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아픈' 도로

고흐의 꽃 핀 복숭아나무 - 봄나무인데 난 가을색이 느껴진다.

by 도시락 한방현숙

시공을 초월한 삶의 모습... 은 소설이나 드라마에서나 쉽게 찾을 수 있는 거지, 보통의 우리네 삶에서는 보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여기가 어디인지, 지금이 어느 때인지 인지하고 자의든 타의든 시간과 공간으로 들어가기 마련이기에…… 게다가 ‘초월’이라는 단어도 쓰임이 흔치 않다. ‘달관’이나 ‘초월’의 경지에 이르려면 웬만한 내공으로는 역부족일 터이니……

내가 어디에 있는지, 지금 시간이 어디에 머물러 있는지 우리는 늘 민감하게 반응하며 살아간다. 이런 알아챔을 넘어 극도의 불안이나 힘겨움으로 스트레스까지 받는 곳에 있다면 그곳은 이미 나의 기쁨이나 행복과는 많이 동떨어진 곳임을 어찌할까나?

‘싫은’ 곳이지만 밥벌이를 위하여 어쩔 수 없이 다녀야 하는 회사이거나, 오늘도 여전히 지옥처럼 느껴지는 곳이라지만 학생이기에 들어서야 하는 교문이거나, 극심한 고통을 이겨내야 하는 병원이거나 매한가지로 힘듦이 다가오는 곳들은 많다. 아침마다 엄마와 떨어져 가야 하는 맞벌이 자녀의 어린이집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행히 얻을 수 있는 이득을 다 취한 후에는 벗어날 수 있는 곳이 여기라면 그래도 참을 만할 텐데, 끝이 보이지 않는, 벗어날 수 없는 시공이라면…… 생각만으로도 힘들다.

이런 곳들과 멀어질수록, 이런 시간들이 줄어들수록 우리의 행복은 지켜질 것이다. 물론 성격과 능력과 취향이 어우러져 남들에게는 고통스러운 곳이 견딜만한 곳이 되는, 하늘의 복을 안고 태어난 부러운 이들도 많다.


자신이 원하고 꿈꿔온 일을 하며 밥벌이까지 할 수 있는 이라면 분명 행복한 이들일 것이다. ‘회사 가기 싫어!’, ‘죽기보다 싫은 회사 출근하기’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모두 고개를 함께 끄덕이는 현대인들의 삶 속에서, 나는 분명 축복받았다 여기며 감사한 마음을 쓸어내린다. 내가 하는 일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내가 원하고 원하던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교사들보다 수고로움을 잘 참아내는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임용되기 전 연안부두 어시장을 통과하여 다다르던, 아파트 어느 층의 방문 교사로 비린내 가득한 뜨거운 한여름을 찡그리며 보내본 적이 있기에…….

살다 보면 아린 마음으로 떠올려지는 아픈 곳 한둘 정도는 품게 되듯이 나에게는 인천 시청 후문을 가로지르는 큰 도로가 그렇다. 10여 년 전의 9살, 5살, 돌잡이 세 아이들 육아와 아픈 엄마 수발과 힘겨운 출근 등으로 나를 볶아대던 고된 생활의 아파트가 이 도로변에 있기에 근처에 진입만 해도 불현듯 마음 한 편이 싸해진다. 몸이 먼저 기억하는 그 힘듦이 되살아나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그때 얼마나 애를 쓰며 살아냈는지, 얼마나 매일 울고 싶었는지 나만 아는 아픔들이 아직도 아물지 않은 채 나를 흔들어 버린다. 그 도로를 지나가기만 할 뿐인데도 말이다. 아이들은 자라 성인이 되고, 엄마는 이미 가버리셨건만 그 붉은 상처들은 쉽게 아물지 않나 보다. 심지어 지금 매우 행복하다 하며 삶의 만족도를 나날이 높여가는 중이라 다독이는데도 나를 그때의 심정으로 되돌려 놓기 일쑤이다.

예전 어느 지인의 아이가 어린이집 수료 후 나란히 있는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는데 굳이 바로 갈 수 있는 정문을 마다하고 아파트를 빙 돌아 어렵게 학교에 갔다고 한다.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어린이집을 보지 않기 위해서였단다. 얼마나 그 기억이 싫었으면 어린아이가 그랬을까 싶어 마음 저민 적이 있었는데, 요즘 그 이야기가 자주 생각난다. 그때는 요즘 종종 기사화되는 ‘어린이집 아동학대’라는 말도 드문 시절이어서 아이 혼자 감당했을 그 고통을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

내게는 ’ 아픈 도로’ 같은 공간이 꽤 있다. 날밤을 지새워야 하는 어느 병원의 응급실, 엄마와 헤어져 살고 있는 아버지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배웅하는 초라한 아버지 모습이 한가득 차창 밖으로 보이던 어느 버스 터미널, 산산이 부서져 내리던 오빠의 마지막 모습의 벽제 어느 언덕길……. 비스무리(비슷한)한 상황과 공간만 접해도 가슴 저림 현상이 아직도 힘들다.


기승을 부리던 폭염이 자취를 감추고, 기분 좋을 만큼 선선한 계절이 다시 돌아와 기온만으로도 살맛 나는 요즘이다. 초록색 가득했던 도로가 단풍으로 물들고, 호랑가시나무 꽃들이 밤마다 알싸한 향기를 품어내는 계절이 다시 온 것이다. 이 기분 좋은 계절, 덩달아 아무 걱정 없이 그 도로를 지나칠 수 있기를, 이 사랑하는 계절이 그 도로를 완전히 물들어 버리기를 ……. 올 가을에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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