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태원 Taewon Suh Dec 28. 2018

MJ가 JYP와 BTS에 미친 영향

뉴잭스윙을 중심으로 한 케이팝의 한 계보학

세렌디피티[serendipity]란 단어를 좋아합니다. 세렌디피티란 의도되지 않은 우연스러워 보이는 발견을 의미합니다. 혁신에는 필수적인 요소이지요. 인생은 우연의 필연적인 연속이 아닐까요? 음악 산업에서도 우연은 필연처럼 발견됩니다. 모든 창작은 지나간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섬으로써 이루어집니다. 계보학을 통해 이러한 환경의 보이지 않는 조형 작업을 더듬어 보는 작업은 꽤 재미있는 일입니다.

케이팝의 현재의 성과는 놀랍습니다. 현재의 성과가 어떻게 도출되었는가 하는 점을 [환경론적으로] 그리고 [일화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것이 부분적인 일화일 뿐 전반적인 비평이 아님을 잘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박진영, 유영진, 방시혁, 방탄소년단 등 케이팝의 한 부분에 대해서만 언급하고자 합니다.


케이팝을 이끄는 기획/콘텐츠 회사의 하나인 JYP의 중심인 박진영으로부터 얘기를 시작합니다. 박진영에 대한 마이클 잭슨의 영향은 확연합니다. [그녀는 예뻤다]를 [Don't stop 'til you get enough]와 연결하는 것은 과히 어렵지 않습니다. 그의 데뷔곡인 1994년작 [날 떠나지 마]는 Bobby Brown 류의 New Jack Swing의 영향이 짙지만 연대기적으로 볼 때 전통적인 R&B 댄스 장르의 완성자인 마이클 잭슨의 영향력이 앞선 것이겠지요.


박진영이 70년대 초반생인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는 70년 말의 R&B와 Disco의 영향을 짙게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꽤 어린 나이에 팝뮤직에 노출된 것일 테지요. 그의 팝적인 감성과 춤에 대한 진지함을 볼 때 특히 마이클 잭슨의 영향이 커 보이는군요.


마이클 잭슨은 그의 전성기인 80년대 히트한 세 앨범에 있어서 20세기말 R&B와 Jazz scene의 거두 프로듀서 퀸시 존스의 디렉션에 근거해 전통적인 스타일의 R&B의 포지셔닝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퀸시 존스와 결별하고 1991년 뉴 잭 스윙의 완성자인 Teddy Riley의 어시스트로 전형적인 뉴 잭 스윙 넘버로 가득 찬 [Dangerous]를 발표한 것은 첫째 뉴 잭 스윙이 당시 메인스트림으로 완성되었다는 사실 판단과 둘째 따라서 대중의 인식을 일관적으로 추구했던 박진영이 당연히 뉴 잭 스윙의 영향을 받았으리라 보는 추측의 근거를 제공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필자는 현존 케이팝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장르를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에 걸쳐 미국에서 메인스트림 팝을 이루었던 뉴 잭 스윙이라고 판단합니다. 물론 현재의 케이팝은 더욱 복잡한 퓨전 혹은 하이브리드의 장르입니다. 게다가 케이팝의 현재형에 대한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논하기에 뉴 잭 스윙은 단지 유행이 지난 장르일 뿐이지만 그 영향력은 계보학을 통해 볼 때 명확한 것으로 보입니다. 뉴 잭 스윙 자체도 R&B, 랩, Funk, 디스코에 New Romantic 류의 신시사이저 뮤직이 덧입혀진 퓨전 형식의 멜로딕한 팝 음악입니다.

뉴 잭 스윙의 첫 앨범은 사실 마이클 잭슨의 동생인 자넷 잭슨의 1986년작 [Control]로 보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필자는 이 앨범이 80년대 팝음악계를 정의하는 음반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 앨범은 미네아폴리스 출신의 또 다른 실력자 Jimmy Jam & Terry Lewis의 프로덕션이자 그들의 메이저 breakthough였습니다. Human League의 1986년 넘버원 싱글 [Human]과 George Michael의 1988년 넘버원 싱글 [Monkey]도 그들의 작품입니다.

