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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장게장을 담그며...

by 도시락 한방현숙
간장게장 담그기

‘간장게장을 만들었다’는 나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놀랍다’와 ‘대단하다’가 주를 이르는데, 그 반응에 나 또한 언제나 비슷한 대구를 해 오곤 했다. ‘세상 쉬운 게 게장 담그는 일이라고’...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싱싱한 게를 구입하여 깨끗이 씻어, 한소끔 끓여 식힌 간장 물에 담가 놓으면 된다.

이 말에 코웃음을 치는 이들이 대부분이지만, 사실이 그렇다. 시작하기를 겁내서 그렇지 마음만 먹으면 매우 쉬운 요리 중 하나이다. 특히 우리 집 아이들은 간장게장, 양념게장, 새우장 등 가리지 않고 이런 비린 것들을 좋아하니, 짬을 내 요리하면 본전(가게에서 사 먹는 비용을 생각하면)을 뽑은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으로 수고를 마다하지 않게 된다.

♡ 냉동한 암게 2Kg을 구입했다.
♡ 솔로 구석구석 깨끗이 씻는다.
♡ 다리와 몸통(뾰족한 부분) 끝을 가위로 잘라 다듬어 놓는다.
♡ 간장 물을 한소끔 끓여 식힌다.
♡ 간장 물 배합= 간장(3컵) + 소주(1컵) + 사이다(1컵) + 설탕(1/2컵 )+ 생강 + 마늘 + 양파 + 레몬 + 고추 등이다.
♡ 4~5일 정도 지난 후 맛있게 먹는다.
♡ 좀 양이 많다 싶으면 한 번 더 끓여 식혀, 간장 물을 교체해 준다.
퇴근 후 끓인 간장 물(밤새 식은)을 아침, 출근 전에 부었다.
이제는 냉동 꽃게!

꽃게 값은 언제나 만만치 않다. 동네 생선가게 좌판에서 거품을 내며 버둥거리는 암 꽃게 값이 1kg에 40,000원이란다. 게장 정식 값에 비하면 착한 가격이지만 선뜻 구입하기 어려운 가격이다. 신선함을 생각해서 활게를 사려했으나 냉동실에 얼려있는 냉동 꽃게(1kg에 35,000원)를 주문했다. 강아지 '잡채'를 키우기 시작하면서부터일까? 더이상 살아있는 것들을 싹둑 가위로 손질하기가 어려워졌다. 그전에는 무서울 것 없는 손놀림이었는데, 이제는 어깨가 움찔할 정도로 소름이 끼치는 일이 되어버렸다. 혹시나 모를 충(蟲) 걱정에 일부러 활게를 얼렸다 게장을 만든다고도 하니 당분간은 냉동 꽃게를 구입할 것 같다.

지난 번 구입한 살아있는 꽃게 모습이다. 언제부터인지 더이상 살아움직이는 게를 다듬지 못하게 되었다.
언제나 남는!

간장게장을 만들어 다 먹고 나면 언제나 간장이 한 바가지씩 남는다. 냉장실에 보관하여 양념간장으로 쓸 요량으로 늘 정성껏 병에 보관했으나, 한 번도 재사용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 이것이 무엇이지? 라며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기 일쑤이다 보니 결국 대부분 버린 것 같다. 그래서 간장을 아낄 생각으로 아주 넉넉하지 않게 간장물을 만들었더니, 아뿔싸 꽃게가 다 잠기지 않는다. 간장 물을 다시 배합하는 수고를 되풀이한 적이 많다.

간장 물이 간당간당 할 줄 알았는데, 많이 부족하다.
내겐 너무 비싼!

내가 가본 게장 요리 식당 중, 눈이 휘둥그레진 곳이 있었는데, 마포경찰서 근처에 있는 오래된 식당이다. 친구의 초대로 서울 나들이 차 들렀었다. 일단 1마리에 40,000원이 넘는다는 사실에 입이 벌어졌고, 식사 중 추가 주문은 물론이고 포장 구매도 안 된다는 것에 놀란 적이 있다. 유명 맛집들의 특성(어려운 예약, 엄청 긴 대기 줄 등)이야 익히 알고 있었으나, 먹다가 더 먹고 싶어도 추가 주문이 어렵다니!(그렇게 비싼 가격이면서...) 값비싼 게장 정식을 먹다 떠오른 식구들 생각에 큰마음먹고 포장을 주문하려던 친구들은 하나같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게 웬일! '불가하다'는 당당한 직원의 대답에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 입구에 유명 연예인 사진은 물론이고, 대통령 사인까지 떡 하니 자리 잡아 대단한 식당인 줄은 알았으나, 비싼 값을 치르고도 더 못 먹을 줄은 몰랐다. 맛은? 당연히 맛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 정도 고가의 간장게장 식당인데... 당연 맛있다. 살살 녹는다.

1인분에 1마리 씩! 살살 녹는 귀하신 그곳의 그집 간장게장.
너를 위해 준비했어~♡

식구들이 모두 간장게장을 좋아하지만, 큰아이의 게장 사랑은 유별나다. '있으면 먹고, 없으면 말고'가 아니라 주기적으로 먹어줘야 하는, 눈에 어른거릴 정도로 좋아하는 음식이다. 늘 '게장 고픔' 상태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 좋아하다 보니, 남친과 데이트할 때도 간장게장집(무한리필, 저렴한)을 자주 찾아 게장 사랑을 발휘하는 것 같다.

그런 첫째를 생각하며 게장을 담갔는데, 어째 내 마음 상태가 많이 심란하다. 지난 일주일 간 첫째와 오해로 인한 소통의 부재로 힘들었기 때문이다. 나의 섭섭한 마음과 기대, 큰아이의 오랜 상처와 실수 등이 섞이고 섞여 갈등의 최고 절정을 찍었으니, 나와 큰아이는 물론이고 가족 모두 불편한 상태로, 알면서 모르는 척 일주일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게장은 맛나게 익어가는데, 내 마음은 칙칙하게 가라앉아 버렸다.

맛있게 먹어 주는 이가 있어 요리가 즐거운 것이고, 웃으며 먹는 이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 요리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게를 손질할 때는 첫째를 가장 많이 떠올리며 즐거웠는데, 게장이 숙성된 지금은 지난 일주일이 자동으로 소환되며 마음이 아프다.

내가 집에서 게장을 담가봐야 몇 번이나 하겠는가! (내 깐에 간단한 레시피라 생각해도) 값이 비싸고, 맛이 짜고, 신선도가 의심되어도 편리한 홈쇼핑 주문은 도처에서 나를 유혹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를 위해서 만들었다.'라고 내 마음을 전하고 싶다.

엄마, 우리 게장 언제 먹어요?라는 둘째 물음에, 복도 끝 첫째 방을 돌아보았다. 첫째가 편안한 얼굴로 나와 '호로록 짭짭!'거리며 게장을 맛나게 먹는 저녁 식탁을 그려 본다. 노란 알이 꽉 찬 꽃게 뱃살이 우리 첫째를 웃게 하면 더 좋겠다. 올봄 '간장게장'은 생각을 많이 담은 음식이 되었다. 선선한 가을(아직 한참 있어야 하지만)이 오면 아무 생각 없이 게장을 다시 담가봐야겠다. 가을이니 이번에는 수게로! 그때도 너를 제일 많이 생각할 거야~♡

게딱지를 여니 알이 가득이다. 간도 짜지 않고 맛나다.
너를 위해 준비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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