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적으로 우울증 진단 후 퇴사하긴 했지만, 처음부터 퇴사할 마음으로 정신과를 방문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이제 막 치료를 시작했으면서 휴직이나 퇴사를 거론하는 나에게 너무 즉흥적이지 않냐는 회사의 입장도 이제 와서는 조금 이해가 된다. 부서이동을 한 지 일 년이 채 되지 않았음에도 다른 부서로 이동하는 걸로 해결할 수는 없는 문제인지, 부서원 중에 괴롭히는 사람이 있는 건 아닌지, 장기휴가를 사용하며 고민해보는 건 어떤지 물어보며 문제해결을 위해 나름의 노력도 기울였던 것 같다. 나는 이 모든 제안을 거부했다.
회사에는 암암리에 나의 증상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단체활동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워크숍 불참의사를 밝혔더니 부서이동을 논의중이었던 상부에 곧바로 보고가 들어가버렸다. 병원을 다녀보라는 권유, 필요하면 소개해주겠다는 권유를 많이 받았음에도 나는 책을 읽으며 스스로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지금 생각하면 선무당이 사람 잡고 있는 격이었다.
어쩌면 처음 만난 정신과 의사가 그 사람이 아니었다면 최소한 몇 달간이라도 치료를 받으며 회사를 다녀보려고 노력했을지도 모르겠다. 회사 역시 몇 달만이라도 치료를 받으며 경과를 살펴보자고 내게 권유했었다. 두통 때문에 다니던 내과 의사에게 추천을 받은 의사였다. 하지만 첫 만남 때부터 나는 이 의사와 맞지 않다고 느꼈다. 하지만 첫 방문이었기 때문에 조금 더 다녀봐야겠다고 생각했고, 이후에는 어차피 퇴사 후 본가가 있는 지역으로 병원을 옮길 거니 의사가 뭐라 하든 신경 쓰지 않았다.
능력이 없는 의사였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니 내과 의사도 조심스럽게 추천을 했겠지. 그저 나와 맞지 않는 의사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대부분의 환자와 맞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의사를 겪으면서 왜 정신과 상담을 받은 환자가 큰 좌절감을 느끼고 자살까지 이르게 되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의사는 환자가 자신에게 의지하는 것을 지나치게 경계하고 있었다. 치료의 일환인지 모르겠으나 말을 상당히 함부로 했고, 의사소통 과정에서 서로의 이해가 어긋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횡설수설하는 거 보니 아직도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것 같네요."
그 앞에서 나는 환자가 아니라 정신병자, 미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가 나에게 처방한 건 흔한 항우울제 한 알이었다. 두통을 계속 호소하며 이것이 약의 부작용인지 그게 아니라면 내과에서 처방 받았던 신경안정제(항불안제)를 처방해줄 수 없는지 문의하는 내게 그는 냉정하게 선을 그었다.
"정신적인 문제가 아니라 신경계쪽 문제인 거 같으니 신경외과로 가보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내과에서도 처방되던 약을 분야가 다르기 때문에 처방해줄 수 없다는 의미였을까. 그때부터 나는 다음에 다닐 병원은 꼭 '정신신경과'여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새로 다닐 병원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건 전문분야에 대한 문제가 아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건대 그건 그의 무심함이었다.
최악이었던 진료 경험 이후 나는 정신과 진료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접었다. 그저 '정신과'와 '신경외과'를 병행하는 집에서 가까운 병원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빠의 생각은 달랐다. 대형병원 정신과 의사의 프로필을 살펴보고 예약을 문의했지만, 예약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가진 약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게다가 대형병원이라고 해봤자 정신과 의사는 고작 한 명뿐이었다. 정신과를 검색하는 과정에서 대형병원과 개인병원간에 별다른 차이가 있을 거란 생각도 사라진 상태여서 딱히 미련도 없었다.
어쨌든 아빠가 열심히 알아본 끝에 한 병원에 가게 됐다.
"어떤 도움이 필요해서 오셨어요?"
진료실에 들어섰을 때 의사가 건넨 첫 인사였다.
"사실 이전에 다니던 병원에서 도움이라고 할 만한 걸 받은 적이 없어서 정신과에서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맞지 않는 의사분이었는데 퇴사 후 본가에 와서 본격적으로 진료를 받을 거라고 생각해서 오로지 약을 받기 위해서만 다녔거든요."
