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고춧가루로 버무린 오일 파스타 만들기

둘째가 평소 해 주던 오일 파스타에 고춧가루를 팍팍 쳐 보기로 했다.

by 도시락 한방현숙

마음이 하루 종일 무겁고 힘들었다. 가슴에 돌이 얹어진 듯 답답하고 긴 숨만 나왔다. 정신을 잡을 수 없으니 일을 해도 재미가 없고, 밥을 먹어도 맛을 느낄 수 없었다.

산란한 정신이 머리 위로 둥둥 떠다니는 듯한 착각에 빠져 교실과 복도를 오갔다.

평정한 마음이 하루 만에 무너지다니... 그것도 가장 관계가 좋다 여겼던 둘째로 인해 이리 속상할 줄은 몰랐다. 끝까지 자기주장을 접지 않은 딸아이에 대한 실망과 섭섭함, 낯섦과 충격이 남편에게까지 이어지자 우리는 이틀째 잠을 설치며 뒤척거렸다. 어르고 달래고 호통까지 쳤으나 '25살, 성인, 책임, 믿어달라'는 단어를 내세우며 둘째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퇴근 후 아이들도 없이 썰렁한 집안에서 식욕마저 잃은 듯 피곤에 쓰러졌다. 저녁때를 한참 놓치고 일어나서도 밥을 먹을까, 말까 서성이고 있었는데 부엌 귀퉁이에 있는 파스타 면이 눈에 들어온다. 갑자기 오일 파스타가 먹고 싶어 지다니!

세 자매 중 요리하기를 즐기는 둘째는 종종 맛있는 냄새로 우리를 감동시켰다. 휴일이나 일찍 퇴근한 날이면 기족을 위해, 또는 엄마(아빠)나 동생(언니)을 위해 맞춤형 반찬까지 만드는 우리 집 요리사인데, 그중 오일 파스타는 나의 최애 음식이었고 둘째는 나를 위해 솜씨를 발휘하여 나를 종종 기쁘게 했다. 식당에서 먹은 어떤 오일 파스타보다도 내 입맛에 맞았고 곰살거리는 딸내미 얼굴이 배경인 식탁은 최고의 자리였다. 둘째가 만든 카레를 먹으며, 파스타와 샐러드를 나누며 얼마나 많이 웃고, 칭찬하고, 따스한 눈빛을 나눴던가!

둘째가 자주 만든 새우구이와 카레
둘째의 가지 파스타와 샐러드는 정말 맛있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둘째의 해물 오일 파스타!

둘째가 예쁜 병에 담아놓은 파스타 면, 둘째가 자주 해 주던 그 요리, 오일 파스타! 헛웃음이 나왔으나 나는 이미 레시피를 검색하고 있었다. 넉넉한 병에 든 올리브 오일, 붉은빛 페페론치노, 파슬리 가루 등등, 파스타 접시까지도 모두 둘째의 손을 타고 주방에 자리 잡은 것들이다.

둘째에게 받은 속상함을 둘째가 해 준 맛의 기억으로 잊으려 하다니...

하하호호 거리며 기쁜 마음으로 먹었던 요리를 지금 내가 이런 마음으로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둘째가 평소 해 주던 오일 파스타에 고춧가루를 팍팍 쳐 보기로 했다. 매콤하게, 산뜻하게, 깔끔하게 정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고춧가루를 부른 것일까?

♡ 마늘을 편으로 많이 썬다. (아무리 많이 넣어도 후회가 없다.)
♡ 팬에 올리브 오일을 넉넉하게 넣고 마늘을 튀기 듯 볶는다.
♡ 페페론치노를 적당량 잘라 넣는다.
♡ 새우나 다른 해물이 있으면 손질하여 넣는다.(아쉽게도 없었다.)
♡ 냉장고에 있던 송이버섯과 가지, 양파도 두툼하게 썰어 넣었다.
♡ 다진 마늘을 추가하고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 파스타면을 끓는 물에 넣어 7~8분 정도 삶는다.
♡ 삶은 파스타 면을 건져 면수 세 스푼 정도와 함께 오일이 있는 팬에 넣어 볶는다.
♡ 면이 기름과 어우러지면 고춧가루(2스푼)와 간장(2스푼)을 넣어 섞는다.
♡ 자작하게 어우러지도록 볶은 후 접시에 담아 파슬리 가루를 뿌려 낸다.
2인분 기준, 마늘은 10알 이상 넣었다.
간단한 재료로 깔끔한 맛(고춧가루 덕분)의 파스타를 완성했다.

고춧가루와 오일이 적절하게 버무려져 윤기가 흐르는 면은 제법 괜찮아 보였다.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속상한 마음을 없애기로 작정한 것처럼 뚝딱 한 그릇을 빠르게 비웠다. 잠시 후, 배가 불러오니... 다시 한숨이 나왔다. 이틀째 대치 중인 심리상태가 너무 버거웠나 보다. 이 맛있는 맛을 걱정 없이 둘째와 나누고 싶었는데...

접시를 밀어 놓고 둘째가 보낸 장문의 톡 내용을 다시 읽어 보았다. 아이의 진심이 느껴졌고, (아이가) 충분히 미안한 마음을 전달하고 있지만 마음을 바꾸겠다는 뜻은 어디에도 없다. 걱정할 만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신중하겠다며 자신감을 드러냈지만 내 마음도 요지부동이다.

부모로부터 정신적으로 독립하여 자기 길을 가는 것이 성인의 길이라면 그 길은 당연히 옳은 길이고 본인에게 유익한 길이어야 되지 않겠는가! 부모의 걱정이 욕심이 아니고 애정임을, 나의 충고가 속물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아는 아이가 저리 말을 듣지 않으니 낯선 마음에 근심이 한가득이다.

둘째와 나의 믿음은 어디로 갔는가! 서로를 애정하던 웃음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둘째를 누구보다 응원하고, 앞장서서 지지하던 당연한 마음이 멈춰 섰다. 잠시이기를 바라는 간절한 내 마음과 순간이라도 이런 마음을 품게 되었다는 것이 정말 당혹스럽다. 사랑하는 아이와의 갈등에서 한치의 찜찜함이나 의심 없이 싸우고 있음이 이리 아프고 속상할 줄은 몰랐다. 가족 모두 반대하는 상황에서 꿋꿋이 고집을 부리는 저 신념은 어디서 왔을까? 다음 오일 파스타는 예전의 마음으로 편하게 먹을 수 있기를 바라지만...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