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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브런치 작가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그러나 누구에게는 너무 소중한

by 제주 아빠


"여보 나 브런치 작가 됐어." 아르바이트를 다녀온 아내에게 자랑했다. 아내도 내가 보낸 톡을 이미 확인해서 알고 있다며, 축하한다는 말을 전했다. 일하느라 아직 읽지는 못했다며 분주하게 뒷정리를 하고 글을 읽기 시작했다. 아내가 내 글을 읽는 것만큼 떨리는 일도 없을 것이다. 사실 글을 쓴다는 것은 일종의 '배설' 행위와 같다고 생각한다. 음식을 먹고 몸이 영양분을 흡수하고 찌꺼기가 나오듯 삶을 먹고 경험을 흡수하고 나면 그 찌꺼기가 글로 배출되는 것이다.


아무리 위대한 글쟁이도 자신의 경험, 생각, 가치관 등을 오롯이 글로 표현해내기엔 우리의 삶은 너무나도 광대한 도화지 같기에 결국 압축되고 압축되어 모니터 화면에, 스마트폰 화면에 혹은 B5 사이즈의 작은 종이 위에 검은 활자로 뿌려진 수준이란 것이다. 그러한 내 글들을 아내에게 보여준다는 것.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한다는 것은 사실 조금은 부끄러운 일인 것이다. 내 만족에 쓰고 나만 볼까 오랫동안 고민하다 결국 보여주기로 결심한 것이다.


꽤 많은 브런치 작가들이 처음 접한다는 바로 그 '통보문'


그렇게 결심하고 이미 써놓은 글 몇 개를 최종 탈고하고 브런치에 올렸다. 작가 신청을 누르고는 뭐 이렇게 복잡한 절차가 있나 어차피 내 블로그에 내 글 쓰는 거랑 다를 바가 무언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작가로 모시지 못하게 됐다는 이메일이 온 것이다. '아뿔싸! 이거 아무나 시켜주는 건 아니구나.' 뒤늦게 깨달았다. 오래간만에 지원서를 내는 떨리는 마음으로 내 글에서 문제점은 없는지, 지원 사유 내용은 부실하지 않았는지 여러 차례 다시 읽어보고 인터넷에 브런치 작가로 선정되기 위한 방법을 검색해봤다.


너무나도 분명하게 떨어진 이유가 있었기에 수정해야 할 부분들을 고쳐나갔다. 마음자세부터 고쳐먹고 이건 한 번에 될 문제가 아니다. 또 떨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신중을 기했다.(마침 신문에서 우연히 본 그날의 운세에 한 번에 될 일이 아니니 신중하게 도전하라는 내용이 쓰여있던 건 참 우연이였겠다.) 두 번째 도전을 앞두고 제주의 삶을 돌아봤다. 지금까지 에세이를 나름대로 모아놨었지만 정말 '배설' 해놓은 수준이었기에 나름의 탈고 과정을 거쳐야 했고 무엇보다 내가 '왜 내 글들을 공개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고민해봤다.


세 가지 주제로 압축됐다. 육아휴직, 제주 살이, 홈스쿨링. 거기에 양념같이 내가 제주에서 찍은 아름다운 제주 풍경 사진들을 얹기로 했다. 자신 있게 두 번째 지원서를 보내고 기다렸으나 결과는 또 불합격.


'몰스킨' 노트에 B 샤프로 쓰는 것을 좋아했지만 어느 순간부턴 갤럭시 노트와 키보드가 더 익숙해졌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다른 브런치 작가분들의 글을 읽어봤다. 우연찮게 골라진 글들이 너무 짧고, 그저 생각의 나열 정도인 경우도 있었으며, 교훈적이지 않은 내용도 많았다. 이런 글들을 많이 보다 보니 분량 면에서나 구성 면에서 내 글들이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됐다. 하지만 조금 더 세심하게 인기 브런치 작가들의 글을 보니 갑자기 내 글들이 초라하다는 것을 느꼈다.


연필로 일기를 쓰다가 컴퓨터로 옮겨 적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터라 여전히 나는 아날로그적인 상태에 머물러있었다. 하지만 브런치는 엄연히 디지털화된 세상임을 깨달았다. 종이에 활자로 뿌려진 글이 아닌 하얀색 모니터에 나름의 디지털 느낌이 물씬 풍기는 하나의 웹페이지를 만든다는 생각이어야 했다. 글을 더 이상 손보기보다는 사진의 배열, 글과 사진의 조화 등에 조금 더 신경을 썼다. 제출하는 글도 3개까지 된다는 것을 알았기에 작가의 서랍에서 글 세 편을 추렸다. 쓰고자 하는 이유를 더욱 명확하고 심플하게 정리했다. 드론 사진을 포함할 것이라는 내용을 첨부해서 기대감을 높였다.


금요일에 제출을 한 터라 초조한 주말의 시간이 지나고 월요일도 하염없이 흘러갔다. 화요일 오후 휴대폰 진동에 브런치의 심벌마크인 깃털 만년필을 상징하는 듯한 알파벳 소문자 b가 보였다. 작가 선정을 축하한다는 내용이었다.


'브런치 작가 등단' 기념 선물이 된 좋아하던 초코 소라빵


누군가에게는 너무 쉬운 작가 선정이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에겐 소중한 경험이다. 괜찮은 구성과 UX(사용자 경험)로 내 글들을 친구, 지인 그리고 익명의 누군가에게 공개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제주에 내려오기 전부터 제주의 삶을 글로 남겨 포토 에세이로 출판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터라 내 글을 조금 더 다듬으며, 평가받는 예행연습이 출판 전 필요했다. 브런치는 그런 생각을 실현하기에 너무나도 좋은 설립 취지를 갖고 있는 곳이다. 카카오 브런치라고 하지 않고 브런치라고만 하는 이유도 그렇다고 하지 않는가.


내 졸작들을 3번이나 검토해가며 최종적으로 작가 활동의 기회를 준 브런치 사원분들께도 이 자리를 빌려 감사 인사를 드린다. 더불어 내 페이지를 구독해주고 좋아요와 댓글을 남겨주실 독자님들께도 먼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후배가 그려준 제주 우리 집 앞 가족사진 일러스트. 그려줄 때는 이 그림이 내 프로필 사진이 될 줄 꿈에도 몰랐다.


앞으로 제주 아빠는 제주에서의 소소한 삶을 부족한 필력으로 사진이라고 하는 MSG를 더 해서 발행할 예정이다. 그 사이에서 우리 가족들이 겪는 성장통 일기를 함께 민낯으로 공개한다. 부디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제주에서의 삶을 한 번쯤 꿈꿔보고, 육아가 혼자만 힘든 게 아니라는데서 위로를 받으며, 육아휴직의 용기를 내보고 홈스쿨링을 통한 새로운 교육 방식에 선입견을 조금이라도 없애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매일 방구석에 처박혀 글 쓴답시고 모니터만 들여다보는 남편을 위해 맛있는 커피를 타 주고, 작가 선정 축하한다며 제주 목살도 사주는 아내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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