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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나기 Nov 14. 2022

목수로 살아가기 9

나 혼자 산다.

평생 도시생활에만 적응되어 있다가 은퇴를 앞두고 농촌에서 땅을 밟고 살고 싶다는 얘기에 아내는 철딱서니 없는 낭만적인 생각이라고 몰아붙였다. 농촌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거기서 보낸 아내는 시골 생활이 얼마나 불편하고 힘든지 몰라서 하는 얘기로 치부하고 자기는 절대 시골로 내려가 살 생각이 없노라 단언했다.

그렇게 철없는 나의 농촌으로의 이주 계획은 처음부터 벽에 부딪쳤다.


농사는커녕 작물과 잡초도 잘 구별 못하는 도시 촌놈이 농촌에서 혼자 어떻게 살아낼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은 이주에 대한 생각을 질타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아직 은퇴 결정을 미루고 있는 시기에  은퇴 이후 제2의 직업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하고 있었다. 귀농은 선택지가 아니었다. 아내의 생각은 분명했고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농사를 지어 소득을 내야만 하는 상황도 아니고 그럴 가능성도 별로 없었다.


도시생활에 적응되어 살아왔지만  근본적으로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을 싫어하는 탓에  번잡한 도시생활은 편리함보다 짜증을 유발하는 일이 많았다. 조금만 움직일라 쳐도 차 없이는 불편했고 차로 나서면 교통체증과 주차문제로 늘 예민하게 반응해야 했다. 아내의 단언에도 철없는 나는 은퇴하면 도시를 벗어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굳어져갔다.


아내의 은혜로운 자비와 지인의 도움으로  그리 어렵지 않게 농촌마을에 자리를 잡았다. 살림집과 공방을 나란히 짓고 매일 별장 같은 곳으로 스무 걸음밖에 안 되는  출퇴근을 한다.

아내는 내 귀촌에는 동의했고 거기에 공방을 차리고 목공을 하는 것은 응원하지만 본인은 귀촌 의사가 전혀 없음을 누차 확인시켰다.  결국 '나 혼자 산다'를 각오해야 했다.  수시로 아내에게 물어가며

음식을 배우고, 세탁과 집안 청소의 요령과 냉장고 안의 음식물 보관과 관리까지  꼼꼼하게 익혀야 했다.


아내는 2~3주에 한 번씩  시골집에 내려와서  닷새 정도 지내다 도시로 돌아간다. 2년 가까이 반쯤 혼자 지내다 보니 어느 정도 집안일에 익숙해지긴 했으나 여전히 어렵다. 그 많은 잡다한  집안일들을 때를 놓치지 않고 모두 해내는 주부들이 대단하다.


조용한 시골집에서  혼자 지내려면 나름 계획적으로 시간을 보내야 한다.  많지 않은 수강생들과 함께 있는 시간 외에는  내 작품을  만들어가며  공방 유지 관리하고 집안 살림 _먹고 치우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일에도 시간을 꽤 할애해야 되고 또한 크지 않은 텃밭과 화단과 마당 잔디에서는 봄부터 가을까지 잡초와의  싸움이 끝이 없다.  집안일, 공방일, 텃밭일이 어느 정도 익숙해져 가니  요즘은 조금씩 책도 들여다보고 이렇게 글도 적어볼 수 있게 되었다.


일주일에 수강자가 오는 3일- 그것도 반나절 정도를 제외하곤 일주일의 나머지 시간은 거의 찾는 사람 없이 혼자 지낸다. 가끔 밭일하러 나오시는 이웃 분들과 가벼운 인사 나누는 것 외에는 사람을 마주치는 일도 거의 없다.  그야말로 나 혼자 산다.


스스로 선택하고 각오한 일이지만 혼자 지내는 건 아무래도 외롭고 쓸쓸하다. 하루 종일 말 한마디 없이 무언가를 계속하는 건 뚜렷한 목적의식 없이는 지속하기 어렵다.  분기별로 목공 작업계획을 세우고 실천해간다. 계획을 다 해내지 못한다.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으니 의욕이 앞선 것이라 여기고 다음 분기 계획을 세우고 진행한다. 그렇게 혼자 살아가는 일에도 외로운 작업에도 익숙해져가고 있다.


그 옛날 다산(정약용) 선생은 긴 긴 유배생활 동안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외로움을 견뎌내기 위해

시대의 모순과 아픔에 대한 깊은 '사색'과 '집필'로 고통의 시간을 이겨냈으리라.  


소설가 이외수 님은 작품을 쓰기 위해 스스로 집안 유폐를 결정하고 밖에서 문을 걸어 잠근 방 안에 갇혀

감옥처럼 아내가 넣어주는 식사를 하며 작품을 완성했다고 한다.   


난 유배도 유폐도 원치 않는다. 스스로 설정한 괜찮은 환경 안에서 좀 외롭긴 해도 내 일에 몰두할 수 있는 이 시간과 공간을 즐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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