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밤하늘과 그날의 별들과 그날의 미소

16년 전 인도를 추억하다

by 초록풀잎


엊그제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아는 얼굴을 발견했다.

한 출판사의 유튜브 페이지였는데 사회자 옆에 앉아있는 분의 얼굴이 눈에 확 들어왔다.

16년 전 인도 여행에서 만났던 신디 언니.

너무 반가워 클릭해보니 세계의 박물관에 대해 소개하는 코너에 박물관 큐레이터로서 출연한 것이었다.

맞다. 언니 직업이 큐레이터였지.

언니의 박물관 소개 이야기를 들으며 인도에서의 추억이 갑자기 떠올랐다.


2003년, 친구와 둘이서 인도 배낭여행을 준비하면서 가이드북을 정독하다가 나는 내가 인도에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도에 대한 이야기는 좋은 이야기보다 무서운 이야기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비행기 표를 끊었기 때문에(?) 가야 했고 무조건 조심하기로 굳게 마음을 먹었다.



가이드북에는 인도 여행 중 꼭 해봐야 할 것 중에 사막 낙타 사파리가 있는데 사막에서 텐트도 아닌 이불 깔고 오픈된 공간에서 잠을 자는 투어라고 했다.

정말 재미있지만 사막 한가운데에 사파리 일행 외에 아무도 없어서 사파리 중 성폭행 사건 등이 많이 발생하므로 남자 일행을 만들어 가라는 조언이 있었다.

대체 이 사파리를 가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그런데 그 사파리를 너무 해보고 싶었다.

사막에서의 하룻밤이라. 게다가 텐트 안도 아닌 모래를 요 삼고 하늘을 이불 삼아 잠을 잔다니.

그래서 가기 전 인도 여행 관련 카페에 몇 월 며칠쯤 낙타 사파리를 갈 예정인데 남자 동행을 구한다고 글을 남겼다. 그러자 한 남자가 댓글을 달았다. 우리와 같은 비행기를 타는 일정이었다.

그 남자는 일정이 맞으면 같이 가자며 자신은 키 180에 건장한 남자이니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 댓글을 보고 친구는 영 별로 내키지 않는 타입이라며 무시하자고 했다.

나는 내심 그래도 한국 남자 한 명 같이 가면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인도에 도착한 날, 비행기에서 내리면서 우리는 느낌으로 그 남자를 알아봤다.

키만 멀대 같이 큰 비쩍 마른 남자애.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카페에 글을 남긴 그 사람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

우연찮게 그 남자애는 우리와 같은 게스트 하우스에서 묵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묵으면서 오며 가며 그 아이를 만나 몇 마디 나눠본 결과, 우리가 모른 척한 것은 신의 한 수였다.

그는 약간 허당기와, 허세가 있는 아이였다.

우리는 결국 사파리를 같이 할 일행을 구하지 못한 채 사막의 도시 자이살메르로 향했다.

S3500150.JPG 사막의 도시 자이살메르 전경


미리 조사해본 바에 의하면 자이살메르가 특히 게스트하우스 호객이 심해 기차역에 내려서 정신 바짝 차리고 원하는 게스트 하우스를 잘 찾아가야 한다고 했다.

기차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둘러싸고 자기의 게스트 하우스로 오라고 호객하기 때문에 정신을 잃기 십상이라고 말이다.

우리는 여행 초반이었고, 아직 인도에 적응이 덜 된 상태였기 때문에 두려움을 가득 안고 자이살메르 행 기차에 올랐다. 그런데 기차 안에서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는 인도 청년이 있었다.

어디에서 왔느냐 몇 살이냐 이름은 뭐냐 흔한 인도 사람들처럼 이런저런 것을 물었고, 우리는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했다. 그렇게 대화를 나눈 후 그 인도 청년은 우리에게 명함을 한 장 내밀었다.

자이살메르에 있는 게스트 하우스 명함이었다. 자기네 게스트하우스가 좋다며 그쪽으로 오라고 호객을 하기 위해 우리에게 말을 걸었던 것이다. 우리는 가려고 예정했던 게스트 하우스가 있었으므로 콧방귀를 뀌며 명함을 가방에 넣었다.


그런데 자이살메르에 도착해 기차에서 내린 순간 10여 명의 사람들이 우리를 둘러싸며 각자의 게스트 하우스 이름을 소리치고 있었다. 정말 요즘 말로 멘털이 나가려고 했다.

그때 기차 안에서 우리에게 명함을 줬던 그 청년이 우리에게 다가와 자기의 오토릭샤를 가리키며 가자고 했다. 낯선 사람들에 둘러싸여 각종 소음에 노출되어 있던 우리는 그나마 대화를 나누어 본 사람이 나타나니 반가웠다.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가자. 하고 그 청년을 따라나섰다.

