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 아들은 엄마가 죽을까 걱정했다.
21년생 설탕남 아들의 이야기를 쓰며
아들의 마음이 궁금했다.
그렇게 상상 속에서 나는 한 번 아들이 되어보았다.
매일 아침 다리가 부어 아파하는 엄마가 보인다.
지친 표정으로 애써 웃어주고 대답해 주는 엄마가 보인다.
자꾸 병원에 다니는 엄마가 보인다.
위험한 걸 잘 보지 못하는 엄마가 보인다.
머리를 한 번도 빗지 못한 엄마가 보인다.
정성스럽게 음식을 차려주고 맥주로 한 끼를 때우는 엄마가 보인다.
일하고 있다며 저리 가 있으라고 하는 엄마가 보인다.
놀이터에 어깨를 늘어뜨리고 앉아서 바라만 보는 엄마가 보인다.
영양제를 매일 챙기지 못해 챙겨줘야만 먹는 엄마가 보인다.
엄마는 내가 잘 먹을 때 웃어 준다.
엄마는 내가 말을 잘 들을 때 행복하다고 말한다.
엄마는 내가 혼자 씻으면 고마워한다.
엄마는 내가 엄마를 챙겨줄 때 감동한다.
엄마는 내가 사랑한다 말할 때는 올라갔던 눈썹이 내려간다.
엄마는 내가 혼자 책을 보거나 놀이를 하면 좋아한다.
엄마는 내가 떼를 쓰면 버거워한다.
엄마는 나와 누나가 큰 소리로 말하면 작게 말하길 원한다.
엄마는 내가 말을 많이 걸면 조금만 있다가 대화하자고 한다.
엄마는 내가 자전거를 밀어달라고 하면 힘들어한다.
엄마는 내가 어르신에게 인사를 하지 못하면 시무룩하다.
엄마는 나와 몸이 오랫동안 닿아 있으면 견디지 못한다.
나는 세상이 궁금해서 계속 묻고 싶다.
나는 누나와 엄마와 신나게 뛰어놀고 싶다.
나는 엄마와 살이 닿으면 마음이 말랑말랑해진다.
나는 내 말이 맞는 것만 같다.
나는 하고 싶은 건 진짜 해보고 싶어진다.
나는 다른 어른에게 인사하는 것이 부끄럽다.
나는 신이 나면 목소리가 커진다.
나는 운동을 엄마와 하고 싶다.
쓰면 쓸수록 느끼는 건,
아들에게 나는 걱정스러운 존재라는 사실이다.
길 가다가 넘어질 것만 같고
자신은 매일 잘 챙기는 유산균과 비타민도 엄마는 못 챙기고
차에 부딪힐 것 같고
맛있는 건 하나도 먹지 못한다.
아들은 아이의 기준으로
엄마가 힘들지 않게,
엄마가 웃을 수 있게
애쓰고 있었다.
아들의 눈으로 바라본 나는 스스로를 챙기지 못하는 엉망진창 엄마였다.
아들이 내게 하는 행동들은
결국,
내가 나 스스로에게 해주었어야 하는 것이었다.
나의 건강을 챙기고
맛있는 음식을 하면 맛있게 먹고
잠을 푹 자고
내 시간을 갖는 것.
아들은 내가 변화하길 바라고 또 도왔다.
작은 아이도 아는 기본적인 걸 하지 못하는 나는
이렇게 아이의 걱정만 만들어주고 말았다.
- 엄마가 죽으면 어떡해
며칠 전 아이는 또 걱정하다가 울음보가 터졌다.
내가 아이에게 걱정을 끼치는 존재였다.
마음이 무거워진다.
오늘도 미안한 하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