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딩코치 영의 책육아 노하우
아이 책장을 정리하면서 혼잣말을 한 적이 있다. 아이책은 책마다 크기가 달라 책을 책장에 꽂아 놓아도 정리한 것 같지 않다며 투덜거리며 정리를 하곤 했다. 아기들 손에 쥐어질 수 있는 작은 크기부터 위아래로 길쭉한 책, 옆으로 길쭉한 책 등 크기가 다양하다. 때로는 아기들이 보는 책은 책인지 인형인지 장난감인지 모를 정도로 폭신한 천으로 만든 책도 있다. 특히 아기들을 위해 만든 책은 한마디로 모양새가 들쭉날쭉하다. 책장에 정리하기가 쉽지 않다. 책 크기가 다른 만큼 책을 읽어주는 엄마들의 고민도 다양하다.
그 고민을 들어보면, 아이가 어릴 때는 엄마가 읽어주는 대로 듣곤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책을 읽어주려고 하면 하품을 하거나 딴 짓을 한다. 심지어 엄마가 책을 읽어주려 할 때, '재미없어.'라고 말하는 걸 보면서 아이가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아이마다 맞는 책이 따로 있는 걸까?
아이들이 노는 걸 지켜보고 있노라면 아이들마다 좋아하는 놀이가 다르다. 어떤 아이는 앉아서 무언가 만드는 걸 좋아하는 아이도 있고 밖에서 뛰어노는 걸 좋아하는 아이도 있다. 노는 걸 좋아하지만 놀이 방식이 다른 것뿐이다. 그렇다면 책 또한 종류에 따라 읽는 방법을 달리 해보자. 줄거리가 있는 이야기 책은 뒷이야기가 궁금하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읽어야 재미있다. 그동안 동식물이 소개된 자연관찰 책도, 과학의 원리가 들어간 과학책도, 이야기책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왔다면 이제부터 다른 방법으로 책을 읽어보자.
1. 책 표지부터 익숙하게 만들기
책은 책장에 꽂혀 있을 때보다 책장에서 꺼내어 읽힐 때 생명력이 생긴다. 책은 읽어줄 독자가 필요하다. 아기들 책은 아기들이 직접 꺼내보려면 반듯한 책보다 크기가 제각각인 모양이 책장에서 훨씬 꺼내기 좋다. 책의 크기가 달라 들쭉날쭉하게 책장에 꽂혀있는 책은 아기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책을 쓴 작가는 오랜 시간 생각하고 쓴 글이 책으로 나왔을 때 책장에 꽂혀있는 것보다 책장 밖을 탈출해 독자의 손에 쥐어져 읽힐 책을 더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책장에 꽂혀 제목이 쓰인 좁고 긴 모서리를 보는 것보다 그림과 사진이 실린 책 표지를 볼 때 책의 내용이 더 궁금해진다. 책 표지가 보이도록 바닥에 책을 늘어놓아보자. 아이가 스스로 책을 집어 드는 기쁜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
2.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 않아도 괜찮다.
어렸을 때 내일 해야 할 숙제를 깜빡 잊고 한참 놀다가 숙제를 하려는 생각을 할 때쯤 꼭 엄마가 한 말씀하신다. “그만 놀고 숙제해야지!” 당연한 말씀이신데도 엄마의 잔소리를 들으면 입이 튀어나오고 숙제를 하기 싫어진다. ‘해라.’하면 하기 싫고, ‘하지 말아라.’하면 하고 싶은 청개구리 심보가 누구나 마음속에 있다.
《하루 15분, 책 읽어주기의 힘》의 저자인 짐 트렐리즈는 누구보다 아이들의 이 마음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다. 짐 트렐리즈는 아이에게 하루에 책을 15분만 읽어주라고 한다. 책을 15분 정도 읽어주고 덮을 때면, 책의 내용은 흥미진진한 대목에서 이야기가 끊어져 버린다. 게다가 15분 정도면 아이도 책의 내용에 흠뻑 빠져 그다음이 궁금해질 순간이다.
