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간의 삽질, 메모의 시작

by 오류 정석헌

<독서 천재가 된 홍대리>를 만난 후 제주도에서 복귀하자마자 독서 모임을 하는 친구의 연락처를 수소문한 끝에 알게 돼 전활 걸었다. 다짜고짜 그랬다.


"나 독서 모임 하고 싶어."


드라마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생에 첫 독서 모임에 참석했다. 독서 모임의 이름은 '삼천포'. 삼천포의 주요 멤버는 연극배우들이었다. 덕분에 독서 모임에 참석할 때마다 재밌었다. 연극배우들 답게 책에 몰입도가 높았고 가끔 온몸으로 느꼈던 감정에 대해 전달력이 탁월했다. 처음 모임 참석 때는 책에 대해서 물어보면 어쩌나 혼자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 책 내용에 대한 질문이 없었고 책을 읽고 느낀 소감에 대해 주로 이야길 나눴다.


삼천포를 시작으로 다양한 독서 모임을 지나쳤다. 트레바리, 에그 레 아블 그 외 온라인에서 하는 무료 독서모임들까지. 대략 10개 정도 모임에 참석했지만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음을 느꼈다. 책 이야기를 할 때는 좋았다. 거기서 끝이었다. 할 때뿐 남는 건 없었다.


독서 모임에 참석하고 책을 읽어도 삶은 그대로였다. 삶은 여전했다. 변한 거라면 책을 읽고 있다는 사실 하나였다. 홍대리처럼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변하는 일도, 해피 엔딩도 현실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면서 혼자 생각했다. 책은 책일 뿐일 걸까. 책 한 권 읽었다고, 책 몇 권 읽었다고 인생이 바뀌는 일은 없는 걸까. 인생을 바꾼 사람들은 어떻게 인생을 바꾼 걸까.


왜 책은 읽을 때뿐이고 남는 게 없을까. 혹시 내가 책을 잘못 읽고 있는 건 아닐까. 어떻게 하면 책을 읽고 잊어버리지 않을까. 수많은 질문이 샘솟았다.



광화문 교보 타워에서 만난 책 한 권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광화문 교보 타워에 새겨진 대산 신용호 선생님의 멋진 말을 보며 누가 오류도 좀 만들어줬으면 싶었다. 6년간 혼자 그리고 여럿이 책을 읽었지만 계속 제자리걸음만 하는 것 같아 오랜만에 교보 타워 나들이를 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베스트셀러 코너. 그렇게 만난 <<메모 습관의 힘>>. 그렇다. 책을 읽고 기록으로 남기면 잊을 일이 없구나. 기록을 왜 여태 놓치고 있었을까. 하며 가만히 서서 책을 넘겼다. 저자 신정철은 서울대학교 응용과학부를 다닌 사람이고 '메모의 달인'으로 불리는 사람의 책이었다. 프롤로그 제목은 이랬다.


나를 '메모의 달인'으로 만들어준 뜻밖의 사건


제목을 보며 생각했다. 오류에게도 뜻밖의 사건이 좀 생겼으면.



생에 처음 나를 위한 투자


2018년 5월 24일, 생에 처음으로 '자기 계발'에 돈을 쓴 날이다. 그것도 5만 원씩이나. 배움에 돈을 지불한 게 대학교 이후 오랜만이었다. <<메모 습관의 힘>>을 읽고 신정철 작가에게 페이스북 친구 신청을 보내고 '메모 습관반'의 존재를 알게 됐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첫 오프라인 모임에 참석했다.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름다운 아침이었고 봄볕은 따스했고 하늘은 반짝였다. 귓가를 살살 간지럽히는 봄바람이 불었다. 5월 마지막 주말 아침, 삶이 뒤바뀌는 사건은 그렇게 시작됐다.


2018년 5월 26일, 문래동 청색 종이 연구소에 11명의 사람이 모였다. 이날은 신정철 작가님의 메모 독서 실천반 2기가 시작하는 날이다. 집에서 30분 거리의 문래동은 오랜만에 방문이다. '마지막으로 가본 게 언제였지?'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버스를 탔고 창밖을 보면서 생각했다.


강의 시간은 오전 10시였고 10분 전에 도착해 사람들을 기다렸다. 얼마 전 선물 받은 네이버 로고가 새겨진 노트를 조용히 탁자 위에 꺼내 놓았다. 일본 여행에서 사 온 제트스트림 볼펜 한 자루와 함께.


'오프라인 강의라니 내가 직접 강의를 신청하다니’ 생각하며 스스로 대견해했다. 신정철 작가의 첫인상은 단정했고 차분했다. 책을 쓴 저자가 마냥 신기해 보였다. 저자의 맞은편 대각선에 앉아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메모해야겠다 생각했다.


