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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애 Dec 12. 2024

폭식, 참지 않고 자책하지 않고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폭식을 참으려고만 하는걸까?“

그리고 이어 이런 깨달음이 찾아오는 날이 있었다.

“왜 폭식을 하고 나면 이렇게까지 나를 자책해야만 하나?”


사실, 폭식을 멈추려고하면 늘 실패로 끝났다.

먹고 싶은 음식을 억지로 참다 보면,

결국에는 터져버리곤 했다.

그때의 나는 폭식을 하지 않으려 애쓰는 것도,

폭식을 하고 나서 나를 더 음식으로 몰아붙이는 것도

모두 나를 향한 폭력이라는 걸 알지 못했다.




폭식하는 나를 자책하기 않기로 했다.


나는 언젠가부터,

폭식을 참으려고도 자책하려고도 하지 않기로 했다.

그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내가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이 무엇인지,

그 감정을 내가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배운 적도,

그걸 알려준 사람도 없었다.


불편한 감정이 찾아오면,

가장 쉬운 해결책은 음식 앞으로 숨어버리는 거였다.

슬프거나, 외롭거나, 화가 나거나, 공허할 때

음식은 늘 내 곁에 있었다.



그게 몇십 년 동안 반복되다 보니,

나는 감정을 알아차리는 대신

음식을 찾는 일이 너무도 자연스러워졌다.

폭식은 내가 살아온 시간의 흔적이었다.

그걸 나쁜 것으로 몰아세우며 자책하는 건,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나를 부정하는 것과 같았다.




나를 소중하게 대하는 연습


그렇게 폭식을 자책하지 않기로 결심한 뒤,

나는 나의 식욕과 감정을 알아가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먹고 싶은 음식을 무조건 참으려고 하기보다,

내가 지금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을 선택하고,

그 음식을 소중히 먹는 법을 배워갔다.


전날 밤 침대에 누워

내일 내가 진짜 먹고싶은 음식을

진지하게 생각하며 잠들곤 했다.


초콜릿을 먹고 싶다면, 허겁지겁 먹는 대신

한 조각씩 꺼내어 맛을 음미했다.

빵이 먹고 싶다면 쌀로 만든 식빵에

버터와 잼을 듬뿍 발라 예쁜 접시에 담아서

나를 위해 대접했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스트레스 때문에라도

이 음식을 먹고 싶다면,

“그래, 먹어도 괜찮아”라고 허락하로 했다.


하지만 한 가지 원칙은 세웠다.

지금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을 먹는 것.


‘그냥 눈에 보이는 걸 닥치는 대로 먹는 폭식’이 아니라,

“내가 지금 진짜 먹고싶은게 뭐지?” 물어보고

그 음식을 소중히 대하며 먹는 법을 연습했다.


예를들어,

폭식하고 싶은 마음에 케이크를 보고 있다.

그리고 물어본다.

“정말 이 케이크가 먹고 싶어?”

“아니면 지금 따뜻한 커피 한 잔과 초콜릿 한 조각이 더 좋겠어?”

“아니면 지금 잠시 누워서 쉴까?”

내 마음에 솔직해지는 연습을 반복했다.


이런 연습을 하면서 깨달았다.

부정적인 감정,힘든 컨디션 = 음식이 아니라는 걸.


그래서 음식을 먹을 땐

늘 내가 먹고싶은 것들로 채웠다.

행복하고 편안한 상태에서 식사를 하는 연습도 이어갔다.




내 감정과 마주하기


폭식을 자책하지 않고,

나를 위한 음식을 선택하면서,

감정을 알아차리는 연습도 함께 시작했다.


방법은 일기였다.

내가 그날 먹은 것, 왜 그렇게 먹었는지 이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어떤 신체변화가 왔었는지.


최대한 나에대해 객관적으로 사실만을 쓰는것에 집중했다.


“그때 나는 왜 화가 났지?”

“왜 그 감정을 느낀 뒤 바로 음식을 찾았을까?”


설령 화나고 짜증나는 감정을 느끼는 순간

동시에 어떤 음식을 찾고 먹었다면,

먹고있으면서 떠올려봤다.


“나 지금 이거 왜 먹고 있는거지? 그 감정 때문인가?”


폭식은 단순히 음식을 많이 먹는 행위가 아니라

내 감정과 연결되었다는 걸 알았다.


나는 그야말로 감정식사가 주식이 된 사람이었다.


음식이야말로 도피처였고,

유일한 도파민같은 존재 였다.




어린 시절의 나와 마주하다.


아이를 낳고 나서야,

나는 폭식과 감정의 관계를 더 깊게 이해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내 감정이 어떤지

어떻게 다뤄야하는지 배워볼 기회가 없었다.

내 감정이 무엇인지 이해해보려 노력해 본적도,

그 감정을 다른 방법으로 다뤄본 경험이 없었다.

그저 내가 알고 있던 가장 쉬운 방법,

음식에 기대어 살았던거다.


그러니까 내 삶에서도 너무나도 당연하게

자리잡았던 친구같은 존재였던거다.

자책할 필요가 없는,

내 과거의 흔적일 뿐이었다.




혹시 누군가 폭식 뒤에 찾아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면,

우선은 그 마음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음식으로 도망치고,

감정을 다루는 방법을 몰랐던 당신의 잘못이 아니니까.

나처럼 수십 년 반복된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거다.


지금부터도 늦지 않았다.

내 감정에 귀를 기울이고,

내 식욕에 관심을 가져보는 연습을 시작해보자.


나에게 물어보자.

“내가 지금 정말 먹고 싶은 음식은?”

“이 음식을 내가 소중히 준비해볼까?”


음식을 먹고 난 후,

오늘의 내 몸, 마음, 먹은 음식을 일기에 적어보길 바란다.

자책하지 말고, 그저 담담하게.

그리고 내일, 또 다른 하루를 준비하며 나를 다독여보길.


폭식을 참으려고 애쓰지말고,

폭식을 통해 나를 다정하게 바라보고 이해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분명 당신도 폭식이라는 굴레에서

조금 더 나에게 친절한 방법으로 나올 수 있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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