이 기가 막힌 타이밍에 ‘오늘은 여기까지 읽고, 내일 이다음부터 읽어줄게.’라고 아이에게 말해 보자. ‘네, 알겠어요. 엄마!’라고 대답하는 아이를 결코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아이들은 반드시 뒷장을 더 읽어 달라고 조르거나, 한글을 읽는 아이들은 ‘엄마, 잠시만요. 제가 좀만 더 읽고 잘게요.’라고 할 것이다. 시간을 정해 놓으면 아이들은 그 정해진 시간이 무척 아쉬울 것이다.
이 책을 읽는 어른들은 모두 잘 기억하고 있다. 아이들은 부모님이 자식들 잘 되라고 ‘공부해라.’라고 말한다고 해서 공부를 하지는 않는다. 잔소리처럼 느껴지면 하기 싫어지는 법이다. 우리 마음속에 있던 청개구리 심보를 한 번 활용해 보자. 정말이지 효과 만점이다. 아이는 책을 읽을 때 집중력이 높아지고 속독법을 가르치지 않았는데 속독까지 혼자 마스터한 아이를 발견하게 된다.
3. 책에서 만들기나 활용방법이 들어 있다면 꼭 한 번 해본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엄마인 내가 편독을 한다면 내 아이 또한 편독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아이에게 책을 골라줄 때 자신도 모르게 엄마가 좋아하는 영역의 책을 읽어주기 때문이다. 아이와 취향이 비슷하다면 그나마 아이도 책을 읽어주면 좋아하지만 엄마와 취향이 다른 아이들일 경우 책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 나는 이야기가 들어간 책을 좋아해서 모든 책을 이야기책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주었던 적이 있다. 책을 읽을 때만큼은 친절한 엄마여서 그런지 아이는 책을 읽어주는 내 옆에 앉아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면서 뭔가 2%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아이가 정말로 재미있어하기보다는 내가 책을 읽어주면 그냥 듣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아이들은 눈으로 보는 것보다는 직접 냄새 맡고 손으로 만지며 관찰하는 걸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동안 책을 읽어만 주었다면 그 후로는 과학책이나 자연관찰 책에 나온 대로 간단한 실험을 하거나 활용방법대로 만들기를 하기 시작했다. 아이는 책만 보여주었을 때보다 훨씬 더 즐거워했고 다음번에는 책을 읽고 다른 것도 만들어보자며 적극적으로 변해갔다.
나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부모들이 아이가 책에 나온 대로 실험하고, 만들어하고 싶어 한다는 걸 안다. 그러나 대부분 아이에게 다음에 만들자고 하거나, 집에 만들기 재료가 없다고 미룬다. 그 전날 집안일을 많이 해서 몸 컨디션이 안 좋을 수 있다. 아직 어린 둘째가 있어 첫째랑 단 둘이서 만들기를 한다는 게 엄두가 나지 않기도 하다. 엄마가 직장에 다닌다면 회사에서 하루 종일 정신없이 일을 하고 집에 오자마자 옷도 채 못 갈아입고 발을 동동거리며 저녁식사 준비를 하느라 온 몸이 녹초가 되어 빨리 아이를 재우고 싶을 것이다.
주말이 되면 해주어야지 하다가 밀린 집안 일로 야속하게 금방 저녁이 되어버린다. 어느 날은 큰 맘 먹고 아이 데리고 밖에 나갔다 오면 허리가 끊어지는 것처럼 힘들어 잠들어 버린다. 그렇게 하루하루 지나간다. 아이들의 호기심도 세월과 함께 사라진다. 언제까지고 아이들이 엄마를 찾을 줄 알았는데 그것도 한 때다.
몸은 다소 힘들겠지만 쉬운 것부터 하나씩 아이와 만들어 보자. 누구에게 보여줄 것도 아니기 때문에 거창하게 만들 필요도 없다. 사자 얼굴을 만들기 위해 준비물에는 나무주걱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주걱이 없으면 집에 있는 종이를 주걱 모양으로 오려서 붙여도 되고 그림을 그려도 괜찮다. 일단 시작부터 해보자. 생각보다 시간이 짧게 걸려 허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이들의 눈은 더 초롱초롱해질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는 집에 있는 재활용품 등을 찾아다 혼자 꼼지락거리며 무언가 만들고 있는 아이를 발견하게 된다.
