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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a솨 Sep 29. 2019

층층이 쌓여있는 것

광양 금광아파트



 내가 여덟 살이 되었을 무렵, 나는 처음으로 아파트에 살게 되었다.



 광양 금광 아파트 111동 804호. 학창 시절 사회탐구를 열렬히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광양 하면 왼쪽에는 순천 오른쪽엔 섬진강 그 아래로는 여수와 인접해 있는 곳이라고 단번에 떠올리거나, 포항제철소에 이어 제2제철소가 건설된 곳이라고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광양은 불고기와 매화마을로 더 친숙한 곳이다.


 그동안 강원도-충정도-경기도에서만 이사를 다녔던 우리 가족이 전라남도 광양까지 내려온 까닭은 장남이자 오 형제였던 아빠의 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잦은 이동생활로 지쳐있었던 우리 가족은 아빠의 동생들처럼 정착하는 삶을 바랐고, 그런 의미를 부여해 보면 광양에서의 삶은 새로운 시작이나 어떠한 희망 같은 것들이 담길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실제로도 이때 살았던 집이 여태까지 내가 살았던 집 중에서 가장 넓고 좋았다. 손여사가 고심해서 고른 탓이었다. 하지만, 집으로부터 부를 축적하기 위한 고심은 없었다. 우리 가족이 오래 살 수 있을만한 집. 그거면 충분했다.



 맨 처음 우리집 현관문에 발을 들였을 때 나는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주방과 분리된 넓은 거실, 반듯반듯한 세 개의 방 그리고 밖을 내다볼 수 있는 베란다까지. 8층은 두 발을 땅에 가깝게 의지하며 살펴볼 수 있는 것들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살펴보고 내려다볼 수 있는 충분한 높이였다. 햇볕도 잘 들어왔다. 바닥에 맨 몸으로 눕지 말라던 엄마의 잔소리를 들을 때마다 정말 바닥과, 땅과, 찰싹 맞붙어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예전 집들과는 달리 우리집 밑으로 다른 집들이 일곱 개나 더 쌓여있다고 생각하니, 바닥이 더 이상 내가 누어왔던 그 바닥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학교를 걸어서 등교할 수 있다는 사실과 우리집 바로 옆에 놀이터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그동안은 항상 노란색 스쿨버스 같은 것들이 있어야만 통학이 가능했고 놀이터는 학교에만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생활이 이전과는 달라졌다. 내 앞에 펼쳐진 풍경들 또한 생경했는데, 가장 적응이 안됐던 것이 바로 층층이 쌓여있는 것들이었다. 광양은 내 체감상 큰 도시에 속했다. 우리집뿐만 아니라 학교도 교회도 병원도. 대부분의 것들이 층층이 쌓여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지하게 되었을 때는 좀 무섭기도 했다. 처음에야 놀랍고 신기하지. 학교 운동장에서 아파트 단지 내에서 길을 잃어버린 경험이 두 번이나 쌓이면 그때는 층층이 쌓인 것들에게 위협감을 느끼게 된다. 비슷한 생김새로 삐죽삐죽 서 있는 건물들 사이에서 움추러 드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감정을 느낀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계셨던 아빠에게도 그것들은 위협적인 존재들 이었다. 아빠는 넷째 동생이 운영하는 중식당에서 배달일부터 시작했다. 그때 당시만 해도 내비게이션이 지금처럼 발달하지도 않았고, 휴대폰에게 길을 안내받으며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없던 시기였다. 길 눈이 어두웠던 우리 아빠에게 동만 다르고 똑같이 생긴 아파트나 1차 2차 3차가 붙는 아파트 단지들은 치명적인 어려움을 선사했다. 짬뽕 짜장면은 스피드가 생명인데 말이다.



 결국 아빠는 한 달만에 백기를 들고 다시 농장일을 해야겠다고 하셨다. 금광 아파트에 적지 않은 희망을 품고 있었던 엄마는 그런 아빠를 회유해 볼 법도 한데, 그러지 않으셨다. 엄마는 아빠를 가장 잘 아는 사람 중 한 사람 이기도 했다.



중식당 2호점을 운영하며 정착하는 삶을 꿈꿨던 우리 세 식구의 희망은 그렇게 순식간에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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