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가의 편안함, 예술을 피워내다
태양의 해안 (Costa del Sol), 유럽인들이 선호하는 대표 휴양도시, 썸머 캠프 라는 언급만으로도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의 관심을 충분히 끌 수 있겠지만, 오늘은 그곳에 2주간 머물면서 내가 느꼈던 말라가 라는 도시의 매력 중 ‘편안함’이라는 키워드를 조금 풀어놓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
크루즈 선박에서 내려 말라가 센트로 관광지의 중심인 구시가지 진입 횡단보도 앞에는 덴마크 출신의 동화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Hans Christian Andersen)의 동상이 있다. 사진으로 보면 거대해 보이지만 사실 눈에 잘 띄지 않는데, 나도 머무는 2주중 거의 매일 그길을 지나갔지만 마지막 날에서야 눈여겨 보게 되었었다.
동상의 아래에는 “다른 어떤 스페인 도시에서도 말라가만큼 행복하고 편안함을 느낀 적이 없다 (In no other part of Spain have I felt so happy and so at home as in Malaga.)” 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안데르센이 1862년 스페인의 여러도시를 여행하고 적은 여행기 <A Journey through Spain> 에 적혀 있던 문구로, 덴마크 왕실에서 안데르센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여 스페인에 의뢰해 2005년에 동상을 말라가에 세웠다고 한다. 아마도 추운 북유럽에 있었던 안데르센은 강렬한 스페인의 햇살과 바다를 보고 따뜻함과 함께 편안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유추해본다
말라가는 도시 크기와 인구대비 상당히 많은 박물관을 보유한 곳으로도 유명한데, 구도심지 역사지구 근처에만 총 36개의 박물관이 존재한다고 한다. 솔직히 역사지구가 그렇게 넓은 구역이 아니다보니 유적지 옆에 박물관, 박물관 옆에 박물관, 그 옆에 또 유적지가 연달이 있어서 관광객 입장에서는 이동에 불편함이 없어서 좋은 편이긴 했지만 에? 여기또 박물관이 있다고?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곤 했다. 관광자원만으로만 말라가를 부흥시킬 수 없다는 말라가시와 안달루시아 주, 스페인 정부의 판단에 따른 문화 전략 투자지가 되었다고 하는데 , 나와 같이 여유롭게 머물다 가는 관광객에게는 무료 전시공간도 많았고 바르셀로나 대비 여유로운 관람을 할 수 있어서 많은 면에서 장점이 있었다. (풍피두의 유일한 국제 분관도 말라가에 있다)
말라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세계적인 예술가,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년 말라가에서 태어난 피카소는 유년시절 말라가 미술대학의 교수이자 큐레이터였던 아버지에게서 그림과 예술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1991년 이후 아버지의 직장 이동과 본인의 진학 등으로 바르셀로나, 마드리드 등에서 지내긴 했지만 사실상 피카소의 명성이 알려지기 시작한 청색시대, 장밋빛 시대 등은 파리에서 꽃을 피웠으니 피카소의 미술 근거지는 파리라고 하는 것이 가장 옳은 말일 것 같다.
하지만, 말라가가 이 거대 인물 피카소를 놓칠 수 있을까? 말라가에는 피카소의 생가에 유년기 사진과 습작을 전시해 놓은 피카소 생가 미술관과 말라가 시가 주체가 되어 만든 피카소의 며느리와 손자가 기증한 230여점의 작품을 전시해 놓은 피카소 박물관이 있다. 우리 가족은 피카소 박물관에 방문했는데, 바르셀로나 대비 작은 규모의 박물관이지만 피카소 전 세대의 작품을 골고루 감상할 수 있다는 평이 있어서 말라가에서 방문을 선택했다. 16세기 궁전에 만들어진 박물관은 작품별 공간이 여유가 있어 개별 작품에 집중할 수 있었으며, 중정을 거쳐 전시실을 이동할 수 있는 구조여서 중간중간 휴식을 취하기도 좋았다. 작품수가 바르셀로나 대비 적다고 이야기 할 수 있겠지만 그의 70년 가까운 작품활동의 시대별 대표작이 딱 적절한 수준으로 전시되어 있어서 아이들이 지치지 않고 관람을 마무리할 수 있어서 좋았다.
Tip) 피카소 박물관들
1. 피카소 박물관 바르셀로나 - 1963년 설립. 피카소가 설립에 직접 관여했으며 총 4,300여점을 보유하고 있고 청소년기~청색시대 중심 전시
2. 피카소 박물관 말라가 - 2003년 설립. 말라가시가 피카소의 가족에게 기증받은 총 230여점 작품 전시하고 있고, 시기별 대표작을 두루 아우름
3. 피카소 생가 미술관 - 피카소 생가에 유년시절 사진과 습작 스케치 전시.
아이들 첫 등교 후 남편과 처음으로 말라가 센트로에 구경간 날, 난 오늘 여기 무조건 가야겠어! 라며 선택한 곳이 피카소가 가끔씩 말라가에 들릴때면 들렸던 선술집으로 알려진 Antigua Casa de Guardia였다. 어디서 부터 내려온 구전인지 말라가에서 만들어낸 관광상품인지 그 진위는 알 수 없지만, 그곳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줄을서서 들어가 그 지역의 달콤한 디저트 와인을 맛을 보고 있었다. 오크통이 늘어진 그 곳에서 주문순서를 기다리며 챗지피티로 스페인어 주문방법을 외워 “Dos copas de Pedro Ximenez, por favor” 라고 말하고 혼자 뿌듯해한 나란 사람 … 오전 11시부터 오픈런으로 와인한잔 들이키고 “와~ 우리가 피카소랑 같은 술을 마셨어!” 라며 기뻐하는 나에게 남편은 ‘말라가 데려오기 잘 했네’ 라며 뿌듯해했다.
오후 늦은 시간이 되면 거리 행위 예술가들이 메인 스트릿에 나오기 시작한다. 동상인줄 알고 가까이 가던 아이가 화들짝 놀래서 도망을가고,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은 신기한 퍼포먼스에 시선을 빼앗긴다. 그렇게 말라가의 오후가 저문다. 모두가 느릿느릿 걸어가며 퍼포먼스를 즐긴다. 무언가를 조용히 관람하며 한번쯤은 돌아보며 걷는 속도, 말라가에 있는 동안 나의 리듬이었다.
정열의 나라 스페인에서, 따갑게 내리쬐는 태양의 해안에서, 모두가 흥분되어 있는 휴양지에서, 나는 말라가를 떠올리면 왜 고요함과 편안함을 유독 느꼈는가를 가끔 생각을 해본다. 말라가는 말라가만의 템포가 있었고, 그 여유에서 나오는 너그러움이 있었고, 나는 그래서 말라가를 뜨거운 곳이 아닌 따뜻한 곳으로 기억하나 보다. 아마 안데르센도 그랬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