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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로소 Jun 10. 2024

땀이 나도록 쉬어본다.

입에서 나오는 한숨들이 도로 명치끝 어딘가로 삼켜지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머릿속이 밟힌 낙엽처럼 뭉그러져 엉키고 급기야 두통이 오곤 했다. 하하 호호 재미있다는 예능 프로그램도 시큰둥하니 남의 일처럼 여겨졌다. 텔레비전조차 켜지 않으니 집은 절간처럼 고요했다.

안 신던 등산화를 꺼내서 끈을 꽉 매었다. 밖으로 나오니 햇살이 말가니 봄날이었다.

평소에 걷지 않던 길을 걸었다. 긴 터널을 걷다 보니 웅웅 거리는 차들의 울림과 함께 이런저런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터널을 나오니 머릿속이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몸을 조금 움직여 보기로 했다.

요가를 시작했다.  말투가 무서운 선생님이 가르치는데 선생님이 애쓰는 게 보이니 무섭지 않았다. 호랑이 선생님 같다고 할까. 이제 요가 초보인 내게 물구나무서기를 시켜서 깜짝 놀랐다. 별 동작을 하지 않는 것 같은데 끝날 시간이 다가오면 땀이 흘러내렸다. 조용히 인사를 하고 나오면 얼마나 기분이 상쾌하던지 모른다.  집에 와서 온몸이 쑤시고 아팠지만 운동하는 동안의 잡념이 없어지는 시간이 너무 소중했다.

몸을 움직이는 것 귀찮고 힘들게 느껴질 수 있지만 막상 시작하면 움직임이 주는 상쾌한 감각이 있다.


운동은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강력한 쉼이다.



쉬고 싶다고 느끼는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각기 다른 이유로 사람들은 동굴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가만히 누에처럼 고치를 틀고 침잠한다. 나는 처음에는 화가 났고 슬펐다. 조금 지나니 힘들고 지쳐서 번아웃이 온 것 같았다. 살아온 나날들을 부정하게 되다가 현재를 못 살고 미래가 암담해졌다.


에스키모인들은 화가 나면 아무 말 없이 고 또 걷는다고 한다. 한참을 걷다 화가 풀리면 그 자리에 막대로 표시하고 돌아온다. 돌아오는 길에 화가 난 이유에 대해 생각하며 마음의 평정을 되찾는다.


걷다 보면 호흡에만 집중하고 어느덧 나와 마주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 다리를 움직이고 숨 쉬는 나와 마주하게 된다. 오로지 앞으로 움직이는 나만 존재한다. 호흡이 거칠어지면 나는 '지금 여기'에 놓인다. 공간, 시간에서 오직 동작과 몸에 집중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땀이 나고 몸이 고되어지면 마음도 머리도 비워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를 힘들게 했던 것들이 의미 없어지기도 하고 감정에 치우쳤던 내가 객관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이해되기도 한다.

어떤 것들을 내가 놓아야 하고 선택해서 가져가야 하는지 떠오르기도 한다. 과거의 나를 돌아보고 오늘을 살지 못했음을 깨닫게 된다. 미래의 나를 위해 '지금 여기'에서의 삶을 잘 살게끔 나의 호흡을 가다듬게 된다.

빨리 가려고 짧은 호흡을 내쉬며 다그쳤던 자신을 돌보고 좀 더 긴 호흡을 내쉬어본다.

땀이 나도록 쉬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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