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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랩 Oct 24. 2021

도시의 어떤 장소에 대한 사랑 (1)

한강공원과 나의 영어 말하기 템플릿

아이엘츠(IELTS / 영국 혹은 영연방 국가로의 이민이나 유학을 위하여 일정 점수 이상을 획득하여야 하는 영어 시험, 토플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학원에 다닌 적이 있다. 그 중에서도 말하기 강의에서는 시험을 위한 요령으로 일종의 템플릿을 암기하는 연습을 했는데, 선생님의 모범답안 템플릿에는 늘 한강이 있었다. 예를 들어 선생님이 만든 "나는 한강공원에서 시간을 보냈어. 한강공원은 내가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인데, 그 곳에서 나는 친구들과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경치를 감상해."와 같은 템플릿을 외우고 어떤 질문이 나오건 이것을 활용하여 답하는 것이다.


질문자가 "주말에 뭐 했니?"라고 묻는다면, 템플릿 그대로 답하면 되고, 좀 더 어려운 질문으로 "당신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은?"이라고 물어보면, "아, 나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내가 좋아하는 장소에서 시간을 보내. 한강공원은 내가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인데 (이하 생략)..."라고 답하는 것이다.


비슷한 템플릿이 몇 개 더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그 중에는 TV 시청에 대한 것도 있었다. 역시 스트레스를 풀기위해 TV를 시청한다는 논리였는데, 나의 실제생활에 비추어 볼 땐 동의할 수 없었지만 시험을 위해서라면 못 외울 것도 없었다. "나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TV를 봐. TV에서 코미디 쇼를 보면서 웃으면 스트레스가 해소될 수 있어. 그렇지만 너무 많이 보면 오히려 피곤해지기 때문에 정해진 시간 동안만 시청해." 따위를 외우면, "현대사회의 문제점은?"과 같은 질문에 'In contemporary society,' 만 붙여 그대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TV를 많이 보는 것이 문제일진 모르겠지만!)


내가 서울에 대해 템플릿처럼 말할 수 있는 문단은 무엇일까. "나도 한강공원을 방문해. 물론 나의 한강은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장소는 아니야. 괜히 계단을 오르내리고 교량으로 올라가는 경사로를 왕복하며 둔치를 내려보곤 해. 아니면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차 문을 잠깐 열어놓거나, 한 달에 한 번 열까 싶은 썬루프를 열어놓기도 하지. 아주 한가한 날엔 잠이 들기도 하는데, 너무 오래 자고 일어난 날엔 요통과 함께 부끄러움이 밀려오기도 해. 편의점에서 음료와 과자를 사서 해가 지는 모습을 관찰하는 날도 있다. 지상 지하를 왔다갔다 하는 노선이 재미있어 어떤 날은 서빙고동 교회 앞 주차장까지 갔다가 그냥 돌아오기도 한다."


영화 <소공녀>의 미소처럼 한강을 걸어서 건너보기도 했다. 그렇지만 복잡한 도로를 뚫고 가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아 보행로가 넓은 잠수교와 광진교만 건너보았다. 광진교는 서울의 동쪽 끝에 있어, 오후에 서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저 멀리 서울 시가지 위로 지는 해를 볼 수 있다. 반대로 향하면, 암사동 선사 현대아파트에 반사된 햇빛도 목격할 수 있다. 잠수교는 며칠 전에도 갔었는데, 대신 현실은 아니고 제페토에서 가보았다. 건너갈 수는 없었지만.


한강 위의 섬, 선유도와 노들섬은? 선유도는 아주 추운 날 밤에 갔던 게 생각난다. 춥고 사람이 없는 밤. 노들섬에서는 여의도가 잘 보인다. 한강철교 위로 지나가는 육중한 기차들도. 한강을 동서로 횡단하는 노량대교와 아차산대교는? 젊은이들이 많은 망원 한강공원, 그냥 사람이 많은 반포/잠원 한강공원, 이벤트처럼 가게되는 여의도 한강공원, 하남시계까지 찍고 돌아오는 시종점 같은 광나루 한강공원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촌 한강공원. 나의 템플릿은 여기까지로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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