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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운동화

by 고래씌 Nov 20. 2023

“막둥아, 큰일 났어. 미안해서 어쩌지?"

지금의 직장이 아닌 전 직장을 다닐 때, 한창 프로젝트 준비로 정신이 없어서 아빠 전화도 잘 받지 않던 시절이었다.


바빠죽겠는데 '아빠 왜 전화해?' 하는 못된 마음으로 퉁명스럽게 전화를 받았던 터였다.

그런데 대뜸 아빠가 저런 말씀을 하셨다.

뭐지? 무슨 일이 생긴거지? 혼란스러운 상태로 아빠와 대화를 이어갔다. 들어보니 이랬다.


"네가 새로 사준 운동화 있잖아. 아빠가 아껴신는다고 가게 뒷편 광에 벗어두고 신는단 말이야. 근데 잠깐 가게 앞에 벗어두고 일하고 있었는데 어떤 손님이 신고 가버렸어. 어떻게 해.."


무슨 큰일이라도 난줄 알았는데 그런건 아니어서 안도감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뭐 이런걸로 전화를 하나 싶어 짜증이 살짝 났다. 그러면서도 아빠의 풀죽은 목소리를 들으니 영 마음이 좋지 않았다.


"아빠, 괜찮아. 그거 비싼 신발도 아니고, 또 사면 되지."


애써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는 내게 아빠는 속상함이 가득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그래도.. 네가 사준건데. 아껴신는다고 두번밖에 안신었는데 어떤 놈이 신고 가버렸잖아. 속상해. 아빠가 속이 너무 상해. 그리고 너한테 미안해서 그러지.."

무심결에 받은 아빠의 전화 속 아빠는 너무나도 내게 미안해하고 있었고, 너무나도 속상해하고 있었다.

"아빠, 괜찮아! 내가 또 사줄게! 그 사람이 잘 신어주면 고맙지뭐! 걱정마 내가 또 하나 사줄게!"


살짝 당황한 나는 큰 소리 땅땅치고 아빠를 달래고 전화를 끊었다.


평소 일에 치여 아빠가 전화하면 안받기가 일쑤였다. 아빠의 안부와 곁들여지는 시덥지 않은 농담에도 대꾸해줄 마음의 여유가 조금도 없을 때였기 때문이다.  어쩌다 주어진 휴무에는 잠을 잔다는 이유로, 출장이다 뭐다 바쁘다는 핑계로 집에 잘 가지도 않았다.  그런 딸내미가 사준걸 뭘 그리 애지중지 하셨는지..


바로 쭈구리고 앉아 인터넷쇼핑몰을 뒤져 지난번에 산 신발과 최대한 비슷한 신발을 찾아 그길로 택배를 보냈다. 사실 지난번에 산 신발도 무슨 디자인으로 샀는지 정확히 기억도 나지 않는다. 어버이날은 다가오고 출장을 앞두고 있어 너무 바쁘다는 핑계에 대충 디자인을 찾아보고 주문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똑같은 걸 사려니 뭔지 막막해 그냥 내가 생각나는대로 사서 보냈다.  대신, 이번에는 꼼꼼하게 찾아보고 알아보고 보냈다.  아빠의 미안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덜어지라고, 속상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가벼워지라고 내 마음도 가득 담아 보내주고 싶었다.


바쁘다는 핑계-

미안하지만 돈으로 대충 해결했다고 생각했던 선물- 그리 비싸지도 않았던 브랜드 신발을 소중히 여겨준 아빠의 마음에 되려 미안함이 밀려왔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아껴신어주는 아빠에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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