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솔직히 나는 때로는 행복했고 때로는 행복하지 않았다. 인생에서 종종 일어나는 어떤 사건으로 인해 절망의 나락을 겪고 있을 때도 있었지만 어떤 때는 불행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그냥 그런 무심한 상태이기도 했다.
우리는 '행복강박'에 빠져있다.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면 큰 일 날 것 같은 사회분위기다. 살다 보면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행복을 강요받는 것 같다.
때로는 아무 생각이 없을 때도 있다. 지금이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은 일상적인 나날들일 수도 있다.
어느 날 가족 중 누군가가 큰 병에 걸려 그저 그랬던 일상이 흔들리고 나서야 평범했던 그날들이 행복했었구나 뒤늦게 깨달았던 적도 있다. 불행의 문을 두드리고 나서야 일상적인 나날들이 소중해진다.
돈이 많아야 행복해, 성공해야 행복해, 결혼을 해야 행복해, 좋은 대학을 가야 행복해, 좋은 곳에 취업해야 행복해, 아파트를 사야 행복해, 근사한 차를 가져야 행복해, 날씬하고 이뻐야 행복해...
행복의 기준이 이렇게나 많았던가. 이 조건을 다 맞춰야 한다면 이 생에 행복하기는 틀렸다. 아니 위 조건 중 하나라도 갖춘 들 평생 행복할 수 있을까. 결혼을 하면 행복할 것이다라는 핑크빛 논제가 항상 그렇지 않다는 것을 주위를 보거나 매체를 보아도 알 수 있다. 결혼을 해서 행복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결혼을 하지 않아도 마찬가지다. 만약 여기 지금 멈춰 서서 나의 행복 요소를 당장 찾지 않는다면 하나를 가지고 또 다음 것을 가지더라도 늘 행복이 모자란 사람이 될 것이다.
'나도 행복했으면 좋겠고 가족들도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이루어지기도 하고 이루어지지 않기도 하는 소원이다.
'부자 되세요' 만큼이나 '행복하세요'는 흔히 쓰이는 문구이지만 사실 행복이란 게 무엇인지 명확한 정의를 내리기 힘들다. 사람마다 행복에 대한 체감이 다르고 작은 것에 행복해하다 또 금세 불행하다고 느끼는 감정선이 풍부한 이들도 있는가 하면 -내가 그렇다- 무덤덤하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소소한 일상을 행복으로 느끼는 사람도 있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도 냉탕과 온탕을 겪으며 행불행을 수시로 오고 간다. 비교하고 질투하고 시기하며 다른 모든 것들은 그대로인데 혼자 땅 파고 들어가며 불행하다고 느끼는 이들도 있다.
같은 상황에서도 A는 행복할 수 있고 B는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 가족들과 치킨을 먹으며 행복하다 느끼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비싼 레스토랑을 가지 못해 불행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자연의 모든 것들은 그대로인데 꽃이 피어 행복하고 잎이 떨어져 불행하다면 나의 마음이 그런 것이다. 나의 기분이 오늘 왠지 즐겁고 또는 그냥 우울하다.
작은 민들레가 마냥 귀엽다가 길가의 쓰레기에도 화가 나는 날도 있다.
행복하기 위해 너무 많은 노력을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날들을 흘러가도록 두면 오르락내리락하며 삶도 흘러간다. 그러기에 나는 오늘 행복하지 않다고 말할 수도 있어야 한다. 늘 밝고 좋은 얼굴만 보일 필요는 없다. 행복할 권리도 있지만 행복하지 않을 권리도 있다.
살다 보면 아프고 힘든 날이 오기도 하고 지내다 보면 즐거운 날이 오기도 한다. 소소한 행복도 오고 크나큰 행복도 스쳐 지나가지만 작은 불행과 견디기 힘든 불행이 따라오기도 한다.
행복의 한가운데에도 쉼이 있고 불행의 한가운데에도 쉼이 있다. 쉬면서 마음은, 기운 저울추의 평형을 맞추어간다.
더우면 그늘에서 쉬고 추우면 따뜻한 아랫목에서 쉬듯이 날이 궂거든 피하고 날이 좋거든 온전히 누려보는 것이 내 삶에 대한 쉼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