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자기 탐구다.

드라마 같은 일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시간은 걸릴 만큼 걸린다.

by 오류 정석헌

처음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건 2015년이었다. 블로그가 시작이었다. ‘부수입’이라는 단어가 나를 잡아끌었다. 어느 강의를 듣고 블로그를 개설했다. 그게 글쓰기의 시작이었다.


당시 첫 글을 발행하던 때가 기억난다. 고작 3줄 쓰는 데 한 시간가량 걸렸으니까. 발행 버튼을 누르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1시간 10분이나 걸렸다. 발행 버튼을 누르며 난 혼자만의 상상을 펼쳤다. 글을 발행하기만 하면 누군가 읽어주겠지 하는 생각부터, 부수입이 생겨 조기 은퇴하는 생각, 글쓰기로 인플루언서가 되는 상상까지. 김칫국을 혼자 많이 들이키던 시절이었다. 지금도 그 버릇은 여전하다. 실제로 어제도 혼자 김칫국을 먹었으니까.


김칫국 상상이 깨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루면 충분했다. 블로그 글을 발행하고 다음 날, 내 블로그 방문자 숫자는 1이었다. 내 글을 읽은 사람은 나 한 사람이 다였다. 그때 얻은 깨달음 하나. '내가 쓴 글 내가 읽는 거지 뭐. 누가 읽겠냐.'




그 뒤부터 무작정 마음 가는 대로 글을 썼다. 뻥이다. 실제로 그리되는 데까진 1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글을 쓰면서 매번 만나는 내 안의 검열자와 이별은 쉽지 않았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자 블로그에 제법 글이 쌓였다. 개수는 1,894개가 되었다. 쓰고 쓰고 또 쓰며 나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던 단계에서, 의식하지 않는 단계로. 남들보다 내 시간을 더 소중히 여기는 사람으로, 말뿐이던 내가 약속을 지키는 사람으로, 대화할 때 딴생각하지 않고 경청하는 사람으로, 싫으면 싫다 분명하게 말하는 사람으로, 내키지 않으면 거절하는 당당한 사람으로, 무엇보다 글 쓰는 시간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글쓰기라는 선생님이 내게 준 선물이다.


또한 글쓰기는 나라는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며 삶을 통과했는지 여실히 보여줬다. 하루에 하나씩 글로 남긴 생각의 파편 덕분에 나라는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분명히 알게 되었다. 머릿속으로 생각만 했던 나와 실제로 보이는 나 사이의 간극이 그렇게 채워졌다.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며 살던 때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지만, 글로 쓰니 나와 다짐하고 행동하니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글이 어제보다 1% 나아지라고 나를 부추긴 덕분이었다.


또한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의 응원과 댓글을 받으며 내가 무럭무럭 자라기 시작했다. 그 응원의 한 마디가 다음 단계의 무언가 도전하라고 자꾸 부채질했다. 그렇게 작가에 도전했고 지금은 책을 3권 출간한 저자가 되었다.


블로그에 글을 모아 난생처음 출판사에 투고하던 날이 기억난다. 처음 블로그에 글을 쓸 때와 마찬가지로 이메일 버튼을 누를 때까지 한참이나 시간이 걸렸고 혼자 김칫국을 마시던 버릇은 여전했다. 처음에 44곳 출판사에 문을 두드렸지만 단 한 군데서도 답신이 오질 않았다. 그 흔한 거절메일도 오지 않았다.


드라마 같은 일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시간은 걸릴 만큼 걸린다. 아직 내겐 시간이 더 필요했다.




어느덧 책을 3권 출간한 저자가 되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는데, 난 무식해서 용감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감사하다. 아무것도 몰랐기에 일단 저질렀고 아무것도 몰랐기에 두려움 자체가 없었으니까.


가끔씩 블로그 글들을 돌아보며 추억한다. 멋 모르고 실행하던 때가 그리워져서다. 일단 부딪혀 보자며 앞뒤재지 않고 달려들던 막무가내 정신이 가끔씩 그리워져서다. 그리고 생각한다. 만약 결과를 미리 알았더라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몰랐기 때문에 용기 냈고 몰랐기 때문에 끝까지 완주를 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오늘도 작가가 되기 위해 도전하며 애쓰는 이들을 본다. 그들의 행보를 보면서 예전 내 모습이 떠올랐다. 열정은 넘치지만 공부는 모자란, 열심히 배우지만 사유의 폭은 좁은, 의욕이 지나쳐 논리적 비약을 일삼는, 공감하기보다는 주장하는 데 급급한.


멋 모르고 쓴 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글, 나라는 생각에 갇혀 쓴 주관적인 글, 술 마시고 쓴 글, 민망한 실수담, 신세 한탄, 불평불만과 자기 오류의 글들을 볼 때마다 또 응원하게 된다.


시간을 그들에게도 공평하게 작용할 것이다. 필요한 만큼 시간은 걸릴 것이다. 그게 글쓰기라는 선생님이 알려주는 방법이니까. 방식이니까.


그들도 언젠가 꿈을 이룰 수 있기를 포기하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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