“다 모이신 것 같네요. 처음이라 다들 어색하시죠? 저도 어색합니다. 안녕하세요 신정철입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웃으면서 인사하는 환한 미소를 보며 생각했다. ‘역시 오길 잘했잖아.'


"다들 어떻게 알고 오시게 되셨나요? 한 분씩 돌아가면서 얘기 나눠보시죠”

"책을 읽었는데 남는 게 없어서 지원했어요."

"책을 읽고 정리하는 Tip을 배우고 싶어 지원했어요."

"<<메모 습관의 힘>> 을 읽고 제대로 메모를 배워보고 싶어 왔습니다."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어 왔습니다."


'뭐야, 다들 소개가 너무 멋지잖아.' 다들 준비된 멘트 같았다. 드디어 내 차례다.

"바,,, 바,,, 방황의 시기에 뭔가 해보고 싶어 왔습니다." 더듬거리고 떨리는 입술을 그렇게 겨우 뗐다.


저마다 이유는 달랐지만, 뜨거운 분위기에서 느껴졌다. 가슴속의 열정이. 오류 또한 그랬으니까. 그런 그들과 함께 6주가 시작됐다.



6주


메모 습관반 덕분에 처음으로 책에 밑줄도 쳐봤다. 책을 깨끗하게 봐야 한다고 생각했던 오류에겐 이것부터 적잖은 충격이었다. 형광펜과 볼펜을 비롯 여러 문구류도 구매했다. 책 읽다 여백에 가끔 낙서도 했다.


처음 4주는 어떤 문장에 밑줄 쳐야 할지, 메모는 뭘 해야 할지 난감하기 일쑤였다. 책 양쪽 페이지 모두 형광펜으로 줄을 치는 게 다반사였다. 하고 싶은 날보다 하기 싫은 날, 힘든 날이 더 많았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돈을 내서 그런가 포기가 안됐다.


5주가 지나니 조금 여유가 생겼다. 책 옆에 빈 공간에 책을 읽으며 떠오른 생각, 무언가를 적는 일이 종종 일어났다. 그렇게 6주가 끝났다.


6주가 15초처럼 지나갔다. 처음 하는 메모는 서툴렀고 어려웠다. 낯설었고 뒤죽박죽이었다. 매일 하는 게 생각처럼 잘 되질 않았다. 다들 비슷했다. 별다른 방법이 없을 때는 그냥 열심히 하는 것 밖에 답이 없어서 계속 노력했다.


달라짐이 느껴졌다. 예전 오류는 금세 싫증내고 금세 그만두는 사람이었다. 돈을 지불해서 그런가, 6주 동안 하루도 안 빠지고 메모한 게 마냥 신기했다. 신기한 경험이기도 했고 일종의 쾌감 같기도 했다. 이게 메모의 힘인가 싶었다. 책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6주 이후 변화


6주 후에도 배운 것을 잊지 않기 위해 매일 연습을 했다. 메모 횟수가 거듭되면서 어떤 룰이 생겼다.


책이 아이폰이라면 메모는 이어폰이었다. 이어폰을 끼니 저자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더 열심히 듣고 싶어 한 페이지 전부를 옮겨 보기도 했다. 어떤 날은 6페이지를 메모한 날도 있었다.


책이 나무라면 메모는 꽃이다. 책의 영양분을 모두 흡수해서 나만의 꽃을 피울 수 있게 하는 것이 메모다. 책이 재료라면 메모는 소스다. 여러 가지 재료에 나만의 소스를 얻으면 나만의 새로운 요리가 된다. 새로운 요리가 바로 나의 생각이다.


메모 습관반 2기, 6주간의 경험은 책을 대하는 방법을 알려줬고 쓰면서 생각이란 것을 하게 해 줬고 그 생각을 다시 메모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생각이 바뀌니 행동이 달라졌다. 더 적극적으로 메모하게 됐다. 처음엔 힘들던 것이 지금은 놀이가 되었다. 재밌는 놀이. 재미있으니 계속하고 시간을 더 내게 되는 선순환을 불러일으켰다.


꾸준함은 오류에겐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지만 지금은 꾸준함이야 말로 오류를 가장 잘 표현한 단어라 생각한다. 스스로를 위한 투자 덕분인지, 메모 덕분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잘 모르겠다. 살면서 일외에 3개월 이상 무언가 지속했던 게 딱 두 가지다. 하나는 사진이고 나머지 하나는 메모다. 2018년 5월 26일 이후 지금껏 해오고 있다.


누구나 가능하다. 당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 지금 바로 메모를 시작하기만 하면 된다. 괴테는 이런 말을 남겼다. 서두르지 말고 멈추지도 말라. 메모는 느린 행위다. 느리지만 가장 빠른 길이다. 세상에 빨리 된다고 하는 건 다 마케팅이고 광고가 아닐까. 조급하지 않고 느긋하게 하는 것, 정석대로 하는 게 제대로 된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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