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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욱 Dec 29. 2022

미리 쓰는 유서

* 이 글은 글 모임 '팔글팔글'에서 제시된 주제(유서)로 미리 써본 글입니다. 



내 인생에 유서를 쓰는 날이 올 줄은 몰랐습니다. 모든 사람은 태어난 이상 언젠가 죽을 운명이기에 죽음이 낯설기는 해도 두렵지는 않습니다. 다만, 아직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가 너무도 넓은 것을 알기에 아쉽고 지금까지 충분히 잘 살아왔는지 확신이 들지 않기에 미련이 조금 남기는 합니다. 


성심으로 살기를 바라며 살아왔습니다. 이 사회에 아주 다양한 방법으로 성심을 실현해 내는 분들을 많이 뵙고 나서 든 마음입니다. 그 마음을 닮아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재주를 활용해 성심으로 살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못 돼먹은 성격 덕분에 24/7 성심으로 살지도 못했고 지 기분이 좋지 않다고 칼 같은 말을 쏟아내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던 적도 있을 겁니다. 부디 인생 전반을 통틀어서 다시금 뒤돌아보면 그래도 성심에 가까워지려 최대한 노력했기를 바랍니다.


나로 인해 이 사회가 아주 조금이라도 더 나아졌기를 바랍니다. 거대한 부를 축적해 어마어마한 금액을 기부하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내 손으로 흙 묻히고 이마에 땀 흘려가며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진 못했지만, 그래도 내가 남긴 글 한 조각, 내가 남긴 생각 한 조각이 누군가에게는 가닿아 도움이 됐길 간절히 바랍니다. 짧은 인생을 살아오면서도 큰 스승님들에게 세상을 뒤흔드는 가르침을 얻었고, 길거리의 현자들에게 값을 매길 수 없는 다정함을 배웠습니다. 청출어람으로 보답하겠다던 말이 허황되게 끝나게 되어 너무도 아쉽지만 어마어마하게 대단한 사람은 아니었을지라도 세상에 존재하는 한 사람이라도 잠시라도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도왔다면 그것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 소임은 다 했을 것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주변에 좀 더 다정한 사람이지 못 했던 것 같아 미안합니다.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주변 사람들에게 다정하지 못했습니다. 한 번도 다정한 사람이었다거나 따뜻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었던 적은 없지만, 그런 핑계를 내세워서 노력조차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누구에게 얼마나 매정했는지조차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것을 보면 한두 번 그러지 않은 것 같습니다. 상처받았을 모두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합니다.


사람이 죽고 난 뒤 어디로 갈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부디 떠난 나 때문에 남은 이들이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함께해준 덕분에 행복했고, 살만한 세상이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최진석 교수님은 아침에 일어나면 조용히 앉아 '나는 금방 죽는다'를 서 너 번 중얼거리신다고 합니다. 그러면 적어도 그날 오전까지만은 덜 쩨쩨하게 살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이 말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바쁜 일상에 치이다 보면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는 자명한 사실을 잊고 삽니다. 우리의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알면 집착하지 않을 많은 것에 집착하고 살게 됩니다. 저 또한 매일 그러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유서 쓰기는 좋은 주제였다고 생각합니다.


유서를 미리 써보며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다시 한번 고민해볼 수 있었습니다. 내 삶에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유서는 좀 개인적인 내용이 담긴 것 같아 공개하지 않으려다가 내어놓지 않으면 또 까먹고 살게 될까 봐 늦게나마 이렇게 내놓습니다. 함께 글을 쓰는 분들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삶을 조금 더 깊이 있게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 글은 팔글팔글에서 함께 쓴 글입니다.

괄호 속은 해당 회차의 글 주제입니다.


첫 번째 글 - 나는 아직도 시가 어렵다 (詩)

두 번째 글 - 유서

세 번째 글 - 아직 실내에서는 마스크 쓰셔야 됩니다. 제발요(싸움의 기술)

네 번째 글 - 착한사람 (같은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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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글팔글(오글오글 2기)이 뭐죠?

https://brunch.co.kr/@kkw119/295

오글오글 1기 후기

https://brunch.co.kr/@kkw119/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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