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자의 도움 입어
“선생님, 감나무는 일 년 안에 열매를 맺기 위해 가지를 스스로 잘라요. 열매를 맺으려면 가지를 잘라야 해요. 샘에게는 너무 많은 가지가 있어서 딱한 생각이 들어요.”
“생명을 살리고 싶은 이들에게 사랑만 주고 목숨은 주지 말아요.”
오늘 예기치 않게 지인들로부터 나를 아끼고 돌보라는 충고 아닌 충고를 받고 조금 당황스러웠다. 나의 삶을 어느 정도 아는 이들이고, 직언도 서로 받을 수 있는 사이라 속으로부터 나오는 심심한 조언을 해준 거다. 어머니, 동생, 조카들, 최근에 암 진단을 받은 이모까지 나의 가지가 많다는 이야기. 나 아니면 그들은 안 된다, 이런 생각은 하지 않는다. 타고난 성격이 가까운 몇몇에게 많이 집중하고 챙기는 편이라 긴 생각하지 않고 심각하게 미래를 고려하지 않고 현재를 살아가기 바쁠 뿐.
최근 공저를 낸 지인이나 개인이 출간하는 것을 보면 나의 한계와 능력, 유명세 등 부족한 부분에 위축되기도 하고 염려가 앞서기도 하는 게 사실. 그러나 난 나이기에 복막염 수술 후 발견된 자궁근종 치료, 주기적 검진, 동생의 일 등등 삶의 문제가 오는 것은 어느새 당연한 게 되어버렸고 가지가 많아 부딪치기도 하고 힘겹기도 했지만, 스스로 부러뜨려 열매 맺고 싶을 정도로 가족을 멀리 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해보지도 않았다.
가지가 많아 열매는 못, 덜 맺더라도 누군가 가지에 앉아 주어진 시간만큼 쉴 수 있고 기댈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다면 감내하고 싶다. 주렁주렁 보기도 좋고 화려한 열매를 보여주진 못 해도 누군가의 삶에 사랑을 주고 좋은 기억을 심어 살아갈 힘을 얻게 한다면, 인생 헛되게 살지 않은 거라고. 나를 아껴 그런 이야기를 해준 친구가 고맙고 마음을 알기에 진심으로 받았다. 하지만 스스로 가지를 부러뜨리기보다 하늘이 더 큰 내공을 가지게 단련시키는 것이라면 한번 해보자는 마음이 지금은 강하다.
자기 시간과 물질, 체력을 아끼지 않고 쉼 없이 달려온 친구는 목숨은 주지 말고 사랑만 주란다. 그게 무슨 말인지 남을 위해 정성을 쏟은 친구의 삶을 알기에, 얼마나 힘들고 기운이 빠졌으면 저런 말을 할까 싶어 짠하고 가엾다. 그래도 누군가 자신을 찾으면 언제 그랬냐 싶게 달려 나갈 사람이라는 것도 안다.
요즘 온라인을 통해 독립 서점과 일반 서점에서 다양한 책을 사고 마음이 불안할 때는 작고 예쁜 책갈피나 엽서를 산다. 굿즈가 담긴 봉투나 포장지도 수집 중이다. 나도 인간인데, 이기적이고 본능을 따르기도 한다. 또 그만그만한 보통 사람일 뿐인데 왜 내 생각을 안 하겠냐마는 자신만 생각하는 것보다 누군가와 함께 가는 삶이 뿌듯하다. 힘들지만 보람되고, 혼자 시간은 부족해도 서로 도움받아 좋을 때도 많다.
외출 후 집에 돌아와 다시 수업 가려고 가방을 바꿔 나오다 체크카드를 안 가져와서 정류소에서 당황했다. 지각하지 않으려면 타야 할 버스는 3분 후면 도착. 방학을 맞아 집에서 딩굴딩굴하는 초딩 조카에게 S.O.S! 그래도 잠옷에서 외출복 갈아입고 이모 방에서 지갑 챙겨 달려온 아이가 있어 얼마나 고마운지. 3천 원을 꺼내 편의점에서 과자 사 먹으라고 하고 그다음 버스 타고 무사히 목적지 도착. 그런데 목적지에 학생들이 늦어 나만 헐레벌떡 먼저 왔다는 사실! 인생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방학을 맞아 집에서 놀고 먹는 것만 같은 초딩 조카도, 언니랑 성격 안 맞아 같이 못 살겠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던 동생도, 요즘 들어 부쩍 더위도 많이 타고 혼잣말로 짜증을 내시는 어머니도, 혼자서 걸어 치과까지 갈 줄 아는 중딩 조카도 다 힘들 것이다. 서로의 가지가 부딪쳐 답답하기도 하고 아프기도 할 것이다. 그럴 때는 슬며시 끝부분을 잘라 거리를 두고 나로 인해 가로막히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도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 이렇게 살아야 맞다는 것은 없으니 각자 살아가는 것이지만, 정신없는 작년과 부딪쳐 큰 소리 났던 시간을 거쳐 서로를 인정하고 조심스레 발맞춰 안정기(?)에 들어간 듯 보이는 올해를 지나고 있다.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면 바꿀 수도 있는 힘이 생기기를, 그러나 아직 누군가를 위해 체력과 시간과 물질을 쓸 수 있을 때 기쁘고 지혜롭게 사용하는 순간도 감사할 뿐이다. 지나고 보면 은혜, 또 은혜인 것을! 서로를 통해 모두가 성장하는 중이다.
“우린 어쩌면 늘 공사 중일지도 몰라요. 계속 성장해나가고 있고요. 스스로 쓰러지도록 방치하거나 자신을 잃을 정도로 팽개치진 않을게요. 그건 저도 원하는 게 아니니까요! 너무 걱정 말아요. 서로 응원하며 기대하는 마음으로 지켜봐요.”
두렵지만 위험과 시련이 기다리는 삶의 현장에 뛰어드는 것이야말로 나다운 삶을 좇는 사람에게 필요한 태도다. 인생에서 좋은 일만 있었으면 좋겠다는 낭만적인 바람 대신 힘겹고 곤란한 일들도 피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 삶은 구체적인 것이다. 현장에서 깎이고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는 것을 거부한다면 나로 살아갈 수 없다.
- <<나답게 산다는 것의 의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