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1. 10
십일 월 십 일 오전 여섯 시. 정말 오래간만의 단잠을 이뤄낸 직후였고, 눈을 뜨고서 처음 들이마신 숨에는 겨울 향이 물씬했다. 혹시 모른다는 기대감에 곧바로 커튼을 열어젖혔지만, 안타깝게도 첫눈을 만끽할 수 있는 호사까지는 내게 주어지지 않았다. 아무렴 괜찮았다. 금방이라도 눈이 왈칵 쏟을 것만 같은 하늘과 나는, 창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서 데면데면한 사이처럼 수줍어했다. 나는 포슬포슬 새어 나오는 웃음을 뒤로하고서 곧장 이불을 개기 시작했다.
겨울이면 나는 늘 조용히 들뜬다. 사랑이 충만해진다. 대체로 모든 말과 행동을 조심스럽게 행하지만, 속은 전혀 그렇지 않다. 침묵의 힘이 비참하고 시린 추위를 전부 이길 만큼 강해진다. 특히 사심을 품고 있는 사람의 얼굴이 자주 떠오른다. 그럴 때면 내게 있어 겨울은 원래부터가 아주 따뜻했던 계절이 되고야 마는 것이다. 종종 어지러워 견딜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르기도 하지만, 별처럼 소복이 쌓였을 눈과 어디서부터 들려오는지 모를 캐럴이 나를 금방 진정케 한다. 이렇듯 겨울은 꿈의 변두리처럼 내게 긍정적인 측면에서의 긴장감을 선사하고, 그런 순간의 중심부와도 같은 날이 오늘의 나를 환하게 맞았다.
이불을 올곧게 겐 후에 방문을 덜컥 열고 나간 거실은 고요했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각자의 방에서 나름의 꿈을 꾸고 있을 터였다. 왠지 모르게 “다녀왔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어질 만큼의 다정함을 느꼈다. 평소에는 좀처럼 들을 수 없었던 시계 초침소리가 거실 벽면의 곳곳에 부딪히며 크게 울어댔다. 나는 그 소리가 꼭 필연적인 사랑에 빠진 순간 귓전에서 울려 퍼지기 마련인 천사의 종소리 같다고 생각했다.
가족 중에 유일하게 출근을 하지 않는 나는, 가족들이 집을 나서기 전에 간단히 먹을 수 있도록 프렌치토스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달걀 네 개를 열심히 저어 풀어두고 식빵을 넉넉히 꺼내 반으로 잘랐다. 그리고는 설탕을 꺼내기 위해 부엌 선반의 문을 여는 순간, 쾅 소리와 함께 내 바지와 발등이 노르스름히 젖었다. 그 바로 아래의 바닥은 말할 것도 없었다. 달걀을 풀어둔 플라스틱 그릇이 나의 다리를 미끄럼틀 삼아 바닥으로 굴러떨어져 버린 것이었다. 나는 잔뜩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황급히 바닥을 닦아냈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잠에서 깬 엄마는 내게 어이없다는 표정과 미소를 번갈아 지어가며 핀잔을 줬다. “이거야 원 다섯 살짜리 아기 키우는 것도 아니고…….” 나는 괜스레 머쓱해진 얼굴로 엄마를 보며 헤실헤실 웃어 보였고, 졸지에 ‘또’ 사랑에 빠진 머저리가 되고야 말았다. 뒤따라 일어나 거실로 나온 형이 기지개를 크게 켜며 “이놈 이거 사랑하는 사람 생길 때마다 안 하던 짓 하다가 이렇게 머저리처럼 실수하잖아.”라고 말한 탓이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니 나는 가족들에게 전부 들켜버린 셈이었다.
철저히 비밀에 부쳐지던 사랑이 겨울을 맞닥뜨리게 되면 유난히 솔직해진다. 크리스마스면 많은 사람들이 고백을 재채기처럼 쉬이 참지 못하게 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날만이 지니고 있는 재기발랄하고 따뜻한 분위기 탓도 있겠지만, 사랑의 성장 속도를 지나치게 높이는 데에는 팔 할이 온전한 겨울의 몫이다.
사실 사랑은 애초부터 겨울과 아주 밀접한 관계에 있다. 목도리, 장갑, 붕어빵, 포옹, 코트, 스웨터, 입김. 겨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기 마련인 이 단어들이 사랑과 퍽 닮아있지 않나. 앞서 말한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로서 충분한 자격을 가지고 있다. 겨울을 이루고 있는 모든 요소들이 분명하게 사랑을 가리키고 있다. 덕분에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 겨울의 방황은 아주 짧거나 거의 없다. 고개를 휙휙 돌리는 곳마다 이처럼 폭신폭신한 것들로 가득하니, 멍든 마음도 새것처럼 치유되지 않고서는 배기지를 못하는 것이다.
