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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 Sep 23. 2020

노화의 상대성 이론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2012년 2월, 의학계는 술렁였다. 아니 온 세상이 술렁였다. S대 교수 김진명 박사가 발표한 논문 때문이었다. '노화의 상대성 이론'이라는 제목의 이 논문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의학에 접목시킨 놀라운 발견이었다. 언뜻 생각하기에는 대단히 간단해 보이는 이 이론과 논문으로 인해 노화에 대한 몇 가지 비밀이 풀리게 되었다. 바로 행복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천천히 늙는다는 것이다.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이론을 극대화시킨 간단한 예를 통해 알아보도록 하자.

  

두 사람이 똑같이 10시간 동안 업무를 한다. A라는 사람은 즐거운 마음으로 업무에 임하고 B라는 사람은 업무를 지루하게 여긴다. 이때 A와 B가 느끼는 상대적인 시간은 다음과 같다.

  

 A : 10시간을 즐겁게 일했기 때문에 마치 5시간밖에 흐르지 않은 것처럼 느꼈다.

 B : 10시간 내내 지루하게 일했기 때문에 10시간을 마치 20시간처럼 느꼈다.

  

A와 B는 같은 10시간을 보냈지만 실제 체감시간은 이렇게 큰 차이를 보인다. 이때 A의 세포는 10시간 동안 5시간만큼 노화하고 B의 세포는 10시간 동안 20시간만큼 노화한다. 기간을 늘려 A와 B가 20세부터 10년 동안 이와 같이 살아갔다고 가정할 때, A는 불과 25세의 노화 수치를 보이지만 B는 40세의 노화 수치를 보인다는 것이다. 질병, 사고 등의 다른 모든 변수들을 통제했을 때 이러한 실험은 대단히 성공적으로 증명되었고 결국 10년간 다양한 방법으로 연구 조사한 결과가 한 편의 논문으로 발표된 것이다.

  

"전원이 들어오지 않는 냉동창고에서 얼어 죽은 사람 이야기를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몸은 우리가 느끼는 대로 반응하게 됩니다. 모든 지각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지요. 우리의 대뇌가 실제로 체감하는 시간은 세포의 노화에 영향을 주게 되며, 이것이 바로 장수의 비결입니다. 결론적으로 행복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오래 살게 됩니다."

  

논문이 큰 반향을 일으키며 발표되고 한 달 후, 김진명 박사는 세계 노화연구학회에서 다시 한번 논문을 발표하며 위와 같이 기조연설을 시작해나갔다. 이 학회는 전 세계로 생중계되었다. 논문을 쉬운 이론과 실천방법으로 풀어쓴 책은 날개 돋친 듯 팔리기 시작했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이 이론에 열광했다. 국가, 종교, 인종을 초월하여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오래 살기를 원했고, 모두가 즐겁게 살아가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세상은 행복해져 가는 듯 보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부작용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지루하고 힘든 일을 전보다도 더 기피하기 시작한 것이다. 노화의 상대성 이론에서 지루하기 삶을 살아가는 것은 곧 죽음과 같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재 자신의 삶을 어떻게 하면 행복하고 즐기며 살아갈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과 그에 대한 노력을 했다. 하지만 몇몇 특정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직업을 포기했다. 직업을 포기한 사람의 대부분은 단순 반복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물론 그중 몇몇은 고되고 지루한 업무 속에서도 행복과 즐거움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렇지 못했다. 공장에서 휴대폰 조립을 하던 사람도, 과자공장에서 포장을 하던 사람도, 호텔에서 경비를 맡고 있던 사람도 일을 그만두었다. 


이러한 직업과 업무들은 부가가치는 낮아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 역할을 대신할 사람이 존재하지 않자 사회는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다. 혼란에 빠진 사회 속에서도 사람들은 행복을 느끼려 애썼다.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끼거나 지루하다고 느끼기 시작하면 죽음이 가까워지는 것과 같았다. 사회의 혼란은 참을 수 있지만 내가 남들보다 일찍 죽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사람들은 점점 자신의 욕망에만 도취되어갔다. 모두가 고통스러운 현실은 외면했다. 종교도 빠르게 사라져 갔다. 사람들은 단순히 행복과 즐거움을 뛰어넘는 것을 찾아냈다. 바로 '쾌락'이었다. 쾌락을 느낄 때는 단순히 행복과 즐거움을 느낄 때의 몇 배로 시간이 빨리 갔다. 이는 보다 더디게 늙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사람들은 쾌락을 좇기 시작했다. 섹스, 마약, 술과 같은 것들이 일상 속에 자리 잡았다. 

  

논문으로 큰돈을 벌게 된 김진명 박사도 하루 24시간을 쾌락으로 보냈다. 김진명 박사는 '영원한 삶, 쾌락'이라는 제목으로 연구를 시작했다. 하지만 연구가 아주 조금 지루해지자 이내 포기하고 다시 쾌락 속에 빠져들었다. 돈이 많건 적건, 다른 사람들의 생활도 김진명 박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세상은 천국을 연상시키기도, 지옥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그리고 한 달 뒤, 경로를 예측할 수 없었던 운석으로 인해 지구는 멸망했다. 단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했다. 결국 모든 사람은 공평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image: https://unsplash.com/photos/g5wo-_XOzJ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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