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끝자락, 아니 초가을 어귀

여름과 가을 사이

by 도시락 한방현숙

가로등 불빛 받아 나뭇잎의 흔들림이 섬세하다. 바람은 기분 좋게 볼을 감싸 지나고, 산책로 위로 멀리 던진 시선은 한가로이 늘어진다. ‘가을밤 듣기 좋은 노래 30곡’은 여전히 달빛과 어울리고, 발걸음이 가뿐할수록 내 몸도 가벼워진다. 맑고 밝음이 청명하다,이었던가. 청명한 가을, 청명한 바람, 청명한 내음, 청명한 마음까지……. 어느 것 하나 어울리지 않는 게 없다.

청명을 생각하다 단풍을 떠올려 본다. 올해는 특히 단풍이 예쁘다는데, 일교차가 클수록 단풍이 예뻐진다는 기상 캐스터의 날씨 알림을 생각하며 그래서 이렇게 한낮과 다르게 밤기운이 서늘하구나,라고 끄덕여 본다. 선뜻한 기운으로 마음은 더 맑아진 듯하다. 여름과 가을 사이를 걸으며 늦여름과 초가을을 생각한다. 무엇을 입을지 망설임으로 뒤죽박죽 엉키는 요즘의 아침 기온처럼 나도 어느 언저리쯤 와 있는지 발걸음을 되짚어 본다.

친하게 지내는 선배 선생님이 내년에 환갑이라는 말에 마치 몰랐던 것처럼 통화 중 깜짝 놀랐다. 진정 놀란 것은 선배의 나이가 아니라 함께 가늠되는 내 나이 때문이었으리라. 초가을 말고 늦여름에 계속 머무는 것은 여름을 붙잡고 싶은 아쉬움 때문일까? 나는 이미 무성한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맞이해야 할 때임을 알기 때문일까?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길이 힘들다. 몸이야 늙음을 받아들이기가 그래도 수월한데, 기억력 저하가 나를 수시로 당황하게 만든다. 단순한 건망증 수준을 넘어 요즘은 두려운 생각이 때때로 찾아온다. 지금 이 산책길도 갑자기 아득해질 때가 있다. 내가 걷고 있는 이 순간마저 혹시 내가 만든 나만의 시공 속에서 헤매는 것은 아닐까, 의심스러운 마음에 잠깐 짧은 소설(깜빡증이 나만의 불편함에 머물지 않고, 다른 이에게까지 피해를 주는 지경에 이른다면, 어마 무시한 이야기)을 엮기까지 한다.

단어를 떠올리려면 수십 초 갸우뚱거리고, 한쪽 어깨가 아파 팔을 곧게 못 올리고, 여기저기 부딪히고 넘어지는 일이 생기고, 아침마다 성인병 약을 챙겨야 하고, 어제 본 영화 제목, 전에 읽은 소설 줄거리가 가물거리고, 결재 올린 문서 중에 한두 가지 실수는 예삿일이 되어가고, 잊지 않으려 메모한 그 메모를 잊어버리거나 잃어버리고, 내가 알고 있는 단어, 내가 보고 싶은 내용으로 마음대로 해석해서 받아들이고, 귀도, 눈도, 안 들리고, 안 보이고…….

현저히 떨어진 자신감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다. 이것이 나이듦의 겸손함으로 재탄생한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그저 상실감으로 우울함이 오래 지속되고 있을 뿐이다. 늦여름 지나 초가을 언저리여서 그럴까? 겸허히 완연한 가을을 맞이하면 그 속에서 단풍과 열매, 성숙의 멋과 맛을 즐길 수 있을까? 앙상하게 눈 덮인 계절이 오면 이 시기가, 사실은 얼마나 찬란한 계절이었는지 알게 될까?

여전히 밤바람은 친절하고 달빛도 온유하다. 발 딛는 산책길은 안정적이고 청명함도 가시지 않았다. 사실, 이 좋은 계절에 나의 발길을 돌아볼 수 있음 자체가 축복이리라. 여름을 아쉬워하는 나를 다독여 가을 어귀로 이끈다. 누구는 왕성한 녹음을 펼쳐본 적 없었겠냐고 큰소리치려는 나를, 사실은 여름을 부여잡고 있는 나를 행여 … 라테는 말이야, 같은 말을 쏟아 내며 더 후져버릴라 입단속을 시킨다.

계절은 말이 없고, 나무 역시 과묵하기만 하다. 다만, 나 혼자 떠들고 있을 뿐이다. 청명한 밤공기를 한껏 들이마셔 본다. 맑고 밝은, 청명한 기운이 가을을 맞이하려는, 혹시라도 내 안에 있을 후진 모습을 확실히 밀어내 줄 것처럼……. 가을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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