다소 유치해 보일 수 있는 어떤 표현들도 대가를 바라지 않는 다정이며 귀여운 잠꼬대며 하는 말들로 잽싸게 포장된다. 그 표현들은 대개 직관적이고 낭만적인 얼굴을 하고 있다. 짝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겨울 위에 놓여있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은 아주 조금 수월해진다. 언제까지 숨겨야만 하고 얼마큼이나 솔직해야 하는지, 손닿은 적도 없는 그 사람이 왜 벌써부터 보고 싶은지, 이 미온적이고 여린 감정이 왜 날고 긴다는 추위 속에서도 멀쩡히 걸어갈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명확히 할 수 있는 것 하나 없더라도 말이다.
때때로 사랑 앞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무의미하다 여기기도 하니까.
설사 그것이 생명이라고 할지라도.
우스운 시행착오 끝에 나는 프렌치토스트 여섯 조각을 만들어냈고, 가족들은 그것을 한 조각씩 입에 물고서 출근길에 나섰다. 갑작스레 텅 비어버린 집은 퍽 적막하기 짝이 없었지만, 오늘만큼은 그 적막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나는 식기세척기에서 머그잔을 하나 꺼내 들어 그곳에다 직접 만든 유자청을 듬뿍 담았다. 그리고는 커피포트로 끓인 뜨거운 물을 천천히 부었다. 온 집안에 상큼한 유자 향이 천천히 퍼졌다. 나는 티스푼으로 유자차를 휘휘 저으며 거실의 소파로 향했다. 마침 새하얀 아침이 반쯤 젖혀둔 커튼 사이로 몇 줄기의 햇빛을 운반하고 있었다. 내게는 그 적요롭고 기분 좋은 오전의 여유 속에서 그 사람 생각을 하지 않을 재량 따위 없었다. 요 며칠 나를 안달 나게 하는 유일무이한 사람. 고개를 양옆으로 세차게 흔들어 본다 한들 자꾸만 신경 쓰이는 사람. 그 사람과 이 유자차를 함께 마실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 사람에게 대뜸 괜찮다면 저 멀리 유럽으로 같이 떠나보지 않겠느냐고, 언젠가는 이 뮤지션의 콘서트에도 함께 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아니면 내가 잘 아는 이태리 레스토랑에 토마토 파스타 한번 먹으러 가자고 말하는 순간을 함부로 상상했다. 조금은 어리숙해 보이기도 했지만 약간의 확신도 분명히 있었다. 감히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서 내가 줄 수 있는 모든 다정을 건네고도 싶었다. 이는 분명 부모나 형제 그리고 자식들에게나 느낄 수 있는 희귀하고도 ‘초월적인 사랑’이었다.
그 사람에 관련된 무언가를 떠올릴 때마다, 그것은 진화라도 한 듯 더 자세한 형태로 나의 생애를 쥐고 흔든다. 나는 이 모든 것이 겨울의 시샘 탓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아무도 몰래 품은 이 사랑이 겨울의 따가운 눈초리에 더는 숨을 곳이 없어진 것이라고. 혼자 쓸쓸하게 사랑하는 일이 너무 힘에 부쳐 그만두고 싶어질 때도, 그 사람의 엉뚱한 행동 한 번과 예쁜 웃음 한 줌이면 그 마음이 눈 녹듯 사그라들곤 한다. 또다시 귀한 내 마음을 불살라 사랑을 이어간다.
이렇듯 사랑은 전혀 다른 성질의 바다를 끊임없이 넘나드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익숙해질 틈이 없다. 환희와 고통, 둘 중 그 어떤 감정에도 오래도록 머물지 못한다. 온탕과 냉탕에 번갈아 들어가기를 고의로 반복하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찰나의 환희와 온기를, 그것에서부터 진하게 우러나는 쾌락을 결코 외면할 수 없다. 그래서 사랑이 불멸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에서 영영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나는 몇 번이고 그 사람에게 안녕을 말하고자 했지만, 그 말은 입속에서 너무 쉽게 증발했다. 증발하다 못해 축제의 폭죽처럼 나의 눈을 밝혔다. 머지않아 또 괴로운 밤이 찾아오겠지만, 펑펑 쏟는 눈도 그곳에 함께 있을 것을 안다. 그럼 나는 또 밤새 쌓인 눈을 핑계 삼아 그 사람에게 한마디라도 더 붙여보려고, 딱 그만큼이라도 더 가까워지려고 무던히 애쓸 것이다.
몹시 새하얀 아침이라고, 귀여운 눈사람 하나 만들어 주고 싶다고, 오늘은 나랑 놀자고, 나는 너랑 노는 게 제일 재미있다고,
그러니까 우리 동네에 따뜻한 유부우동 같이 먹으러 가지 않겠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