의사는 위로와 함께 검사 후 다시 면담하자는 말을 건넸다. 서울에서 받았던 간단하고 조잡한 설문지가 아니라 전문적인 느낌이 드는 여러 장의 설문지를 받아 검사실로 들어갔다. 주관식 문항도 섞여 있어서 작성하기가 꽤 까다로운 설문지였다. 게다가 기운도 없고 머리도 잘 안 돌아가던 때라 설문지를 작성하는 것 자체가 버거웠다. 설문지를 작성하면서 퇴사를 하고 이미 약을 복용한 지 한 달을 넘긴 터라 조금 가벼운 수준의 우울증으로 진단되겠다는 생각을 속으로 했다. 검사지 작성 후에는 장비를 이용한 검사가 진행됐다.
예상대로 설문 분석결과 상에는 낮은 수준의 우울증으로 나타났다. 의사는 그다지 신뢰도가 높은 검사는 아니라고 했다. 의사는 한 번에 환자를 파악할 수는 없다면서 면담을 계속 하면서 치료해보자고 말했다.
두 번째 면담에서 나는 의사와 뭔가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여전한 두통에 그토록 원하던 신경안정제를 같이 투약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의사가 먼저 말해준 것이 잠시 기뻤을 뿐 특별한 이야기가 오가지는 않았다. 이 병원도 첫인상과 달리 약만 타가는 그런 병원인 걸까. 그렇다고 해도 사실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한 달에 한 번 병원을 방문했다. 꾸준히 진료를 받으며 깨달은 것은 의사는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들어주는 사람이라는 거였다. 의사는 내가 자신에게 신뢰를 가지고 입을 뗄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하는 직업이었다. 그것이 의사와 환자 사이에 라포가 형성되는 과정이었다.
이후 나는 조카를 돌보는데 시간을 쓰다보니 내 시간이 너무 없어서 평소 같으면 좋게 말할 수 있는 것도 명령조로 말했던 일, 이전에 조카의 장난에 갑자기 화가 나서 정말 손목을 부러뜨릴 마음으로 꽉 쥐었던 일. 그로 인해 내가 느꼈던 죄책감에 대해, 그리고 이런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 가족들에 대한 원망으로 자살을 계획했던 일. 죽을 때 죽더라도 살아있는 동안은 약의 힘을 빌려서라도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어 진료일보다 일찍 병원에 오게 되었다는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다.
의사는 내가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나의 감정에 대해 정의해주었고, 회사에서나 가정에서나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 또한 인지시켜 줬다. 참지 않고 이야기한 것은 잘한 일이지만 다음에는 터지기 전에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는 조언도 해주었다. 지금도 나의 상태에 영향을 준 것으로 짐작되는 일은 모두 면담시간에 공유하며 위로와 도움을 받고 있다.
감기에 걸렸을 때 처방 받은 약이 맞지 않으면 우리는 대개 다른 병원을 찾는다. 하지만 정신과에 있어서는 처음 간 병원이 세상의 모든 정신과를 대표하는 듯 착각하고, 불편한 경험을 하게 되면 두 번 다시 병원을 찾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병원의 고객이고 나와 맞는 의사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어떤 의사가 나와 맞는 의사인가. 나는 첫인상에서 그것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의사가 나를 대하는 말투, 눈빛 그리고 태도에 그 의사가 어떤 진료방식을 추구하는지가 담겨 있다고 믿는다. 단 두 곳의 병원을 다녀봤을 뿐이지만 나는 처음부터 첫 번째 병원이 나와 맞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고, 두 번째 병원에서는 아빠 덕분에 좋은 병원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다.
그러니 치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당당하게 나에게 맞는 의사를 찾을 때까지 병원을 쇼핑해라. 약만 받으면 될 뿐이란 생각은 상당히 위험하다. 의사와 라포가 형성되지 않으면 나에게 맞는 약을 제대로 처방 받을 수도 없을 뿐더러 병원을 방문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나의 정신을 갉아먹고 치료를 방해한다. 내 돈 쓰면서 불쾌감을 사는 일은 피하는 게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