의 경험들이 쌓여 어렴풋이 눈치챈 사실은 아빠가 사표를 쓰면 이사를 가게 될 테니 친구들과 미리 작별인사를 해야겠구나 하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곧 그 셈 놀이에 흥미를 잃었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아마 다른 것에 관심과 시간을 쏟았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몇 번째 사표가 우리 세 식구를 연고도 없던 그곳 충북까지 오게 만들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충청북도. 세 개의 시와 여덟 개의 군으로 구성된 그 땅에서 아빠가 새로 이직하게 된 꿀꿀이 농장은 진천군과 음성군 그 사이 어디쯤에 위치하고 있었고, 우리집으로 가는 길은 역시나 비포장도로에 후미진 곳이었다. 우리집은 겉으로 보기엔 일반 주택과 다를 바가 없었지만 집 구조가 특이했다. 처음에는 뒤틀린 사다리꼴이라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찌그러진 육각형이었다. 그 사실은 내방이나 안방, 부엌이나 화장실 같은 공간에 있을 때는 잘 느끼지 못했는데, 그건 그곳들의 천장이 모두 정상적인 네모였기 때문이다. 우리집에서 거실만 유일하게 천장 모양이 달랐고, 벽들마저 기형적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 기형적인 벽에 가만히 기대 TV를 바라보면 TV 또한 있으면 안 될 곳에 있는 듯했고, 나 또한 기대면 안 될 곳에 뻘쭘하게 기대고 있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들었다. 덕분에 알아챌 수 있었다. 우리집은 찌그러졌음을!



 사실 그동안의 집들이 후미진 곳에 있기는 했지만 집 구조 자체는 지극히 평범했다. 여기서 평범의 기준이 되는 집들은 내가 텔레비전을 통해 시청한 드라마나 예능에서 봤던 반듯하고 깔끔한 집들이었다. 나는 그 어떤 TV 프로그램에서도 찌그러진 육각형 집을 보질 못했다. 심지어 그 당시 즐겨보던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서브 코너였던 신동엽의 러브 하우스에서 조차도! 아마 그때 내가 찌그러진 우리집을 예쁜 집으로 고쳐달라고 신청했었더라면, 리모델링으로 새롭게 태어난 집에서 살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지도 몰랐을 텐데. 그랬다면, 충북에서 살았을 때가 좀 더 행복하게 기억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나는 충북집에서는 행복하지 못했다.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찌그러진 육각형 모양의 우리집은 작은 산을 기준으로 동네슈퍼와 마을회관이 있는 규모가 제법 있는 마을과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었다. 우리집 주변에 집처럼 보이는 또 다른 건물들이 존재하긴 했지만, 그 안에 거주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우리 아빠가 애정을 갖고 돌봐야 할 꿀꿀이들이었다. 엄마 아빠 외에 나를 반기는 건, 집 앞에 볼성사납게 자라 있는 무성한 들풀들과 농장 사장님 부부가 주말마다 조금씩 돌본다는 작은 텃밭. 그리고 털이 수더분하게 엉킨 믹스견 두 마리뿐이었다. 내 또래는 없었다. 그들 대부분은 산 너머에 살았고 그들 중 나를 만나기 위해 그 산을 지나온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어쩌면 당연했다. 그들은 산 넘어 외딴집에 가야 하는 수고로움을 굳이 겪지 않아도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 친구들은 대부분 어렸을 때부터 서로 함께 자란 사이들이었기 때문에, 어느 날 나타난 외딴집 아이가 더 편했을 리가 없었다. 수고로움은 내 몫이었다.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내가 직접 움직여야만 했다.



 하지만, 그 마저도 내게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빠와 번갈아가면서 탔던 군청색 자전거는 성인용 자전거였다. 불편함과 불안함을 주는 좁고 가느다란 안장 위에 앉아 자잘자잘한 돌이 깔려있는 비포장 도로를 지나간다. 비포장도로 끝에 맞닿아 있는 차도부터는 우리집 앞에 있었던 작은 산을 내 오른편에 끼고 쭈욱 우회해야 했는데, 우회가 끝나면 저 멀리 울긋불긋한 지붕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어느 집에 누가 사는지는 잘 몰랐으므로, 친구들을 찾아 두리번거리며 구르던 발을 멈추지 않는다. 운이 좋은 날에는 친구들을 만나 해질 때까지 신나게 놀 수 있었지만, 운이 없는 날에는 친구는커녕 차도로 슬금슬금 기어 나왔다가 차에 깔려 납작해진 처참한 초록뱀들을 마주치곤 했다. 한두 번이 아니었다. 시도 때도 없이 차도 위에 나타나 나를 놀라게 했고, 그 일이 반복되자 나는 뱀처럼 꾸물꾸물 기어 다니는 모든 것들에 반감이 생겼다. 친구들과도 어색했다. 그들은 이미 갓난아기 때부터 촘촘하게 엮어져 온 관계들이었다. 더 이상 자전거를 타고 그 길을 지나가고 싶지 않았다. 무섭고 불편하고 싫은 것들을 참아내면서 까지 친구들을 만나고 싶지 않아 졌다.



 외딴집에 사는 아이는 외딴집에 걸맞게 살면 되는 거였다. 참새떼들의 짹짹거림을 바라보기도 하고, 허수아비 대체품처럼 서 있는 치렁치렁한 비닐봉지를 휘감고 있는 나무 막대기를 쳐다보기도 했다. 척박한 땅의 갈라짐을 보았고, 우리집 지붕 구석에 있는 거미줄에 걸린 불쌍한 작은 벌레들을 바라보기도 했다. 하나같이 다들 내게 말을 걸진 않았지만, 초록뱀의 잔혹함보다는 친절하게 느껴져 다행이다 싶었다. 혼자서 노는 건 함께 노는 것만큼 즐겁진 않지만 못할 것만은 아니라고 느껴졌다. 계속 바라보니 정말 친해지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마을에 사는 아이들에게서는 느껴보지 못했던 기분이었다. 



그때 그 마을에는 어떤 친구가 살았던 걸까.

그 아이들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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