 

{When I think of you], Janet Jackson의 음악 풍과 그녀의 얇은 목소리는 시대적 유행이 됩니다.
Babyface와 LA Leid도 뉴 잭 스윙의 발흥에 크게 기여합니다. 이들이 제작한 Bobby Brown의 1988년작 [Don't be cruel]은 뉴 잭 스윙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반이 됩니다. 특히 미국 시장에서의 세 번째 싱글 [Every little step]은 90년대 케이팝의 댄스 넘버의 한 전형이 됩니다. 특히 박진영에게는 그의 전 음악활동을 통해 영감을 주게 되는 넘버입니다.
Teddy Riley가 뉴 잭 스윙의 완성자로 인식되는 것은 그의 음악을 소개할 때 처음 쓰인 뉴 잭 스윙이란 용어가 나중에 일반 장르명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마이클 잭슨이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그를 스카우트해서 뉴 잭 스윙의 말기를 대표하는 앨범을 제작했던 것도 그 대표성의 또 다른 근거가 되겠습니다. 사실 테디 라일리 자신이 사용한 자신의 음악에 대한 타이틀은 [Sophisticated bubblegum music]이었습니다. 메인스트림으로서 뉴 잭 스윙의 정의가 되며, 아이돌 그룹에게는 더욱 어울리는 타이틀이 되겠네요.   


Teddy Riley가 제작한 [Jam] by Michael Jackson in 1991.          들으면 쉽게 듀스가 떠오릅니다.
흑인의 음악으로 하나의 마이너 장르였던 R&B가 80년대 이후 메인스트림이 될 때 취했던 형식이 뉴 잭 스윙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에 힘입어 이른바 urban contemporary는 90년대 이후 팝 뮤직의 중심이 됩니다.


박진영뿐만 아니라 SM의 대표 작곡가였던 유영진도 뉴 잭 스윙의 신봉자였습니다. 그가 작곡한 S.E.S. 의 1997년작 [('cause) I'm your girl]는 케이팝 역사상 뉴 잭 스윙을 가장 잘 소화해낸 넘버가 아닐까 합니다. (저도 좋아 했습니다만...) 그가 직접 노래한 대표 넘버 1993년작 [그대의 향기]도 전형적인 뉴 잭 스윙 류의 발라드입니다. 90년대 전반기를 호령했던 Deux도 랩/힙합으로 분류되지만 사실상 뉴 잭 스윙의 문법을 가장 잘 따랐던 밴드입니다. (성재가 살해(!) 되지만 않았더라고 1990년대 한국의 대중 음악계는 크게 달랐을 것입니다.)


뉴 잭 스윙이 케이팝에 잘 수용된 이유는 기본적으로 첫째 강한 비트와 함께 멜로디가 강조되는 뉴 잭 스윙의 메인스트림 팝적인 전형성에 있습니다. 둘째로는, 1988년작 [Hangin' tough]를 거쳐 1990년작 [Step by step]으로 뉴 잭 스윙의 노선을 강하게 취한 보이 밴드 New Kids on the Block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겠습니다. 1992년 데뷔한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로 대개의 90년대 아이돌 그룹은 뉴 잭 스윙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습니다. 뉴 키즈 온 더 블록과 그들의 음악 형식은 90년대 한국 아이돌 그룹의 주요 텍스트가 되었던 것입니다. 특히, 듀스[Deux]의 1995년작 [Force Deux]는 한국형 뉴 잭 스윙의 최고봉이라 할만 합니다.  


BTS로 대표되는, 현재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케이팝의 주류 세대는 보다 넓은 풀의 제작자와 작곡자를 기반으로 한 보다 강력한 산업적인 전략의 산물입니다. 그러나 뉴 잭 스윙으로 대표되는 팝적인 퓨전의 감수성이 그 원천에 있음은 확연합니다. BTS을 탄생시킨 방시혁이 JYP를 통해 성장한 것은 우연스러운 필연인 것입니다. 마이클 잭슨에서 뉴 잭 스윙, 그리고 박진영에서 방시혁과 방탄소년단으로 이어지는 음악 계보학의 한 가지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Title Image: Michael Jackson at his best look... from:

이전 01화 "편견 없이 들어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