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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수 Feb 08. 2018

임진강의 민들레


1. 임진강의 민들레


1950년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사람들은, 태고적부터 그들의 숙명에 따라 그저 하루하루를 살기에만 부심하고 있었다.

우태갑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재산으로 평온하게 살아가는 서울 필동의 부자이다.

큰딸 이화는 의과에 진학한 여대생이고, 동생 옥엽은 집안의 살림을 도맡아 하며 희생양처럼 생활을 한다.


6·25가 일어나지만 미처 피난 가지 못한 이화네 가족은 살아 남기 위해 공산군에 협조하는 부역자가 된다.

공산군의 뒷바라지는 옥엽이 전담하고 어머니 심씨는 인형처럼 철 모르고 산다.

이화는 우익 청년 윤지운을 사랑한다.


전쟁 상황은 악화되어 남동생 동근은 의용군에 자원하여 열성 분자가 되고 동훈은 동굴 속에 숨어서 도피 생활을 한다.

지운은 피난길에 올랐다가 우여곡절 끝에 서울로 오나 이화와는 영원히 이별하게 된다.

지운이 떠난 후 충격을 잊으려던 이화가 의무반에 자원하여 병원에서 일하던 중 공산군의 후퇴로 강제로 따라나서야 했기 때문이다.


이화는 동료 김명식을 만나 탈출 기회를 노리다 실행에 옮긴다.

옥엽은 자신을 좋아하던 공산군 장교에게 잡혀 가다가 그의 비정한 살상 행위를 보고는 도망친다.

서울로 와 가족을 만나지만 아버지는 끌려가 학살당하고 동훈은 병자가 되어 있었다.

그 사이 동근이가 전사한 것은 아무도 모른다. 이화는 임진강까지 김명식과 함께 내려왔으나 비행기 폭격을 피하지 못한 채 허무하게 기총사격을 맞고 죽고 만다.



비행기가 쏜 총에 맞아 죽기 전 이화는 기쁨을 참을 수 없는 듯 강변으로 달려간다.

소리 내어 술렁이며 강물은 흐르고 있었다. 음악이며, 시, 그림 같은 것들이, 인간이 그 생활 이외에, 혹은 그 생활 이상으로 사랑하는 것들이, 거기 모두 있었다.

이화는 멍하니 강과 마주 서 있었다.


인간사에서 떨어진 아름다움이 그녀를 감동시키고 있었다.

온갖 이렇게 오묘한 것을 사랑하며 또 사람 사람끼리 사랑하며, 그렇게 살도록 인간도 원래는 그렇게 만들어졌던 것이 아닐까?


그때였다.

맞은편 산 뒤에서 비행기가 붕 떠올랐다.

이화는 선 채로 비행기를 쳐다보았다.

그 모양은 숨는 것을 잊었거나 어쩌면 숨기를 싫어하는 사람의 그림처럼 보였다.

요란한 폭음과 비행기 총성이 한동안 찰랑이는 물소리를 말살하였다.

그리고 몽땅한 기체는 멀리 사라졌다.



하늘은 붉어졌다.

강물도 마지막으로 찬란한 주홍색 단장을 하였다. 이화의 의식이 문득 돌아왔다. 몽롱히 분명찮은 삼십 초 가량의 호흡이었다. 

그녀의 한 손 끝은 얕은 물속에 잠겨 있었다.

잔물결만이 가만가만 쉬지 않고 출렁였다.

석양을 받으며 노란 작은 꽃이 한 송이 물에 젖어 있었다.

꽃은 반짝반짝 빛을 반사하였다.


'아, 민들레가 피었다.'


이화는 그렇게 생각하였다.

그녀는 그것을 만져 보려고 하였다.

그리고 그녀의 의식은 다시 끊어져 영원히 되돌아오는 일이 없었다.


가을 들녘에 민들레가 피었을 까닭은 없었다.

그것은 노란 금속의 훈장이었다.

어느 군인인가의 군복 앞가슴을 장식하였을, 그것은 노란 훈장이었다.

(강신재, ‘임진강의 민들레’에서 발췌)




2. 분단의 상징 임진강


어느 날 임진강 철책선 넘어 북녘땅으로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철책선과 강물에 비치는 노을의 일렁임이 문득 강신재의 소설 ‘임진강의 민들레’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 속 장면은 바로 그 ‘주홍색 단장을 한 강’에서 이화가 민들레로 착각하고 떨어져 있던 노란색 훈장에 손을 내밀며 죽어가던 모습 그대로였다.


