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사람의 시선으로 들려주는 제주 음식 수다
25년 이상을 육지에서 살았었고 제주에서 10년 정도를 살았으니 아직 제주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때때로 섬이라는 게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있고 남편과 싸운 날이면 캐리어에 짐을 챙겨들고 비행기를 타고 싶을 때도 있다. 이도 저도 아닌 게 제주사람과 육지 사람 그 언저리를 뱅뱅 돌고 있는 느낌이 들 때가 종종 있는데, 먹을 때만큼은 제주에 오길 잘했구나 싶다.
결혼을 하긴 했지만 먹는 거에만 관심이 많고 요리는 가끔 하는 게 좋은 평범한 워킹맘인지라 남편이랑 시어머님이 해주시는 음식을 열심히 먹기만 했더니 이런 수다도 떨 수 있지 않은가 싶다. 명절이면 시댁에 가기 싫다가도 어머님 손맛에 발길이 향하고, 제주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반복되는 일상에 작은 재미를 느끼게 해주었다.
서귀포에서 굴 국밥집을 하셨던 어머님의 음식 솜씨는 가히 전국에 내놓아도 열 손가락 안에 들 만큼 정말 맛있다! 한식대첩이라는 티브이 프로그램에 나온 제주 대표 음식들을 보면서 남편과 나는 동시에 어머님 음식이 훨씬 맛있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건 지극히 주관적인 느낌이다. 하하. 어쩌다 보니 제주의 맛에 취해 8년째, 점점 리얼 도민이 되어가는 느낌이다. 물론, 제주 사람인 남편이라는 치트키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사실 나는 좋아하는 음식에만 입맛이 까다로운 편이다. 대부분의 음식은 '맛있다.', '맛없다.' 투정 없이 주는 대로 잘 먹는 편인데 내가 좋아하는 음식에 있어서 만큼은 투정을 좀 부리는 편이다. 예를 들어 닭볶음탕을 매우 좋아하는데 맛없는 닭볶음탕은 안 먹는다. 과일은 수박을 제일 좋아하는데 달지 않고 물만 가득 든 맛없는 수박은 입에도 대지 않는다. 내가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요리들도 내가 좋아하는 요리들이다. 할 수 있는 게 몇 안 되기는 하지만 좋아하는 음식은 진짜 맛있게 만들어 먹고 싶은 욕구가 만들어낸 솜씨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제주 음식이 좋아져서 맛없는 몸국은 먹기 싫고, 어머님이 해주시는 집 밥에 익숙해져서 식당에서 사 먹는 제주 음식은어쩐지 만족이 안된다.
물론 본 투 비 육지 사람인지라. 나도 고향의 맛이 그리울 때가 가끔 있다. 나는 서울로 대학을 올 때까지 20년 넘게 대한민국 최북단 지역인 철원에서 살았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기 위해 자취를 하기는 했지만 그때에도 부모님은 철원에 계셨다. 지금은 이사를 하셨지만 꽤 오랜 세월을 철원에서 지내다 보니 북쪽 음식 스타일에 나도 모르게 길들여진 부분이 있었다. 새해에는 떡국이 아닌 떡만둣국을 먹었고, 양념이 많은 제주 김치와 다르게 시원한 맛의 김치에 익숙해져 있었다. 겨울이면 차가운 땅속에 묻어둔 장독에서 김치를 꺼내 먹었는데 우리나라에서 제일 추운 지역답게 땅에서 막 꺼낸 김치는 입안 가득 시원함이 톡톡 터질 정도로 정말 맛있었다. 철원은 오대쌀로 유명한 지역이라 제주에서 어디를 가든지 돼지고기가 맛이 있듯이, 철원 어디를 가도 밥은 식당에서 주는 공깃밥도 맛있다. 그래서인지 처음 서울에 내려와서 공깃밥을 먹고 충격을 받은 적도 있었다. 그냥 밥이 맛이 없을 수가 있다니... 절레절레.
아무튼 어머님의 손맛은 영업 비밀이라며 휘뚜루마뚜루 계량 없이 만들어내시는 음식이라 기록이 쉽진 않지만 내가 만난 제주의 음식들을 나의 시선으로 하나씩 풀어보려 한다. 제주에서 맛본 경험이 있다면 얼마든지 함께 수다를 떨어주시기를! 맛본 경험이 없더라도 '맛' 수다는 언제든지 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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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맛수다. 말장난으로 지은 제목이다. 제주 사투리로 ‘제주 맞습니다.“ 라는 의미 되고 ’제주 맛 수다‘ 라는 의미로 제주의 맛에 관한 수다를 떨어보자는 뜻으로 이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