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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Reflections 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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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fie Nov 12. 2020

Reflection

투사, 반영, 발견, 공감

영화 말레피센트를 굉장히 흥미롭게 보았었다. 아주 평면적인 악역에 불과했던 마녀에게 배경과 사연을 달아주고 입체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를 해보았다는 것 자체가 신선했고 또 많은 부분 공감이 가기도 했다. 이런저런 자유로운 공상을 즐기는 성격이기에 어느날 퇴근길에 뭐랄까 이런 비슷한 류의 상상을 해 볼만한 동화가 또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떠오른 것이 바로 백설공주였다. 백설공주의 마녀, 마법의 거울과 독사과를 가지고 있는 그 왕비 캐릭터는 말레피센트 못지않게 은유와 상징의 여지가 풍부하고 또 새롭게 이해를 시도해볼 영역이 많았다. 


무엇보다도 왕비가 항상 곁에 끼고 사는 그 거울, 전능한 마법의 힘을 가진, 신적인 권위의 목소리를 내는 그 거울의 존재와 왕비의 관계가 굉장히 흥미로운 생각할 거리였다 심리학적, 종교학적, 영성학적으로 내 방식대로. 거울은 왕비가 물어보는대로 대답해주는 능력 밖에는 없었는데 그 단순한 능력에 대한 왕비의 신뢰는 가히 신앙적이어서 그 목소리 하나에 왕비는 자신의 모든 삶이 좌지우지되는 듯 했다. 거울이 '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하면 자신은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넌 더 이상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아니다'라고 하면 그녀는 그런 존재가 되었다 그 즉시로. 이것은 일종의 '신적인 목소리'였다. 내가 누구인지를 말해주고 내가 어떻게 해야할 지를 말해주고 내가 어떻게 하지 않으면 안되는 지를 정해주는. 왕비는 거울에서 자신의 삶의 가치를 발견하기도 했고, 자신의 무가치함을 깨닫기도 했다. 거울은 자존감을 만들어주기도 했고, 그걸 산산조각내기도 했다. 아름다운 왕비로 만들어주기도 했고, 가장 추악한 마녀로 만들어버리기도 했다. 왕비의 삶 자체는 사실 하루하루 그대로 크게 변하지 않았는데, 어제까지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었다가 오늘 아침에는 더이상 그렇지 못한 존재로 추락하게 된 것은 바로 그 목소리, 거울에 비친 자신의 '마법의 환영'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건 어떻게보면 자기 내면의 불안감의 투사였을 수도 있고 애써 외면하고 회피해왔던 현실에 대한 직면일 수도 있다. '난 더 이상 아름답지 않은게 아닐까?' '내가 나이가 들고 초라해지면 사람들이 더 이상 나를 알아주지 않는게 아닐까?' '늙고 독해진 나보다 어리고 순수한 저 공주를 사람들이 원하는게 아닐까?' 걱정은 항상 내면에 존재하고 있지만 충분히 억누를 수 있었다가, 어느 순간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 속에서 발견하게 되면 그때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된다. '나는 더 이상 아름다운 왕비가 아니구나' '나는 이제 악만 남은 마녀로구나' 거울은 그 목소리를 선명한 현실로, 신적인 선언으로, 자신을 집어삼키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의 파도로 만들어준다. 


삶에는 그런 마녀가 되는 순간이 있다. 내가 좋은 사람일 수 없는 순간, 착한 사람으로 있을 수 없게 만드는 환경, 완벽한 이상을 깨뜨리는 현실의 벽을 마주하는 순간. 


병원에서 동료가 맡았던 어린이 환자중에 중요한 수술을 결단해야하는 한시가 급한 환자가 있었다. 눈에 있는 종양이 악화되어 지금 빨리 수술을 하지 않으면 아예 실명할 수도 있지만, 수술을 하는 것 자체도 위험했고 무엇보다 그 아이의 어머니는 아직 '기적'을 바라고 있었다. 어리석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쉽사리 병원에 아이를 데려올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던 그 어머니가 할 수 있는 것은 눈이 점점 안좋아지는 아이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러다 중요한 치료시기를 놓쳤고 그 어머니는 스스로 딸의 눈을 뽑아버려야 하는 부모가 될 기로에 놓인 것이다. 마지막 결정을 앞두고도 그 어머니는 울먹이며 '나는... 못해요...' 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결국은 '여기계신 이 의사 선생님이 어머님을 위한 하나님의 응답이실 수도 있어요'라는 말을 듣고 수술을 하기로 결단했다지만, 그녀의 고민과 절망은 바로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무시무시한 거울을 앞에 두고 '난 과연 소중한 내 딸을 위한 어떤 엄마인가'를 마주해야 하는 그런 순간. 그 때 내 동료가 그녀에게 했던 말은 단지 '당신은 수술을 선택해야한다'는 충고는 아니었을 것이다. 어떤 것도 선택할 수 없는 절망의 어머니가 된 그녀에게 자기 자신과 사랑하는 딸을 위한 '응답'이 무엇인가를 직면하게 하는 거울의 목소리같지 않았을까. 완벽하게 눈을 고쳐놓을 신이 아니라 영영 눈을 잃어버리게 만들지도 모르는 인간을 선택하게 되는 것은, 이미 그녀도 예견하고 있던 뻔한 결말일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확인받고 싶었고 공감받고 싶었던 그 순간의 그녀 자신을 비쳐준 내 동료의 '낯빛' 덕분에 일어났던 것 같다. 


왕비가 마녀가 된 것은 이상한 일도 아니고 부자연스러운 일도 아니고 일어나서는 안 될 일도 아니다. 원래 왕비는 마녀일수도 있고 천사일수도 있고 공주일수도 있는 것 뿐이다. 다만 더 이상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왕비에 머물러있지 않고 삶의 그 다음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지금 그녀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를 제대로 비춰주는 'reflection'이 필요했던 것이다. 애타게 기적을 기다리며 점점 더 절망속으로 빠져들어가는 왕비에서 마침내 수술을 결단하는 무모한 마녀로. 삶은 앞으로 나아간다. 


Upside down reflection,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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