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맡기기 실험이 불러온 작은 변화

제가요? 강연을요? 나는 사람책을 읽기로 했다 강연

by 오류 정석헌

제가요? 강연을요? 뜻밖의 강연

제가요? 강연을요?


2019년 2월의 마지막 날, 성장판 독서 모임에서 알게 된 나코리님에게 카톡 메시지가 왔다. 새로운 강의를 기획 중인데 참여할 수 있냐는 내용이었다. 정확히는 강연을 해달라고 했다. '네? 저요?, 저는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요'라고 이야기하려다가 '네, 할게요'라고 했다. 마음속에선 분명 No라는 메시지를 보내왔지만 행동을 반대로 해보았다. 지난 1월 성장판 문래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었던 <<될 일은 된다>> 책의 내용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 맡기기 실험이 불러온 삶의 변화가 혹시 나에게도 일어나지 않을까란 작은 기대도 포함됐다. 삶은 언제나 당신에게 많은 선물을 주려고 하는데 스스로 거부하지 말라는 마이클 앨런 싱어의 가르침을 받아들였다.


나코리님을 처음 만난 건 성장판 글쓰기 오프 모임에서였고 실제로 많은 얘기를 나눈 건 지난 1월 평일 광화문 점심 번개였다. 그 뒤로 여러 오프모임(스몰 스텝 모임, Design 2019 Workshop)에 참석할 때마다 마주쳤다. 나코리님이 직장인 이면서 강의도 하는 N 잡러 였고 배울 점이 많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어느 날 내가 이렇게 물었다.


"그런데 이거 왜 하세요?"

"재밌잖아요."


이게 나코리님의 대답이었다. '재미' 그렇다. 사람들을 모아서 강연을 열고 콘텐츠를 나누는 일이 나코리님에겐 '재미'였다. 여태 내가 생각했던 '재미'보다 한 차원 높은 '재미'처럼 느껴졌다. 어찌 보면 배움을 재미로 연결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배움도 재미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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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 승낙을 했으니 준비를 해야는데 도대체가 주제를 잡을 수가 없었다. '뭐로 하지?' 일주일째 주제를 잡기 위해 고민해도 마땅한 아이디어는 떠오르지 않았다. 지난번 나코리님 생산성 강의에서 배운 Dynalist가 떠올라 당시 작성했던 강연 내용을 훑다가 '그래 이걸로 해보자'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Dynalist 앱에 무작정 나에 대해서 떠오르는 대로 적어 보았다. 하나씩 적다 보니 어느덧 40줄이 쌓였다. 40줄에서 중복되는 내용을 하나의 폴더에 모으니 딱 5개의 폴더로 정리되는 것이 아닌가? '사람은 행동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는 니체의 말이 딱 맞아떨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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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 당일이 되었다. 강연은 저녁 8시인데 아침부터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첫 시작이 나다. 대박 사건, 가뜩이나 무대 공포증이 있는데 큰일이었다. 어떡하지? 발표 순서를 바꿔 달라고 해볼까? 오만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아니야, 나코리님이 생각이 있으셔서 이렇게 배정했겠지, 일단 해보지 뭐'라고 생각했다. '근데 잘할 수 있을까?'


강의는 처음이지만 나름 무대 경험은 꽤 있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중창단 활동을 했고 사회에 나와서는 축가, 기타 공연, 공감 합창단 공연을 해본 경험이 있다. 매번 무대에 설 때마다 느끼는 떨림, 기대감, 짜릿함 때문에 무대에 서는 건 좋았다. 그러나 공연은 여러 사람이 함께 하는 것인데 반해 강연은 나 혼자 무대를 채워야 하는 게 아닌가. 혼자 무대라고 하니 가수들이 솔로 데뷔할 때 이런 기분일까를 생각해봤다. 아침부터 떨고 있던 내게 나코님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이따 반가운 얼굴로 뵐게요.' 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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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 준비하면서 읽어보라고 보내준 글이 있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마이크를 잡아라. 나보다 나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없다.'라는 글이 유독 눈에 들어온다. 맞다. 나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은 오직 나다. 그리고 내 이야기니 자신 있기도 하다. 존경하는 김창옥 교수님의 유튜브 영상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한국 사람이 무대에 설 때와 외국 사람이 무대에 설 때의 차이를 아시나요?' 한국 사람들은 공연 전에 이렇게 얘기한대요. "야~~ 잘하자", 외국 사람들은 이렇게 얘기한답니다. "즐기자, 즐기고 내려오자." 그래, 즐기자, 즐기고 내려오자고 다짐했다.


약수역에 어느 모임 공간, 약 30명의 사람들이 평일 저녁에 모였다. 퇴근하고 강의를 듣으러 찾아온 사람들이 신기해 보였다. 강의 공간 제일 뒤에 앉아서 초초한 마음을 붙잡고 나코리님의 오프닝 멘트와 실없는 농담을 경청했다.


내 차례가 되어 마이크를 건네받았다. 뒷머리가 쭈뼛쭈뼛 서는 느낌이었고 등 뒤로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긴장감을 감추려고 더 크게 인사했다. 사람들이 박수 쳐주었다. '제가 강의가 처음이라서요, 엄청 떨리네요.'라는 말을 시작으로 두 번째 박수 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휴우~~~~~~~~' 한숨을 길게 쉬고 무슨 얘길 한 지 도통 기억나지 않은 상태였다. 모임 뒤풀이에 가서 알았다. 사람들이 계속 나에게 와서 말을 걸었다. 어안이 벙벙했다. 나코리님이 나에게 와서 그랬다.


"오류 정, 강의 완전 대박이었어요. 조만간 또 한 번 더 합시다."라고 했다.


사실,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하나도 없는 상태라, 나는 그냥 예의상 하는 소리겠거니라고 생각했다. 강의 후기를 눈으로 보고야 알았다. 여러 단톡방에 강의 후기들이 올라왔다. 민망한 사진과 함께. 내가 이런 멋진 말을 했다고 믿어지지 않았다. 댓글에 이번에 참석 못해서 아쉽다며 꼭 다시 열어달라는 댓글이 여럿 달렸다. 속으로 다짐했다. 다음번엔 더 잘해야지.


세스 고딘은 <<이카루스 이야기>>에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경기장에서는 스무 명의 선수가 뛰고, 관람석에서는 8만 명의 관객이 응원한다. 관객은 구경하기 위해 돈을 내고 , 선수들은 살아 숨 쉬며 경기를 만들어간다. 강연을, 공연을 보는 사람에서 의자의 방향을 바꾸어 사람들을 바라봤다. 새로운 짜릿한 경험이었다. 박수를 받을 때, 잠시 연예인이 된 듯한 기분도 느꼈다. 우리는 누구나 삶의 무대의 주인공이다. 사람들은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지만 막상 기회가 찾아오면 뒤로 물러난다. 나 또한 그랬다. 하지만 이제부턴 달라지기로 했다. 기회가, 살면서 마이크를 잡을 기회가 생긴다면 난 또 나서서 마이크를 잡을 것이다. 등 떠밀려서 하는 그런 것 말고 스스로 잡는 마이크. 떨리더라도 난 그런 떨리는 삶을 살고 싶다. 인생은 모험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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