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주 긴긴 찌질한 고래 이야기-
2020년 코로나가 성행하던 때-
마음의 부채감이 가득 하던 어느날,
그녀에게 닿지 못할 글을 적었더랬다.
이제는 그녀도 읽어봐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간의 찌질함을 고백해 본다.
#2009년
오픈 파트너로 일할때, 거의 매일 아침 8시 40분 무렵에 톨사이즈 텀블러에 “미지근한 아메리카노요.” 를 주문하던 여학생이 있었다. 뜨거운 아메리에 얼음을 넣어 미지근하게 한잔. “이름이 같네요.”라며 슬쩍 말을 건네며 내 첫 버디가 탄생했다.
“레고 언니잉-“ 하는 아기 같은 말투의 내 1호 버디는- 어느 날 티비에 나오는 멋진 커리어 우먼이 되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방송국의 기상캐스터- 내가 티비에 나오는 것도 아닌데 괜히 어깨가 으쓱했다.
#2018년
마음 속에 늘 그리운 마음을 담고 있던 어떤 봄에. 우리는 아주 오랜만에 만나기로 했었다. 날짜가 다가왔지만 나도 그 아가씨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땐 내가 너무 작아졌을때여서- “뭐, 나랑 한 약속 따위쯤이야- 굳이 내가 연락하지 않는다면 만날 이유가 없었겠지!” 하고 말아버렸다. (이게 무슨 자격지심!) 관계적 약자라는 알 수 없는 비약에 빠진 상태였던듯 하다.
그리곤 얼마후 아마도 쿨해보이려고 먼저 다음을 기약하는 연락을 남겼을 때 한참만에 “언니, 제가 많이 아파요. 저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라는 짧은 메시지를 받았다. 갑작스레 너무 무거운 이야기를 듣게 되어 당황했던 것 같다. 궁금하지만 더 묻지 못하고 인터넷을 전전하며 뒤졌던 기억이 난다.
한 반년 쯤 지나- 그 아가씨는 기사로 알기 전에 말하고 싶었다며 결혼소식을 내게 전해왔다. 꼭 가서 축하해주겠노라 했고, 직접 와준다면 기쁠거란 이야기를 주고 받고는. 결국 난 그 식장에 가 직접 축하해주지 못했다.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하고싶은지도 모르고 휘청휘청 아무렇게나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하던 때에 -흑역사, 이불킥의 순간이라고 여긴- 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자신의 꿈을 준비하던 아가씨. 찌질하고 싶지 않아서 연락하지 않았던 시간들. 가느다랗게 연결된 SNS 속 멀어보이는, 아니 멋있어보이던 그 아가씨에게 쭈그러들던 내 모습. 많은 순간이 스쳐갔다.
그때 나는 다른 이유로 삶의 끝에 섰었다. 다시 살아보려 애쓰는 순간순간이 늘 힘에 부쳤던 나는. 위독하셨던 할아버지, 초라하고 싶지 않았던 나를 지키느라 이야기를 전해듣고도 선뜻 연락을 건내지 못했다. 그리고 얼마나 치열하게 새로운 삶을 시작했었을지 가늠도 되지 않은 그 아가씨의 아픈 시간을 위로하지 못했고, 새로운 가정을 꾸리며 힘차게 시작한 두번째 삶도 축복해주지 못했다. 때를 놓쳐 눈덩이처럼 쌓인 부채감에 더더욱.
다 알 수 없지만. 두번째 삶을 더 부지런히 재밌고, 예쁘게 살아가는 그 아가씨의 담담한 고백에- 그간 사실 나의 찌질함으로 초라초라초라 모드에 쌓여있어서- 그리고 삶의 고비에서 함께 나누지 못했다는 미안함으로- 새로운 삶의 시작을 축복해주지 못했다는 아쉬움으로-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고 이제야 고백해봅니다. 나의 첫번째 버디, 날씨
아가씨:) (지금은 날씨가 아닌 새로운 삶에 도전하고 있지만!)
세바시 잘봤어요- 그대의 선한 마음이 널리 닿기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함께 살아갈 수 있어서 진심으로 고맙고 축복해요.
우리, 바람 좋고 볕 좋은 날에- 커피 한잔 할까요? 미지근한 아메리카노를 다시 만들어 줄 수 없어 아쉽지만요 :)
#찌질함에대한고백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