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가 주공 아파트
'정착'이라는 단어를 인생에서 온전히 마주하기까지 십일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태어난 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이동하는 삶을 열렬히 바라는 것을 종종 본 적이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마음속으로 불편함을 느꼈다. 잦은 이사 덕분에 한국지리 시험이 껌이었다고 말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꽤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어두웠다. 부모님께 잦은 이사가 싫고 이제 그만 전학 다니고 싶다고 불평했던 적은 없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나도 이사를 다니는 삶이 힘들게 느껴졌던 것 같다.
이사는 보통의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 아니다. 공과금 정산부터 시작해서 일정관리, 이삿짐센터 예약, 짐 정리, 집주인. 신경 쓸 일이 정말 한두 가지가 아닌데, 그러한 일들로 지쳐 보이는 부모님 얼굴 앞에서 내 불평을 말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나는 생각보다 일찍 어른 흉내를 내는 아이였고,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던 내 불평들은 그대로 내 안에 쌓여만 같다. 나는 까맣게 짙어졌다. 하지만 손여사가 이런 나의 속사정을 캐치하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결국 엄마는 결단을 내렸고, 그 결단 덕분에 나는 더 이상 전학을 다니지 않게 되었다.
새로운 집은 우리 세 식구가 살기에 딱 좋은 집이었다. 손여사 역시 그간의 삶에 이골이 날 정도였으므로, 너무 크지도 너무 작지도 않은 임대 아파트 집을 보자마자 덜컥 계약을 해 버렸다. 이번에도 시세 차익 같은 건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이만하면 그냥 들어가 살만 하겠다 싶은 맘 때문이었다. 덕분에 집주인과 세입자가 같아졌고, 그 집주인과 세입자는 우리 가족이 되었다.
우리집이 유동성을 잃고 한 곳에 고정되었다는 사실은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내가 속한 또래집단과, 학교. 더 나아가서는 지역사회의 일원으로서 드디어 속했다는 안정감. 지친 마음을 언제든지 내려놓고 편히 쉴 수 있다는 안정감. 귀소본능을 알게 되었다는 안정감 외에도 수많은 안정감들을 경험할 수 있게 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안정감은 시간의 흐름 속에 산다는 안정감이었다.
이 말이 무슨 말인가 하면 이런 거다. 예전에 우리 지역의 기차역은 시내에서도 중심가였던 롯데리아 삼거리에 위치 해 있었다. 그런데 내가 고등학생 때였나. 아예 시내 밖으로 나가버리더니, 그 주변으로 시외버스터미널과 이마트, 맥도널드까지 생겨 버렸다. 우리가 구역전 자리라고 부르던 그곳에는 문화의 전당과 공원이 새롭게 조성됐는데, 아마 예전의 모습을 몰랐던 사람들은 그 자리에 기차역이 있었을 때의 모습을 쉽게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일어난 변화들을 모두 살펴보며 자랐기 때문에, 그곳에 대한 히스토리를 그 어떤 누군가에게도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있다. 이것뿐일까. 시간의 흐름 속에 스며들어 나도 함께 그 흐름 속에 살다 보면, 몇 년째 같은 간판을 달고 있어도 그 안을 꽤 차고 있는 사장님이 몇 번째 사장님인지 다 알 수 있었고, 어렸을 때는 그렇게 볼품없고 짓궂었던 남자애가 인물도 훤해지고 젠틀 해 졌다며 호들갑을 떨거나, 매일 춤만 추던 그 언니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안무가가 되었다며 대단하다고 말할 수도 있게 된다.
사람, 사물, 장소. 내 주변 모든 것들의 변화를 바라보며 산다는 것.
시간의 흐름 속에서 그 모든 것들의 히스토리를 알아가게 되는 것.
그리고 그런 것들이 주는 안정감.
이 모든 것들은 반드시 한 곳에 오랫동안 머물러야지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이었고, 비로소 내가 그러한 것들을 직접 느끼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을 때에는 열한살에 처음으로 마주한 그 단어가 내겐 너무 감사하고 소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