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위의 요리, 아빠의 요리, 남편의 요리
남편은 이렇게 자랐다.
이렇게 시시콜콜 남편의 성장과정을 언급하는 이유는 아마도 가정에서 가부장제와 남아선호의 혜택을 누린 거의 마지막 남자 세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1990년 대 결혼을 하고
신혼 초 가부장제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남편은 허둥거리고 혼란스러워했다.
육아, 가사, 간병으로 지칠 때
우리 가족 모두 힘들고 어두운 터널 속에 있던 시절이었다.
남편의 발길이 부엌으로
장모님을 모시고 병원을 드나들며 고생하던 남편은 부엌도 수시로 드나들며 나의 힘듦을 나누려 했다. 깊어져만 가는 엄마의 병환으로 우리 가족이 위기에 빠질 때마다 내가 혼자가 아님을 따뜻한 음식으로 위로해 주었다. 어른들의 분주함 속에 뭔지 모를 불안감을 느끼던 아이들도 고소한 버터 향으로 달래주었다.
아빠의 토스트
버터 향을 맡으며 우유를 들이켜는 아이들 입가의 우유 자국과 웃음소리는 지친 피로를 풀어주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주말 늦은 아침마다 아빠의 토스트로 우리는 참 행복했었다.
사위의 뭇국
밥을 말아 오랜만에 잘 잡수신 기억이 지금도 뭉클하다. 아마 사위의 다정과 사랑으로 마음이 평안하셨으리라.
아빠의 오징어 볶음
윤기까지 번지르르한 남편의 오징어 볶음은 우리 가족의 화목이요, 붉은 사랑의 웃음이었다.
남편의 멸치국수와 번데기 탕
남편이 정성껏 뜨끈한 멸치국수를 말아내는 날에는 온몸이 피로에서 풀리는 것 같다.
남편은 50대 젊은이! 사랑꾼이 되었다.
엄마의 정겨운 된장찌개를 떠올리며 허한 마음을 다독일 때 우리 딸들은 아빠의 요리를 함께 떠올리며 지친 마음을 위로할 것이다. 힘들 때 다시 시작할 힘을 어쩜 아빠의 평범한 요리 한 접시에서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남편의 요리를 떠올리며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 배려하고 있다는 느낌으로 종종 행복한 나처럼 말이다.
아주 질 좋은 불고기 감을 어서 주문해 놓아야겠다. 식탁에 남편의 요리 하나 더 추가한다, 매우 흐뭇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