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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a솨 Sep 28. 2019

내 친구 현숙이

양지골 시멘트 집



 

  양지골에는 나와 성별뿐만 아니라 생년월일이 같았던 동갑내기 친구가 있었다. 이름은 박 현숙. 




 사실 어렸을 때부터 이사를 많이 다니게 되면, 곁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보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기 마련이다. 그러면 이름도 희미 해 지고 얼굴도 금방 흐릿 해 져서, 이 사람이 내 삶 속에 머물러 있었던 사람이었나 싶을 때가 종종 생기게 되는데, 현숙이만큼은 예외였다. 이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현숙이와의 기억은 대부분 선명하게 기억나니까.



 처음 현숙이를 만났을 때에는 동갑내기라는 사실에 날아갈 듯이 기뻤다. 아무리 동네에 또래 아이들이 있었다고 해도, 동갑내기를 이길 수는 없는 법이었다.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는 한 학년에 한 학급이 전부였으므로 우리는 학교에서도 친하게 지냈다. 같은 성별, 같은 생년월일, 같은 동네, 같은 반. 같은 게 많았던 우리가 달랐던 점이 있었다면 그건 바로 외모와 성격이었다. 누가 더 예뻤고 누가 더 못났다 하는 외모가 아니라 신체적인 조건으로 봤을 때, 현숙이는 그 당시 웬만한 남자애들 보다도 키가 훨씬 큰 아이였다. 고학년 같은 저학년 초등학생. 이 말이 현숙이의 외모를 표현하는데 딱 알맞은 표현이었다. 그에 비해 나는 작고 빼빼 마르고 왜소한 아이였는데, 유치원생 같은 초등학생이었다고 하면 단번에 외모가 상상될 것이다. 우리 둘이 어찌나 체급 차이가 나던지 같이 있으면 나는 꼭 현숙이의 동생 같아 보였다.



 성격도 달랐다. 이건 어쩌면 당연하다. 성격까지 같았다면 우리는 서로의 부모님을 의심해 봐야 할 상황이 찾아왔을지도 모른다. 현숙이는 언제나 잘 웃고 어딘지 모르게 단순한 구석이 있어서 친구들이 좀 짓궂게 장난을 치는 편이었는데, 나에게는 없는 용기를 갖고 있는 아이였다.  반면에 난 똑 부러져 보이긴 했어도 용기가 부족하고 낯도 많이 가리는 숮기없는 아이였다. 이런 내가 반장을 두 번이나 해 먹을 수 있었던 건, 바로 현숙이의 용기 때문이었다. 내가 반장이 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어도 선뜻 나서지 못하고 혼자 쭈뼛거리고 있을 때마다, 현숙이는 두 손을 번쩍 들고 나를 반장 후보로 추천해 줬다. 그러면 나는 못 이기는 척 그 추천을 받아들였고, 그런 식으로 반장이 될 때마다 나의 마음을 알아주고 대신 용기를 내주는 현숙이가 있어서 참 든든하고 좋았다. 아마 현숙이랑 계속 같은 초, 중, 고를 다녔었다면 나는 반장이 뭐야. 전교회장까지 출마했을 게 분명하다. 

  


 양지골에 살면서, 엄마 아빠 다음으로 내가 가장 많이 만나는 사람이 현숙이였고, 우리는 항상 붙어 다니며 양지골의 자연을 들쑤시고 다녔다. 산딸기를 따 먹기도 하고, 오디를 따다가 돌로 쪄서 즙을 만들며 놀았다. 누가 원숭이 띠 아니랄까 봐. 매달릴 수 있는 곳이 눈앞에 보이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항상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그러다 매달려 있는 게 좀 시시 해 질 때면, 마을 장로님 댁 옆에 있는 가파른 절벽을 거슬러 올라갔다 내려오는 무의미한 행위를 반복하면서 즐거워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에너지가 밖으로 왕성하게 뻗치던 시기였던 것 같다. 절대 얌전하지 않았고, 드세게 놀았다. 그 흔한 바비인형을 닮은 인형도 핑크 핑크 한 소꿉놀이 세트도 우리에겐 없었다. 그냥, 우리가 할 수 있는 놀이를 하며 최대한 즐겁게 뛰어놀았다.



 한 번은 현숙이랑 밤 서리를 하기 위해 밤나무 가지와 가장 가깝게 맞닿아 있는 집의 옥상에 올라갔다. 초록색 플라스틱 빗자루를 한 손에 잡아든 나는 현숙이가 태워주는 목마에 올랐다. 목마를 타면 밤나무 가지를 빗자루로 있는 힘껏 후드려 쳤다. 그러면 밤송이들이 후드득 옥상 바닥 위로 떨어졌고, 추락한 밤송이들 중 가시 돋은 겉껍질이 살짝 벌어져 있는 것들을 찾아 발로 짓눌러 벗겨내면 우리가 아는 그 밤. 갈색 알맹이들이 나타난다. 우리가 겉껍질을 까는 모습은 꼭 트위스트를 추는 것 같았다. 그때 내가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있었다면 방탄소년단의 불타오르네 박자에 맞춰 트위스트를 췄을 텐데. 그 흔한 노동요도 없었지만 춤을 추는 그 시간만큼은 참 행복했다. 어쩌다 가끔 떨어지는 밤송이에 머리를 맞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저도 우리는 깔깔 거리며 웃곤 했다.



 뭐가 그리도 재밌고 즐거웠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양지골을 떠올리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이유는 아무래도 동갑내기 현숙이와 함께 했던 시간들 때문인 것 같다. 보고 싶은 내 친구 현숙이. 여전히 잘 웃고 용기가 많은 어른으로 행복하게 잘 살고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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