4. 아이가 궁금해서 질문을 할 때 책에서 찾아 그 부분만 읽어주고 책을 덮는다.
부모라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주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내려놓아야 한다. 앞에서는 내내 아이들에게 매일 책을 읽어주라고 하면서 이게 무슨 소리일까 싶을 거다. 아이가 어린 아기라면 아직 책이란 게 무엇인지 모르니 책이 ‘책’이란 것도 알려주어야 한다.
구강기의 아기들은 모든 것을 입으로 탐색하는 시기이므로 책을 입으로 가져가고, 심지어 찢기도 한다. 책을 한 장, 한 장 넘겨보아야 한다는 걸 보여주어야 한다. 아이와 함께 책을 바닥에 늘어놓아 기차놀이처럼 책과 친해지는 시간을 주어야 한다. 밤에 자기 전에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어 책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것도 알려 주어야 한다.
글을 읽지 못하는 아이를 대신해 부모들은 성우처럼 목소리도 바꿔가며 책을 읽어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여러 종류의 책을 읽으며 아이들이 알아야 할 세상을 책에 있는 그림으로, 사진으로, 글로 알려주었다. 그러나 아이들 책은 언젠가는 아이들이 스스로 읽어야 한다. 부모는 그저 아이가 궁금한 것이 있을 때 책을 찾아보는 방법을 아이가 혼자서 할 수 있을 때까지 알려주는 것뿐이다. 그러니 아이가 알고 싶어 하지 않는 뒷장까지 읽어서 아이가 책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리지 않게 해야 한다.
5. 책을 읽다 한 장에 나온 글을 다 읽었는데 아이가 그림을 보고 있다면 그림을 가지고 얘기를 나누어라. 반대로 아직 글을 다 읽지 못했는데 아이가 다음 장을 넘긴다면 아이의 눈을 따라가며 책장을 넘겨야 한다.
학교 가기 전의 나이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줄 때 아이들의 눈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아이의 눈이 어디를 보고 있는지 책을 읽어주는 부모의 눈 또한 따라가야 한다. 특히 아이가 책장을 넘기려고 한다면 책에 실린 글을 다 읽어주려 하기보다 아이의 호흡을 따라가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은 책에 대한 흥미를 가지고 있을 수 있다. 학창 시절, 시험공부를 하다 교과서 맨 앞쪽만 시커멓게 줄 치고 공부했던 것을 기억하는가? 시험 범위에 해당하는 부분을 공부해야 하지만 정해진 범위를 다 보기란 쉽지만은 않았다.
책은 공부와 다르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아야 하는 책보다 아이들이 궁금할 때 책에서 찾아보는 걸 훨씬 좋아한다. 하루에 평균 98번 질문을 한다는 만 4세 아이들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것에 호기심이 있다. 그렇게 질문을 하는 아이들이 책을 찾아보며 호기심을 해결하면 그 호기심은 지적 호기심으로 자란다. 그래서 학교에 갈 시기가 되면 궁금한 게 더 많아지고 더 자세히 알고 싶어 한다. 그때서야 스스로 책을 찾아보는 아이를 만나볼 수 있다.
아이들은 재미있는 것을 좋아한다. 정말로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책에서 아이가 좋아하고 궁금해하는 걸 함께 찾아보아야 한다.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이어 계속된다면 부모로서 잠시 귀찮은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질문을 하는 아이들은 생각주머니가 점점 커진다는 이야기와 같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어릴수록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어 하기 때문에 부모가 아이의 질문에 관심을 보이면 아이는 정서적으로도 안정된 아이로 자랄 수 있다. 부모에게 호기심이 많은 아이, 활동반경이 큰 아이들을 키울 때 에너지가 보통 아이들보다 훨씬 더 많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아이들이야말로 아이폰을 만든 스티브 잡스처럼 창의력이 자라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