하지만 주홍색 단장을 한 강에는 지금 민들레도 훈장도 보이지 않는다. 단지 눈물만 흐르고 있을 뿐이다. 한참을 바라본다.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를 않는다. 그저 바라볼 뿐이다. 이화의 모습이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냄새가 난다.” 이렇게 시작하는 ‘젊은 느티나무’(강신재, 1960)는 언제나 작가 자신에게 신화처럼 자리하고 있는 그런 나무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저기 저 임진강에 우뚝 서 있는 느티나무가 바로 우리들 신화를 대신 재현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을 하게 만든다.


아주 오래전부터 강가에서 지켜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저 강을 자유롭게 오가는 사람들을...

분단의 상징 임진강,



임진강을 소재로 한 문학작품이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강신재의 ‘임진강의 민들레’와 김낙중의 ‘임진강’이라는 소설 정도가 눈에 뜨일 뿐이다. 북쪽 사정도 비슷한데 북한 작가 김명익이 쓴 단편소설 ‘림진강’이 보일 뿐이다. ‘림진강’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숙희는 결혼해서 도시로 떠나간 뒤 고향 임진강 마을에서 홀로 사는 어머니를 도시로 모시려고 한다. 그러나 어머니는 한사코 임진강을 떠나지 않으려 한다. 어머니는 잠시 다녀온다고 임진강을 건너간 남편과 아들이 되돌아오기만을 무릇 서른여섯 해나 임진강 마을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숙희는 아무것도 모른 채 어머니를 꼭 도시로 모셔 가려고 작심하고 고향으로 내려간다. 그러나 숙희는 어머니로부터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전쟁 때 아버지는 다섯 살 난 숙희의 오빠가 아프자 임진강을 건너 삼거리마을 의원을 찾아간다. 그러나 아버지는 정전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다가 어느 날 밤 불쑥 단신으로 임진강을 건너 어머니를 찾아온다. ‘아이는 왜 데려오지 않았소?’라는 어머니의 물음에 ‘아직도 낫지 않은 아이를 어떻게 강물을 업고 헤엄쳐 올 수 있겠소. 다 나으면 데려 오리다’라고 답하며 어머니와 하룻밤을 지내고 다시 되돌아간다. 그렇게 떠난 아버지는 36년이나 지난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36년 전 하룻밤을 지새울 때 생긴 씨앗, 그 아이가 바로 숙희였다.


어머니는 말한다. “내라구 어째 너희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모여 살고 싶지 않겠냐. 허지만 통일이 되면 네 오빠 아빠가 제일 선참으로 건너올 게다. 그러면 내라도 집에서 기다렸다가 맞아 들여야 하지 않겠니?”라고.

(김명익, ‘림진강’에서 발췌)



임진강가에 사는 어느 노친네 이야기도 ‘숙희네’ 이야기와 비슷했다. 장단으로 시집간 딸네 집에 먹을 것을 해 들고 임진강을 건너간 어머니는 간밤에 인민군이 내려오는 바람에 소식이 끊겼다고 했다. 그때부터 물장수 할아버지는 지금까지 임진강가 낡은 집에서 이사도 안 가고 부인이 돌아올 거라 믿고 기다리며 살고 있다고 했다.


그 사이 할아버지는 동네에 혼자 사는 어떤 여인네가 불쌍해 함께 지내다 냉수 한 사발 떠놓고 혼례도 치웠다고 했다. 그리고 아이도 하나 낳았다고 했다. 아이가 성장해 서울서 사는데 부모를 도시로 모셔가려 하지만 장단으로 건너간 부인이 생각나 할아버지는 도저히  갈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렇게 지금껏 기다리며 살고 있다고 했는데 그 사이 재혼한 부인은 그만 지병으로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재혼한 부인도 사실은 625가 나기 전 남편이 개성에 있는 시집에 볼일이 있어 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기다리다 임진강가에서 둘이 만나 혼례를 치르고 함께 기다리며 세월을 보낸 것이었다.


통일이 되면 제일 먼저 임진강을 건너올 우리의 아버지와 어머니들, 그리고 통일이 되면 제일 먼저 마중을 나갈 임진강의 자식들. 임진강변에는 그렇게 통일을 기다리는 민들레들이 기다림으로 지새우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 1987년 어느 날 바다로 물질 나간 소녀의 아비는 심한 풍랑에 좌초되어 방향을 잃고 북방한계선을 넘어간다. 어느덧 어른이 된 소녀는 아버지 환갑상을 차려드리고 싶다는 편지를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보내고 임진각 부근 도로변에 아비의 무사귀환을 염원하는 노랑 손수건 400장을 매달았다. 그녀는 동진호 피랍 선원 최종석 씨의 딸 최우영 씨였다.(2006년 1월 14일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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