우리가 가려고 했던 게스트하우스보단 안 좋아 보였지만 그때는 빨리 그곳을 벗어나고픈 생각뿐이었다.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해 우리는 바로 낙타 사파리를 알아보았다. 한국인들이 좀 있으면 좋겠는데 여기는 인기 있는 게스트 하우스가 아니라 없을 것 같다며 사파리를 포기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순간, 한국인 언니 두 명이 게스트 하우스에 등장했다.

언니들이 우리에게 사파리 갈 거냐고 같이 가자고 제안해주어서 정말 뛸 듯이 기뻤다. 그 두 명 중 한 명이 바로 엊그제 유튜브에서 본 신디 언니였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사파리를 예약했고, 우리 외에는 서양 남자 두 명, 서양 여자 한 명이 예약을 했다. 그렇게 게스트 7명이 함께 사파리를 떠나게 되었다.


드디어 사파리를 가는 날.

낙타를 타고 사막을 걷는데 낙타의 등에 앉으니 낙타의 심장 뛰는 소리가 몸으로 전해졌다.

몰이꾼들은 친절했고, 사막에서 먹는 밥은 맛있었다.

그리고 사막에서 불을 피워 끓여주는 짜이 맛은 정말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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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를 타면 눈 높이가 확 높아진다


한 가지 문제라면 화장실이었다. 사막에는 화장실이 없으므로 메마른 수풀 뒤에 가서 볼 일을 보라고 했다.

나는 누군가 뒤에서 나타나면 어쩌나 싶어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다.

그런데 수풀 뒤에서 볼 일을 보고 온 신디 언니가 ‘뻥 뚫린 곳에서 볼 일을 보니 뭔가 자유로워진 것 같아.’라고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화장실에 가는 것도 뭔가 새롭고 즐거운 도전같이 느껴졌다. 나와 자연만 있는 자유로운 곳으로의 여행이랄까.


S3500135.JPG 다른 일행들의 낙타 행렬
S3500110.JPG 낙타에서 찍어서 흔들린 우리 일행 모습



그날 밤 사막의 한가운데에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 신디 언니가 이날을 위해 미리 준비해왔다며 폭죽을 한 가득 꺼냈다.


불빛이라곤 모닥불 밖에 없는 캄캄한 사막의 하늘에 화려한 불꽃들이 채워졌다.

낙타 몰이꾼 중 엘리라는 12살 어린아이가 하나 있었는데 그 아이가 방방 뛰며 좋아하던 모습이 지금도 생각난다.

언니의 폭죽 덕에 우리 모두 그 밤 얼마나 행복했는지, 그 행복의 순간을 준비해온 언니의 환한 미소도 참 좋았다.


늦은 밤,

모닥불을 끄고 모래 바닥에 침낭을 깔고 누웠다.

침낭 속에 들어가 머리만 쏙 내밀고 자려다가 얼굴이 추워서 얼굴까지 다 덮고 잠이 들었다.

그리고 몇 시간이나 흘렀을까.


문득 잠에서 깨어 침낭을 열고 얼굴을 내민 순간, 하늘에 가득한 별들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였다.

이래서 사파리를 오는 거구나. 안 왔으면 얼마나 아쉬웠을까.

언니들 덕에 이렇게 마음 편히 사파리를 할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우리가 기차 안에서 그 청년을 만난 것이 결국 이런 인연을 만들어주었다는 생각이 들자 고맙고 행복했다.


다음날 사파리를 마치고 돌아온 후 언니들과 메일 주소를 주고받고 헤어져야 했다.

그리고 40일간의 인도 여행을 마친 후 한국에 돌아와서 서로의 미니홈피를 통해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되었다.

그러나 미니홈피가 사라지면서 인연은 그렇게 잊혔다.

그런데 16년 만에 유튜브에서 언니를 발견한 것이다.


혹시나 싶어 네이버에 언니 이름을 검색해보니 여전히 큐레이터로 활발히 활동하면서 올 초에는 [뮤지엄 X 여행]이라는 책을 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미술관 박물관은 워낙 나의 관심 분야이기도 하고, 언니의 책이기도 해서 책을 주문했다.

오래전 낯선 땅 인도에서 시작된 인연이 이렇게 그녀의 책으로 다시 이어질 수 있음에 감사하며 언니의 책을 읽어보려고 한다.


사막의 하늘을 수놓던 언니의 불꽃놀이와 캄캄한 밤 온전히 빛을 내던 그 밤의 별들과 환하게 웃던 언니의 미소를 떠올리면서 말이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4599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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