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도 귤이니?
<파찌>
"천혜향 파찌 이신디 가져갈켜?"
반가운 전화다. 제주 사람인 남편이 있다는 건 겨울이면 늘 귤이 집에서 떨어지지 않는 다는 걸 의미하는 걸까? 육지에선 없어서 못먹던 귤을 제주에 오니 부에 넘치게 먹는다. 종류도 가리지 않고 밀감, 타이백귤, 천혜향, 한라봉 등 시부모님께서 수확 시기 마다 얻어 오신 파찌를 나눠주신다.
손톱밑에 귤향이 베어들때까지 까먹다보면 어느 순간 부터는 집에 귤이 나뒹굴기 시작한다. 너무 먹다 조금 질려버렸다. 귤이 질릴때쯔음 천혜향 파찌를 가져다 주시면 다시 신나게 까먹는다. 얇은 천혜향 껍찔을 벗길때면 귤과는 다르게 천혜향 특휴의 새콤한 향이 공기중으로 터져 나간다. 디퓨저가 따로 필요없다.
사무실 풍경도 다르지 않다. 탕비실에 누군가 귤을 한상자 가져다 놓았지만 잘 줄어들지 않는다. 열심히 가져다 먹는건 대부분 육지출신 직원들이다. 다들 나처럼 이들은 이미 귤을 실컷 즐긴 모양이다. 겨울이면 식당을 가도 귤을 나눠주거나 계산대에 노란 박스 가득 귤이 담겨있곤 한다. 나도 제주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때는 식당 계산대에 쌓여있는 귤을 서너개 주머니에 넣어두곤 차에서 까먹곤 했었다. 지금은 밥먹고 나눠주신 귤도 대부분 거절한다. "집에가도 먹어야할 귤이 아직 많아요. 하하."
파찌는 겉에 흠이 있어서 상품가치가 떨어지는 걸 말한다. 내다 팔 수는 없으니 가족끼리 지인끼리 나눠먹곤하는데 천혜향 파찌를 받아오니 진짜 옆에 터진 상처가 있었다. 받아온 파찌는 남편이 설명하기를 땅에 떨어져서 터지거나 상처가 난건 아니란다.
"근데 이게 진짜 맛있는거야. 너무 맛있어서 그걸 못견디고 옆이 터지는 거거든"
그러고보니 파찌는 항상 다 맛있다. 진짜 맛있음이 넘쳐서 옆구리가 터지나보다. 다른 귤보다 상품가치가 떨어져서 백화점이나 마트같이 번지르르한 곳에 팔 순 없지만, 주변에 귤농사 하는 지인이 없으면 맛볼 수 없는 나름 특별한 가치가 있는 귤이다. 어쩌면 파찌가 사먹는 귤보다 더 맛좋을지도? 파찌가 꼭 옆에 터진 귤을 말하는건 아니다. 크기도 제각각이도 귤 겉몉에 상처가 있는.. 한마디로 상품가치가 없는 귤을 파찌라 부른다.
사람도 그렇지 않은가? 겉이 반지르르 반짝반짝하면 보기에는 좋아보일지 모르나 어딘지 흠이 있고 상처투성이인 손이 나는 더 마음이 가더라.
<꼬다마>
육지살때는 퇴근길에 횡단보도 옆에서 귤트럭을 만나면 한망에 천원하는 귤을 두,세망 사서는 기숙사 침대에 엎드려서는 미드를 보며 전부 까먹곤 했었다. 그때는 그 귤도 어찌나 맛있고 달콤한지 나눠줄 생각은 당연히 못하고, 몇일 먹겠다고 샀던 그 귤을 드라마 한편에 다 먹어버리고는 다음날 같은 횡단보도에 귤트럭이 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그 트럭에서 사서 먹었던 귤이 바로 꼬다마란다. 파찌랑은 다르게 그냥 작은 귤을 말한다. 조생귤이라고 불리는 바로 그 귤이다.
제주에서는 아직도 생활 곳곳에 일본의 잔재들이 남아있는데. 귤을 아직도 미깡이라고 부르거나 작은귤을 꼬다마라고 부르는 것도 그렇다. 파찌처럼 상품성이 없어서 팔지 않지만 한입에 쏙 들어가는게 얼마나 맛있는지 모른다. 인터넷에서 꼬다마라고 파는 귤들도 사질 진짜 꼬다마는 아니다. 지인 중에 귤농사를 짓는 분이 있어서 꼬다마를 받아 먹어 봤다면 알겠지만, 아이도 한입에 쏙 넣을 정도로 작다. 작은고추가 맵다고 과일은 작을 수록 맛있는 법이다! 한번 먹어보면 한입에 쏙쏙 팝콘마냥 들어가는것이 순식간에 귤 껍질 30개가 바닥에 나뒹굴게 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